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여성노동과 출산, 양육에 관한 연구를 한 보고서를 우연히 읽었는데, 흥미로운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OECD 주요 국가들의 통계를 분석한 결과, 성별 임금 격차가 커지면 출산율이 떨어지며, 여성고용률이 증가하고 일ㆍ가정 양립이 가능해져 사회진출이 증가하면 출산율이 올라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적으로 여성이 일을 더 많이 하게 되면 출산율이 떨어지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기 쉬운데, 실제로는 오히려 그 반대의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또 우리나라의 통계를 분석한 결과 여성 임금의 절대적 수준은 출산에 유의한 영향을 끼치지 않았으나, 한 가정 내에서 남성 임금 대비 여성 임금의 상대적 크기가 클수록 출산확률이 증가하고, 남편의 육아ㆍ가사 분담률이 증가하면 둘째 아이 출산확률이 증가한다는 결과가 나타났다고 한다. 즉 가정 내에서 남녀 임금 격차가 심하지 않고, 남편이 육아와 가사를 적극적으로 분담하는 것이 출산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예전의 다른 연구들은 여성이 임금이 올라가면 출산을 포기할 확률이 높아져서 오히려 출산율이 떨어진다는 결과가 나왔던 것과 비교하면, 이 연구결과는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은 조금 다르게 변했다는 걸 보여준다. 여성의 교육수준이나 사회참여에 대한 욕구가 결코 남성보다 낮지 않은 현실에서는 임금 수준이 낮다고 해서 일을 포기하고 아이를 더 낳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안정적인 일자리를 가지고 가정에서도 평등하게 일과 가사를 분담하는 경우에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우가 더 늘어난다고 해석할 수 있겠다.

주변에서도 육아휴직이 보장되고 안정적인 일자리를 가진 경우 아이들을 낳고 키우는데, 일자리가 안정적이지 않고 일ㆍ가정 양립이 어려운 경우에는 아이를 낳고 키울 엄두도 못 내거나 하나는 키워도 둘째는 생각도 못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인생의 목표가 2세 출산과 양육이 아닌 시대에 내 삶이 팍팍하고 힘든데 굳이 아이를 낳고 싶은 마음이 들겠는가. 위 연구결과에서 보듯이 평등하지 않은 노동환경과 가정생활도 분명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한국은 2001년부터 초저출산을 계속 유지하고 있으며, 전 세계에서 홍콩과 마카오를 제외하고는 출산율이 가장 낮은 수준이라고 한다. 양극화와 지나친 경쟁으로 아이를 낳고 키우기 행복한 나라가 아닌 것을 생각하면 이런 현상이 어색하지는 않다. 정부는 저출산 고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다양한 대책들을 내놓고 있으나, 15년이 지나도 출산율은 요지부동이다. 작년 말에 정부가 내놓은 3차 저출산 고령화 기본계획은 만혼을 저출산의 주된 이유로 지목하고 좋은 일자리 늘리기가 아닌 노동개악을 저출산 대책으로 둔갑시키는 등 제대로 된 해결책은 내놓지 않고 있다. 여성의 경제활동참여율을 높여야 한다고 하면서 성 평등을 위한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는커녕 오히려 경력단절문제를 악화시킬 맞춤형 보육을 강행하는 것도 우려스럽다.

저출산의 해결책은 좀 다른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공공부문이 주도해 안정적이고 좋은 일자리가 늘어나고, 여성이나 남성이나 경력단절을 두려워하지 않고 평등하게 일할 수 있고, 지나친 노동시간에 시달리지 않으며, 가사와 육아를 평등하게 나누는 사회가 된다면, 적어도 지금과 같은 초저출산 현상은 달라지지 않을까. 일에서나 가정에서나 좀 더 평등한 사회가 행복한 사회이고, 그런 사회에서 사람들이 아이를 낳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나도 좀 더 평등하고 행복한 사회에서 우리 아이들을 키울 수 있으면 좋겠다.

김남희 참여연대 복지조세팀장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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