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애니메이션 ‘붉은 돼지’ 한 장면.

지배 엘리트가 한국 사회의 양극화된 계급 구조 안의 민중을 표현할 때 쓰는 말이다. 최근 교육부의 고위 관리에 의하면, 한국 사회의 민중은 전체 인구의 99%를 점하고 있는데, 지배 엘리트의 입장에서는 “민중은 개·돼지로 취급하면” 되며, “개ㆍ돼지로 보고 먹고 살게만 해주면 된다”고 한다.

이번 개ㆍ돼지 발언은 데자뷔를 불러일으킨다. 남한 사회 지배 엘리트의 입장에서 민중을 동물에 비유하는 것은 꽤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1980년 주한 미군 사령관 존 위컴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국인은 들쥐와 같은 국민이어서 누가 지도자가 되든 복종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한국인들에게 적합지 않다.” 그보다 한 해 전인 1979년에 박정희 대통령의 경호실장 차지철은 “100만이나 200만명 정도의 국민은 저항을 하더라도 탱크로 밀어버리면 된다”는 요지의 막말을 했다.

이번 발언은 일단 봉건적 신분제를 옹호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냉정하게 따지고 보면, 봉건사회로 돌아가자는 시대착오적인 얘기가 아니라, 이미 봉건적 신분제와 비슷할 정도로 고착화된 한국 사회의 계급 구조를 묘사하면서 가축에다가 피지배층, 즉 민중을 비유하고 있는 것이라고 이해된다.

지배 계급의 경제적, 사회적 힘이 극히 막강하므로, ‘1% 대 99%’의 비율로 계급 구조가 고착화된 상황에서는 정치적 민주주의라는 게 실상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이 이번 발언의 합리적 핵심이라고 해석된다. 그렇다면 이번 교육부 관리의 발언은 젊은 세대의 ‘헬조선’ 담론, 즉 “한국이 지옥에 가깝고 전혀 희망이 없는 사회”라는 말과 기본적으로 동일한 사회 진단을 공유하고 있는 셈이다. 다만, 같은 현상을 1%의 지배 엘리트 입장에서 보느냐 아니면 나머지 99%의 민중 입장에서 보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따라서 이번 발언 당사자를 파면시켜야 한다는 즉자적인 주장은 핀트가 빗나간 것이다. 파면 주장은 여야를 막론하고 나오고 있으며, 또한 보수 언론의 사설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만약 이 발언의 당사자가 한국 사회 구조의 본질을 제대로 폭로하고 있다고 한다면, 그런 발언을 한 당사자 개인의 파면 자체는 실상 아무런 의미도 갖지 않는 것이다. 고착화된 계급 구조를 확 뒤엎는 게 중요한 것이지 바로 그 구조의 본질에 대한 부적절한 비유가 문제인 것은 결코 아니다.

막말 논란을 일으킨 나향욱 교육부 정책기획관이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배우한기자 bwh3140@hankookilbo.com

부적절한 비유를 일단 제쳐 두고 이번 발언을 음미해 본다면, 다음 두 가지가 논쟁거리가 될 수 있다. 하나는 “지배 엘리트와 민중을 나눌 때 ‘1% 대 99%’라는 비율이 과연 적당한 것인가”라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민중이 지배 엘리트를 먹여 살리고 있는 것이지 지배 엘리트가 민중을 ‘먹고 살게 해주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1% 대 99%’는 경제학자 및 사회학자들이 나서서 좀 더 따져 보아야 할 문제인데, 나는 이번 발언이 정권 말기에 나타나기 마련인 천기누설에 속한다는 측면에서 일단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청와대 서별관회의에서 부실기업에 몇조원의 국민 세금을 퍼부어 주었다는 전 산업은행장의 폭로, “난 친일파라서 천황 폐하 만세”를 외치고 싶다는 정부출연 연구기관 센터장의 폭로, 청와대 정무수석이 KBS의 보도 통제를 해왔다는 전 KBS 보도국장의 폭로 등은 일련의 ‘역대급’ 천기누설을 이루고 있다.

사실, 가축에 사람을 비유하는 것은 지배 엘리트만 하는 것은 아니다. 민중에 의해 쥐로 비유되어 온 전직 대통령은 닭에 비유되고 있는 현직 대통령에 대해서 최근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도 (국정 운영을) 못했지만 나보다 더 못하는 것 같다.”

이번 발언의 가장 큰 문제점은 지배 엘리트가 민중을 ‘먹고 살게 해준다’는 잘못된 인식에 있다고 봐야 한다. 사람은 개ㆍ돼지를 먹고살며 개ㆍ돼지를 잡아먹기 위해 기른다. 사람이 개ㆍ돼지를 기르는 것은 결국 그것들을 잡아먹기 위해서이다. 사람들은 기르던 개ㆍ돼지를 도살한다. 지배 엘리트와 민중의 관계도 이와 비슷하다. 개ㆍ돼지와 민중의 공통점은 다른 누군가를 먹여 살린다는 점이고, 결정적 차이는 역사적으로 보아서 민중은 저항과 봉기를 해 왔다는 점이다.

이재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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