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 천일야화] 13. ‘준 테러리스트 대접’ LA공항 입국기

※ 기자에게 실크로드에 대한 눈을 뜨게 해줬던 정수일 한국문명교류연구소장은 "실크로드는 동서 문명교류의 통로이며, 실크로드 구간을 구대륙(유라시아)에만 한정하는 것은 서구중심적인 사고방식"이라고 말했습니다. 즉, 실크로드의 범위는 신대륙에까지 확장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본 코너의 '시즌2'에서는 중남미 지역을 둘러보고 비단길의 자락을 잡아 볼 예정입니다.

여권의 한 면을 꽉 채우고 있는 이란 비자

2016년 6월4일 오전 10시45분(현지시간) 미국 LA공항. 한 줌의 불안감도 없이 공항 출입국심사대를 통과하려던 나에게 불벼락이 떨어졌다. 여행사에서 대행발급한 미국 전자비자가 휴지조각이 되는 순간이었다. 바로 ‘Islamic Republic of Iran’이라고 찍힌 이란 비자 때문이었다. 2014년 1월 미국과 적성국가인 이란을 다녀온 전력이 발목을 잡으면서 나는 구석진 골방에 억류됐다.

애니깽의 나라, 라틴아메리카 답사는 그렇게 시작됐다. 별도 비자까지 발급받으면서 여권에 출입국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던 쿠바는 프리패스였고, 관계 개선 중이라는 이란은 미국공항 저지선을 뚫지 못했다.

세관국경보호국(CBP) 심사소에는 20여 명의 지구촌 동지들이 겁먹은 소마냥 눈동자만 굴리고 있었다. 정복을 입은 미국 이민국 관리들은 가끔 방 안을 휘저으며 ‘절대 정숙, 휴대폰 금지’ 사실을 큰 소리로 주입시켰다. 내 휴대폰에 남은 배터리는 3%, 보조배터리가 있었지만 연결 선은 수화물칸 짐에 쳐박혀 있었다.

페루 수도 리마행 비행기는 오후 2시 출발, 3시간 정도 남았다. 두 시간 안에만 빠져나가면 그럭저럭 탈 수 있을 것 같았다. 순서대로 이름을 부르는데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성질 급한 한국사람들은 기다리다 제 풀에 죽지 싶었다.

낮 12시30분쯤 드디어 내 이름을 부른다. “이란에는 왜 갔습니까” “실크로드 답사 겸 여행하러요” “실크로드? 가족과 같이 갔습니까” “혼자 갔어요” “혼자? 얼마나 머물렀습니까” “10일 정도” “미국대사관에서 직접 비자를 발급받지 않은 이유는요” “여행사가 대행해줬습니다” “이란을 다녀온 사람은 여행사가 비자발급을 대행할 수 없습니다” “여행사에서는 문제가 생길 경우 전자비자를 보여주면 된다고 하던데요” 종이에 프린터한 전자비자를 보여줬으나 쳐다보지도 않았다.

잠시 앉아 있으라고 하더니 또 다른 철문 너머로 내몬다. 손가락 하나 하나 지문을 찍고, 오른손 왼손 또 찍고, 사진까지 찍어댄다. 이 정도면 반쯤은 테러리스트 대접이다. 처음 있던 방에 앉아있으라며 한 마디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습니다. 이제 상사들이 두 단계 더 검토한 후 추방이나 입국을 결정할 겁니다.”

‘추방’이란 단어가 처음 튀어나왔다. 누가 미국에 입국하자고 했나, 경유만 하면 되는데 자기들이 모두 입국절차를 밟게 해놓고 추방이란다. “오후 2시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빨리 좀 부탁합니다.” 말이 없다.

시간은 흐르고 또 다른 억류자들이 방을 채운다. 한국인 한 명이 조사를 받는데 ‘Iran’이란 단어가 들린다. 삼성에서 관리자급으로 보이는 중년 신사인데, 테헤란 현지공장 방문하러 이틀 다녀온 것 때문에 심사를 받고 있었다. 우루과이로 가야하는데 나와 같은 신세가 된 것이다. 이 남자도 철문으로 사라진다.

