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ㆍ유럽 잇는 글로벌 안정 장치

한때 유럽과 북한 수교 등 성과 빛나

적극적 외교로 활력 재생을 주도해야

아시아ㆍ유럽정상회의(ASEM)가 출범 20주년을 맞아 성년이 되었다. 동아시아와 유럽 사이의 ‘잃어버린 고리(missing link)’를 연결해 정치ㆍ경제ㆍ 사회문화 등 3대 분야의 협력을 강화하자는 게 1996년 ASEM 출범 당시의 출사표였다. 참가국들은 아시아와 유럽이 새로운 동반자 관계를 구축함으로써 유럽ㆍ북미ㆍ동아시아의 3각 지역 협력체제를 완성하고 글로벌 질서의 안정화에 기여하자는 원대한 목표를 내걸기도 했다. 출범 당시 26개 회원국(기관)이었던 ASEM은 지난 20년 동안 회원국이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났고, 매 2년마다 개최되는 정상회의 외에도 다양한 분야의 각료회의와 민간분야 협력포럼 등을 열고 있다. 7월15일부터 몽고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열리는 제11차 정상회의에서는 지난 20년 간의 협력 성과를 평가하고 앞으로의 발전방향을 논의한다.

출범 초기부터 한국 정부는 ASEM을 통해 새로운 국제질서 형성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으며, ASEM이 아시아 및 유럽 주요국들과 정치ㆍ경제 협력 기반을 공고히 하고, 한반도 평화 유지 및 이를 통한 동북아 안보환경 개선 등에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져왔다. 2000년 서울에서 열린 제3차 ASEM정상회의는 이런 기대에 부응하는 듯했다. 그 해 6월 성사된 김대중 대통령의 북한방문 및 김정일과의 정상회담 개최는 남북간의 평화공존을 위한 노력에 대한 국제사회의 평가를 이끌어 냈다. 남북 정상회담 4개월 후 서울에서 열린 ASEM 정상회의를 전후해 당시 15개 유럽연합(EU) 회원국이 북한과 수교,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한 주변여건이 크게 개선된 바 있다. 이를 계기로 유럽 주요국들은 평양에 대사관 또는 대표부를 설치하고, 북한을 국제사회로 이끌어 내기 위한 유형ㆍ무형의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여 왔다. 최근 수년간 북한의 핵무기 개발, 미사일 도발 등으로 한반도의 긴장이 극도로 고조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북한이 중국·러시아 외에도 서유럽 국가들과 꾸준하게 협력프로그램을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는 ASEM을 매개로 한 북한과의 수교가 커다란 역할을 했다.

그런데 최근 수년간 ASEM의 존재감은 크게 약화해 왔다. 한국의 ASEM 활용 사례도 기대보다는 점점 드물어지고 있다. 회원국이 크게 늘어나면서 정체성과 결속감이 약해진 것이 주된 요인일 것이다. 또한 특정 분야에 초점을 맞춘 다른 협력체들과 달리 ASEM이 정치ㆍ 경제ㆍ 사회문화 등 지나치게 광범위한 의제를 채택한 것도 한 원인일 수 있다. 참가국들의 역량을 집결할 수 있는 기제가 그만큼 제한적이다. 그 결과 한국의 제안으로 설립돼 아시아와 유럽의 대학생 교류협력을 지원하는 아셈듀오장학재단의 활동도 제대로 눈에 띄지 않는다. 싱가포르가 유치한 아시아유럽재단(ASEF)이 의미 있는 협력프로그램들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이번 제11차 ASEM정상회담을 ASEM의 존재의의를 재확인하는 한편, 한국의 역할과 위상을 강화하는 계기로 삼기를 바라며 몇 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 우선 ASEM 사무국의 설치를 제안하고 동 사무국을 한국으로 유치하는 방안을 검토할 만하다. 물론 ASEM 회원국들이 제도화에 난색을 표하고, 사무국 설치에 대해 부정적인 나라들이 적잖다. 하지만 ASEM이 존재의의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사무국 설치가 최소한의 전제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오랫동안 휴면기에 있는 통상장관회의를 한국 주도로 다시 열어 미국ㆍEUㆍ중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통상대국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할 필요도 있다. 또한 우리가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아셈듀오장학재단을 크게 확대할 수 있는 중장기비전도 제시할 필요가 있다. 국제사회에서의 역할 강화는 거저 주어지는 게 아니라 적극적 제안과 책임 있는 후속조치를 통해서만 가능함을 명심해야 한다. 주한미군의 사드 배치 결정을 놓고 동북아의 긴장이 고조되는 듯한 상황도 우리의 적극적 외교 노력을 재촉하고 있다.

박성훈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 (KU-KIEP-SBS EU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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