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공동체(EC)가 유럽연합(EU)으로 진화한 것은 1993년 마스트리흐트조약을 통해서였다. “유럽이 미국인과 일본인에게 먹히는 것을 모면하는 유일한 방법이에요.” 당시 미 주간 타임이 보도했던 마스트리흐트조약 비준 투표에 찬성표를 던진 한 프랑스인의 말이었다. 1952년에 출범한 ‘유럽석탄철강공동체’에 역사적 기원을 두는 EU는 이중의 의미를 갖는다. 지역적 차원에서 민족국가를 대체할 초국가적 기구가 등장한 게 하나라면, 미국과 일본 (최근에는 중국) 자본에 맞서 ‘유럽의 요새’를 구축하려는 게 다른 하나다.

경제적 블록화의 원조인 EU에 대한 분석에선 두 시각이 맞서 왔다. 첫 번째 견해가 블록화를 민족국가에서 세계화로 가는 중간 단계로 이해한다면, 두 번째 견해는 블록화를 미국ㆍ중국ㆍ유럽이 벌이는 경제 전쟁으로 파악한다. 후자는 특히 역사적 특수성을 강조한다. 유럽은 신성로마제국에서 볼 수 있듯 통합과 분리를 반복해 왔고, 경제ㆍ문화적 차원에서 동질성을 유지해 왔다. 이 점에서 EU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와는 달리 예외적인 ‘유럽적 현상’이라는 것이다.

EU 안에서 영국의 위상은 독특하다. 영국은 1973년에야 EU에 가입했다. 섬나라라는 지리적 특징, 미국과 유럽 대륙 간 균형자로서의 국제정치적 고유성 등은 영국으로 하여금 상대적 자율성을 갖게 했다. 영국은 유로가 아닌 파운드를 독자적으로 써 왔고, 자유로운 국경 이동을 위한 셍겐조약에 서명하지도 않았다. 영국의 일관적 전략은 다소 느슨한 선택적 통합이었다. 필리페 2세의 스페인 무적함대에 맞선 해전에서, 나폴레옹의 프랑스에 맞선 워털루전투에서, 히틀러의 독일에 맞선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역사적 유전자’가 영국인들의 마음속엔 늘 살아 있었다.

이러한 역사ㆍ사회적 배경 아래 최근 난민 유입에 대한 공포, 높은 분담금과 EU 내 독일의 패권적 지위에 대한 불만이 브렉시트를 낳았다고 볼 수 있다. 하층계급, 고령세대, 잉글랜드 지역에서 탈퇴 여론이 높았던 게 그 증거다. 하층계급이 줄어드는 일자리를 걱정했다면, 고령 세대는 영국의 자존심에 대한 향수에 젖었고, 잉글랜드의 저성장이 고립주의를 선택하게 했다. 브렉시트를 덜컥 국민투표에 부친 캐머런 수상의 미숙한 포퓰리즘이 예상치 못한 자신의 정치적 몰락을 가져온 셈이었다.

브렉시트가 지구적 차원에서 안겨주는 함의는 두 가지다. 첫째, 경제적 측면에서 브렉시트와 같은 사건은 ‘나비 효과’를 가질 수 있다. 지난해 중국 경제의 침체와 올해 브렉시트에서 볼 수 있듯 세계 경제는 이제 완전한 하나의 단위로 움직인다. 세계화가 가져온 상호의존성의 증대는 20세기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상황이자 조건이다. 금융자본의 세계화 등 변화하는 현실에 대해 지구적 차원에서 적절한 조정 능력이 부재하다는 점에서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둘째, 정치ㆍ사회적 측면에서 국가의 통치 불가능성이다. 세계화와 정보사회의 진전과 이로 인한 불평등의 증대에 맞선 대의민주주의와 복지국가는 분명한 한계에 직면했다. 그 한계의 지점에 인종주의와 포퓰리즘이 서식하고 번성한다. 브렉시트는 인종주의가 잠재된 민족주의와 세계주의를 지향하는 유럽주의 간의 갈등에서 민족주의적 포퓰리즘이 우위에 있음을 보여준다.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1648년 30년 전쟁을 종결시킨 베스트팔렌조약 이후 EU로 구체화한 ‘코스모폴리탄 유럽’을 열렬히 지지했지만, 그의 꿈이 실현되기엔 갈 길이 멀다.

세계주의 대 민족주의, 보편주의 대 인종주의, 대의민주주의 대 포퓰리즘의 대결로 드러나는, 정치학자 제임스 로즈노가 일찍이 주목했던 ‘세계정치의 격동(turbulence)’은 앞으로 더욱 격렬해질 가능성이 높다. 1929년 대공황을 완전히 극복하는 데는 30년이 걸렸다. 2008년 금융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선 더 많은 시간이 요구된다. 이 음산하고 불편한 격동의 터널을 지나가기 위한 ‘글로벌 거버넌스’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대한민국도 당연히 예외는 아니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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