리마행 비행기는 포기했다. 앞길이 캄캄했다. 추방당하면 인천에서 집으로 가야 하나, 캐나다행 비행기를 타고 다시 둘러 와야 하나, 티켓은 있을까. 머리가 텅 빌 무렵 내 이름이 들린다. 1시55분이었다. 조잡한 ‘CBP 조사 확인서’를 하나 써 주며 입국을 허가했다. 그런데 이마저 끝이 아니었다. “정식 비자를 발급받기 전까지는 미국입국 금지입니다” “귀국행 항공편도 LA공항을 경유해야 하는데요” “만약 LA로 들어오면 직전 공항으로 추방될 겁니다. 장담하죠.”

미국 LA공항 세관국경보호국에서 발급해준 조사확인서

‘그건 그 때 생각하자.’ 우선 리마가는 길이 급했다. 입국장에도 줄이 100m는 늘어 서 있었다. 이미 오후 2시 비행기는 하늘을 날고 있었다. 입국장을 빠져나와 출국 터미널의 대한항공 사무실부터 찾았다. 인천-LA는 대한항공, LA-리마는 ‘LAN항공’이었다. 친절한 대한항공 아가씨가 LAN항공 사무실로 들어가더니 다음날인 5일 새벽 0시15분 LA발 리마행과 같은날 오후 1시30분 리마발 쿠스코행 티켓 2장을 들고 나왔다. 출입국 심사로 리마행 비행기는 물론 다음날 오전 10시30분 쿠스코행 비행기까지 놓치기 때문이었다.

미국 정부가 아직 적성국가 딱지를 떼지 않은 이란비자 때문에 조사를 하는 것 까지는 이해됐다. 하지만 입국심사실의 고압적 분위기는 전혀 딴 얘기였다. 말이 안 통하는 것은 당연한데 중국의 촌 노인네한테 고함을 질러대고, 한시가 급한 피조사자 사정은 아랑곳없이 조사창구를 모두 가동할 생각은 없이 세월아 네월아였다. 이날 조사에 3시간 정도 걸린 셈인데 좋게 봐줘도 1시간이면 충분했다. 오만한 미국, 거만한 양키제국의 단면이었다.

LA공항에서 갑자기 7시간 정도 여유가 생겼다. 먼저 대한항공 사무실에 부탁해서 30분간 휴대폰을 충전했다. 페루 가이드에게 전화해서 쿠스코에서 만나자고 하고, 여행사 직원에게 문자를 남겼다. LA 근교 얼바인에 사는 여동생에게 전화해서 ‘번개’를 신청했다. 집으로 오라는데 내 주머니에는 신용카드 하나 달랑 있었다. 도착하면 여동생이 택시비 내준다고 했지만 짧은 시간에 갔다왔다 너무 번거러웠다. “다음에 보자”고 하고 다시 휴대폰 충전을 맡긴 후 공항투어에 나섰다. 어슬렁어슬렁 이 터미널, 저 터미널 갔다 컵라면도 사먹었다 하면서 LA공항 노숙자로 전락했다.

미국 LA공항에서 낙동강오리알이 된 후 느닷없이 찾아온 여동생과 인증샷을 찍고 있다.

오후 8시50분 수화물 칸의 짐을 다시 한 번 확인하러 LAN항공 쪽으로 발길을 옮기는데 누가 갑자기 어깨를 툭 친다. 이게 누구야, 여동생이었다. 고3짜리 큰딸 수송업무를 팽개치고, 큰오빠 만나러 공항에 나왔단다. 충전 중인 휴대폰 통화가 되지 않아 2시간 동안 공항을 헤매다 “커다란 머리가 보였다”는 것이 여동생 말이다. 벌써 고국에 계신 어머니께 추방 아닌 추방 사실을 소문냈단다. “이젠 좀 그만 다녀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던 어머니는 “추방당해서 집으로 오면 좋겠다”고 하셨단다. 여동생과 짧은 만남 뒤로 잉카제국이 기다리고 있었다.

jhj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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