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희게, 몇 점입니다. 미처 못 전해준 말이 있었다는 듯, 조금씩 조금씩 더 나타납니다. 그러다 한순간에 몰려옵니다. 쏟아집니다. 허공 위에서부터 허공 아래까지. 춤이며 비명입니다. 환하게 어둡게 자욱합니다. 나는 나로부터 아득해지며 눈보라 속에 서 있습니다.

몰려든 것들은 각각 흩어진 채입니다. 막무가내의 속도입니다. 그러나 또 지극히 흰 시간입니다. 이것은 눈의 속내입니까. 바람의 입장입니까. 허공의 분탕질입니까. 그것도 아니라면 나의 죄와 벌입니까.

걷지 않은 곳에만 길이라는 명명을 합니다. 용기입니다. 용기는 비장함에서 비롯됩니다. 비장할 수 없을 때 심장이 고쳐 묶는 신발 끈이 비장함입니다. ‘가면’은 이미 걸은 길과 가짜 얼굴을 동시에 가리킵니다.

꼭 한 길이 있습니다. 벼랑으로 가는 길일 수도 있습니다. 저녁 눈보라입니다. 밤중이 가까이 있습니다. 마침내 길은 완벽하게 없어집니다. 다시 처음부터 걸어오라, 두 발이 놓인 바로 여기입니다.

슬픔은 왜 독인가. 희망은 어찌하여 광기인가. 눈보라가 남긴 두 문장입니다. 우선 서늘하고 단단해집니다.

이원 시인

인기 기사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