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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인데… 朴, 축사 중 ‘日 관련 내용’은 38자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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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인데… 朴, 축사 중 ‘日 관련 내용’은 38자뿐

입력
2016.08.1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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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반성 요구한 지난 3년 광복절 축사와 대조

아베 인식 변화 없는데, 우회적 메시지만 짧게 던지고 비판 ‘잠잠’

‘미래’ 강조… 널뛰기 대일 외교 문제로 지적

박근혜 대통령이 15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71주년 광복절 기념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이 15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71주년 광복절 기념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은 15일 “한일관계는 역사를 직시하는 가운데 미래지향적 관계로 새롭게 만들어 가야 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제71주년 광복절 경축사에 담은 한일 관계와 과거사 관련 메시지는 짧은 이 한 문장뿐이었다. 지난해 12월 한일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를 서둘러 맺은 이후, 일본에 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된 정부의 처지가 들춰진 것이다.

박 대통령은 이날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를 비롯한 일본 정부와 정치인들의 여전한 퇴행적인 역사 인식에 대한 비판을 피했다. “역사를 직시해야 한다”고 우회적으로 언급한 것이 전부였다. 2013년 취임 이후 박 대통령이 네 차례 내놓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일본의 역사 수정주의와 우경화 행보를 질타하고 반성을 촉구하지 않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박 대통령은 “미래지향적 관계”라는 표현을 썼을 뿐, 위안부 합의 이행 방안이나 한일 관계의 구체적 비전도 제시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냉철한 현실 인식에 바탕을 둔 선제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라며 “이것이야말로 오늘날 우리에게 요구되는 시대정신이며 광복의 정신을 되살리는 길”이라고 다시 한 번 ‘미래’를 강조했다.

박 대통령이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광복절 경축식에서 26분 간 읽은 6,492자 분량의 경축사 중 일본 관련 내용은 38자에 그쳤다. 언급한 내용을 떠나 분량에서 예년의 15분의 1에 불과했다. 일제의 식민통치에서 벗어나 주권을 되찾은 날을 기억하고 역사의 교훈으로 삼자는 광복절의 의의를 퇴색시킨 것이란 비판이 나왔다.

박근혜 대통령이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71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뉴스1
박근혜 대통령이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71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뉴스1

무엇보다 박 대통령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아예 언급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 취임 이후 광복절 경축사에서 빠지지 않는 문제가 위안부 관련 사안이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국민의 감정은 풀리지 않았는데도, 국민 설득 과정을 생략한 한일 정부의 합의만으로 위안부 문제가 이미 충분히 해결됐다는 게 박 대통령의 인식인 것으로 보인다.

한일 정부가 위안부 협상 타결 때 ‘국제사회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상호 비난과 비판을 자제한다’고 약속한 것을 박 대통령이 의식했을 수도 있다. 실제 최근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위한 화해ㆍ치유 재단의 출범 이후 일본이 소녀상 철거를 압박하고 재단 출연금 10억엔이 배상금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등 딴소리를 하고 있음에도, 박 대통령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정권의 ‘피로’를 드러낸 것이란 분석도 제기된다.

박 대통령은 과거 광복절 경축사에서 “일본 정치인들이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는 용기 있는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2013년) “일본의 일부 정치인들이 한일 국민의 마음을 갈라 놓고 상처를 주고 있다”(2014년) “역사는 가린다고 가려지는 게 아니고 살아 있는 증인들의 증언으로 살아 있는 것이다”(2015년) 등 반성 없는 일본에 대한 비판과 참회 요구를 빼놓지 않았다.

그런 박 대통령이 이날 일본 관련 언급을 최소화하고 ‘미래’를 한일관계의 화두로 거듭

제시한 것은 ‘널뛰기 대일 외교’의 단적인 예라는 비판이 터져 나왔다.

박 대통령은 2013년 2월 취임 직후부터 일본에 대립각을 세웠다. 같은 해 3ㆍ1절 기념사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역사적 입장은 천년 의 역사가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며 대일 초강경 기조를 내세운 이후, 지난 해 초까지 줄곧 일본에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다 광복 70주년이자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인 지난해 갑자기 방향을 틀어 한일관계 개선을 시도했다. 정윤회 사건 관련 보도로 기소된 가토 다쓰야 일본 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의 출국 정지를 해제하고 한일 외교장관 회담을 재개한 데 이어 ‘위안부 문제 해결이 한일 정상회담의 전제’라는 입장까지 돌연 바꾸었다. 결국 일본은 느긋하게 나오는데도 우리 정부가 서두르는 모양새가 되면서, ‘졸속 협상’이란 비판을 산 위안부 합의까지 이르렀다.

한일관계의 해빙으로 북핵 해결을 위한 한미일 3각 공조가 튼튼해지는 등 일부 성과도 거두었다. 하지만 문제는 일본의 과거사 인식이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베 총리는 광복절이자 일본 패전일인 이날 태평양 전쟁 책임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은 채 전범 위패가 있는 야스쿠니 신사에 공물료를 납부했고, 일본 각료와 의원들은 신사 참배를 강행했다. 박 대통령이 대일 외교에서 실리도 명분도 잃고, 원칙 없는 전략으로 국민 갈등만 부추겼다는 비판이 계속되는 연유다.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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