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생 1200명 설문 결과

“능력-업적 따른 보상 차별 당연”

“합격 기준은 성적이 중요” 압도적

통념 깨고 저소득층도 믿음 강해

비정규직 등 약자소외 정당화 우려

게티이미지뱅크

“솔직히 지균충, 기균충을 서울대생으로 볼 수 있나요?”

2013년 서울대 학내 커뮤니티에는 지역ㆍ기회균형전형으로 입학한 학생을 ‘지균충’(지역균형+벌레), ‘기균충’(기회균등+벌레)으로 비하하는 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농어촌 지역 고교, 저소득가구, 북한이탈가정 등 어려운 환경에서도 우수한 성과를 거둔 학생들을 배려하는 해당 전형으로 수능 성적이 비교적 낮은 학생들이 합격하자 일부 서울대 재학생이 이들을 하층 계급으로 분류해 배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인 것이다. 당시 경영대 2학년생이던 김모(25)씨는 “익명 커뮤니티뿐 아니라 페이스북처럼 공개된 곳에서도 지균충을 비하하는 댓글놀이가 이뤄질 정도였다”고 말했다.

사회 경제적 약자에 대한 배려보다 개인의 노력이 더 중요하다는 대학생들의 태도는 올해 초 고려대가 성적장학금을 폐지하기로 결정하면서 다시 한 번 수면 위로 떠올랐다. 다수 학생은 학교 결정에 찬성했지만 일부는 ‘능력 우선’을 주장했다. 고려대 졸업생 이모(27)씨는 “생활비나 등록금을 버느라 수업시간에 결석하거나 자는 학생도 있지만 학생의 본분은 공부고 학점도 본인 책임”이라고 주장했다. 최근 고졸 직장인 여성이 진학할 수 있는 미래라이프대학 설립에 반대한 이화여대 학생들의 심리에도 “노력과 능력 없이 쉽게 명문대를 들어오는 게 정당하냐”는 인식이 깔려 있다는 시각이 존재한다.

환경보다 개인의 노력과 능력이 성공을 결정해야 한다는 청년층의 목소리를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최근 청소년들은 자신의 사회 경제적 형편과 상관없이 노력과 능력에 높은 가치를 두고 있다는 건데, 불평등이 이미 현실화한 상황에서 또 다른 차별주의로 왜곡돼 공동체와 배려라는 가치를 놓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흙수저ㆍ헬조선… 씁쓸한 ‘청년 신조어’)

환경보다 개인의 노력과 능력이 성공을 결정해야 한다는 청년층의 목소리를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게티이미지뱅크

9일 김경근 고려대 교수가 한국교육사회학회에 제출한 ‘중고등학생의 능력주의 태도 영향 요인에 대한 구조방정식 모형 분석’에 따르면, ‘능력이나 업적에 따라 보상을 다르게 받는 것은 당연하다’(능력주의 태도)는 항목이 평균 2.917점(4점 만점)의 높은 점수를 받았다. ‘합격자를 선발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은 성적’(2.623점), ‘장학금을 줄 때 가정 형편보다 성적 고려’(2.436점) 등 나머지 항목도 중간 값(2점) 이상을 기록했다. 김 교수는 “능력주의 본질에 대한 찬반을 묻는 질문에 3점에 가까운 점수가 나온 건 청소년들 사이에 능력주의가 공고한 신념체계로 자리잡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는 전국 16개 시도 중고생 1,212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특히 가구소득, 주관적 계층인식, 학업성취도, 부모 교육 수준 등 환경적인 요인은 청소년들의 능력주의 태도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 교수는 “계층인식과 학업성취도 등이 낮을수록 능력주의를 믿지 않을 것이란 기존 가설을 벗어난 결과”라며 “‘금수저’든 ‘흙수저’든 능력에 따라 대접받아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는 뜻”이라고 평가했다.

일각에선 부작용을 우려한다. 개인의 능력과 노력이 공평하게 작동하지 않은 사회에서 청소년 시기부터 능력주의를 신봉할 경우 과도한 경쟁과 이로 인한 개인의 박탈감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전통적으로 연고주의가 강하고 최근 ‘수저계급론’까지 등장하고 있는 우리 사회는 능력주의가 실현될 여건이 성숙되지 않았다”며 “어떤 성취를 이루면 이를 배타적으로 독점하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일류대와 지방대의 차별을 정당화하는 요즘 20대의 자화상을 그린 책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의 저자 오찬호씨는 “능력주의가 사회에서 뒤쳐지거나, 배려를 받아 궤도에 진입한 사람을 조롱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이용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월평균 소득 700만원 이상과 100만원 미만 가구의 사교육비(각 42만원, 6만6,000원) 차이는 7배에 달한다. 사교육 불평등으로 인한 입시 불평등이 취업 불평등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능력과 노력보다 경제적 수준에 따라 성공이 좌우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윤 교수는 “불평등한 출발로 경쟁에서 뒤쳐질 수밖에 없는 소외 계층도 있다는 공동체주의 태도가 사회 전반에 필요하다”고 했다. 오씨는 “사교육비 경감, 최저임금 상향, 사회안전망 구축 등을 통해 불평등을 줄이고 능력주의가 긍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을 갖춰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민정 기자 fact@hankookilbo.com

서울의 한 대학에서 사각모를 쓴 한 졸업생이 축하 꽃다발을 든 채 취업정보 안내판을 유심히 살펴 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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