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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의 원근법] 트럼프 현상과 포퓰리즘의 미래

입력
2016.08.11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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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플로리다 BB&T 센터에서 공화당 대통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가 유세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11일 플로리다 BB&T 센터에서 공화당 대통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가 유세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올해 지구적 차원에서 가장 주목할 정치적 사건은 6월 영국 브렉시트와 11월 미국 대선이 될 것이다. 두 사건에서 흥미로운 공통점의 하나는 포퓰리즘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는 브렉시트와 유사하게 방위비 부담금을 부각시키고 이민자에 대한 반감을 부추기는 포퓰리즘 성향을 보여 왔다. 트럼프 후보가 승리할 가능성이 높아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표심의 예측불가능성을 고려할 때 섣불리 결과를 예단하기도 어렵다.

그동안 ‘트럼프 현상’에 대해선 인종주의, 성차별주의, 고립주의 등 다양한 비판이 쏟아졌다. 이 평가에 나 역시 동의한다. 그런데 이런 격렬한 비난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는 어떻게 공화당 대선 후보가 됐을까.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 후보와 숙명의 일전을 앞둔 ‘워싱턴 정치’의 아웃사이더 트럼프의 부상에 대해선 그 원인과 전망을 한번쯤 생각해 봐야 한다. 트럼프 현상에 대한 일종의 ‘내재적 접근’이 필요한 셈이다.

트럼프 현상을 이해하는 데 나는 21세기 정치의 두 흐름을 주목하고 싶다. 하나는 ‘권력의 종언’에 대한 모이제스 나임의 분석이다. 포린 폴리시 편집장이었던 나임은 ‘권력의 종말’이란 저작에서 오늘날 권력 투쟁이 한층 격렬해지지만, 권력의 힘은 점점 약해지고 있다고 진단한다. 거대 정당에서 소수 정당으로, 정당에서 당내 파벌로, 행정부에서 사법부로의 권력 이동이 진행되고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기성 권력의 약화는 정치의 문제 해결 역량을 저하시킨다. 더불어, 보수든 진보든 강경파의 과잉 대표된 목소리는 정치적 양극화를 강화시키고, 이는 상대방 정책을 모두 거부하는,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말한 ‘비토크라시’를 낳는다. 제도화된 정치사회의 무능력에 대응해 일부 정치 리더들이 국민에게 직접 호소하는 동시에 적잖은 국민은 정당을 매개하지 않고 리더와 직접 소통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이런 배경 속에서 트럼프 현상이 배양됐다.

다른 하나는 ‘정체성의 정치’에 대한 마누엘 까스텔의 이론이다. 정보사회론을 이끌어온 사회학자 까스텔은 ‘정체성의 힘’이란 저작에서 세계화와 정보사회의 진전이 가져온 정체성의 변화를 분석한다. 정보 시대에 비엘리트 계층은 국가와 사회, 나아가 개인적 삶의 운명에 대한 통제를 상실한 것에 대해 무력감을 느낀다. 이 무력감이 엘리트 지배 체제에 대해 분노를 유발시키고 대안적인 정치적 정체성을 추구하게 한다는 게 그의 결론이다.

정체성의 정치의 시각에서 볼 때 트럼프 현상은 기성 국가 질서에 대한 보수적 시민사회의 반격이다. 트럼프 현상이 저학력 백인 노동계급의 위기의식이 담긴 포퓰리즘이라는 해석은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반(反)이민 정서, 기득권 카르텔에 대한 반감, 백만장자 로빈 후드에 대한 기대 등 트럼프 현상에는 ‘헬 미국’에 대한 보수적 백인 계층의 분노와 욕망이 혼란스럽게 뒤섞여 있다. 정치학자 안병진이 트럼프 현상을 ‘백인 문명의 황혼기’를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규정한 것은 정확한 진단이다.

내가 주목하려는 것은 포퓰리즘의 양면성이다. 한편에선 포퓰리즘을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가 없다. 포퓰리즘은 정치의 한 식솔이다. 정치는 본디 대중의 인기라는 정치적 지지에서 시작한다. 온라인을 통한 정치인과 시민들 간의 직거래가 강화되는 정보사회의 현실을 고려할 때 포퓰리즘의 영향력은 갈수록 커질 것이다. ‘나는 당신의 목소리(I AM YOUR VOICE)’라는 트럼프의 후보 수락 연설은 포퓰리즘을 상징하는 대표적 언술이다.

다른 한편에선 포퓰리즘에만 기댄 정치의 결과를 직시해야 한다. 정치란 본래 문제 해결 능력이다. 이 능력이 갖춰야 할 조건의 하나는 단기적 인기에 집착하지 않고 장기적 이익을 도모하는 데 있다. 극단주의에 기반한 정치적 양극화라는 현실 속에서 포퓰리즘의 동원을 통해 권력을 장악하려는 유혹을 정치사회는 과연 뿌리칠 수 있을까. 정치적 양극화와 포퓰리즘의 악순환은 결국 정치의 종언을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바야흐로 우리 인류는 정보 시대 포퓰리즘이라는 정치의 새로운 시험대 위에 올라서고 있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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