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구 사진가(뒷줄 왼쪽에서 두 번째)와 달팽이사진골방 회원들이 함께 한 청계천 나들이

서울 시민이라면 누구나 한번 쯤 거닐어 보았을 청계천. 잠깐이지만 며칠 전 아주 오랜만에 수표교 아래 물길 옆을 따라 걸었다. 기자 시절인 2003년 즈음 청계천을 살린다는 허울로 거의 파괴나 다름없을 정도로 엉성하게 이루어진 복원공사 과정을 취재했던 안타까운 기억이 그동안 이곳을 가까이하지 않게 했었다. 그러나 이날만큼은 달랐다. 청계천에 흐르고 있는 삶을 볼 수 있다는 이유였다.

‘이한구’ 사진가는 학창시절인 1988년부터 지금까지 청계천과 그 주변 사람들에 대한 사진기록을 해오고 있다. 30년 가까운 그 ‘세월’ 동안 그는 무엇을 보고 누구를 기록해온 것일까. 무엇이든 빠르게, 그리고 사물의 외양에 집중하거나 대상에 대한 존중 없이 함부로 찍는 사진들이 넘쳐나는 요즘의 분위기와는 달리 ‘이한구’는 자신이 선택한 자리에서 아주 오래도록 낡고 오래된 것의 가치를 보여주는 귀한 작업을 해오고 있었다. 늘 ‘마음이 찍어야, 손이 찍는다’는 그의 소신도 듣고 청계천의 진면목도 살필 겸 함께 하는 사진모임회원들과 더불어 그에게 길 안내를 부탁했다.

사진가로 언제 어느 곳을 떠돌더라도 다시 돌아와 청계천을 찍는 일을 일생 멈추지 않겠다는 ‘이한구’ 작가의 얘기를 들으며 20여 명의 일행이 청계천 일대를 찾은 지난주 주말, 마치 미로처럼 뒤엉킨 골목길을 따라 움직이면서 우리는 세월의 ‘켜’들이 쌓아놓은 삶의 흔적들에 가슴이 후끈 달아올랐다. 휴일이라 대부분 문을 닫았지만, 각종 공구점, 공업사, 선반가게 등등, 부속품들을 모으면 비행기 하나 거뜬히 조립될 수 있다는 청계천의 온갖 상점들이 가득한 뒷골목은 특유의 진한 기름 냄새를 풍기며 우리들의 코끝을 간지럽혔다.

청계3가 한가운데 골목길에서 늦은 오후의 햇살을 품으며 가만히 앉아있는 등 굽은 초로의 할머니 한 분과 마주하게 되었다. 이미 오래도록 친분을 나누어 왔다는 ‘이한구’ 작가가 할머니를 소개했다. 여든세 살이라는 할머니는 간판 하나 없는 한 평 반 남짓한 작은 구멍가게의 주인이었다. 할머니가 한창 일하던 시절에 이미 철거된 청계고가 옆에서 노점상을 하다가 늙고 병들어 힘이 빠지자, 장애가 있는 당신의 딸과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주변 상인들이 십시일반 ‘팔아’주면서 30년 넘게 장사를 이어가고 있다는 설명이 뒤를 이었다. 구멍가게의 물건이라고 해봐야 몇 품종 안 되는 음료수와 휴지 다발이 대부분이었고, 상인들이 목을 축이기 위한 캔맥주와 막걸리 몇 통만이 필수품처럼 자리하고 있을 뿐이었다.

우리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 할머니의 고운 미소에 반해 그럴 수밖에 없었다. 거동은 불편하지만 분홍 머리띠와 색동옷으로 차려입고 앞치마를 두른 채 앉아있는 할머니는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고,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초여름 더위를 씻기 위해 냉장고 문을 열어 목축일 것들을 꺼냈다. 그리고 삼삼오오 할머니 곁을 둘러싸고 앉아 두런두런 옛 시절을 여쭙거나 건강하시라는 덕담을 건네기도 했다. 더 깊이 묻지 않아도 곡절 많은 당신의 인생을 짐작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다만 충분한 것은 이 작은 구멍가게를 중심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낡은’ 삶들의 아름다운 동행 그 자체였다.

짧은 인연이 아쉬웠던 탓일까. 우리는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별’의 증표로 주먹을 불끈 쥔 채 할머니의 건강을 비는 커다란 웃음소리를 남겨 드렸지만 아마 다시 이 작은 구멍가게를 찾아갈 듯싶다. 벌써 무더운 올여름, 시원한 쉼터 하나를 사람 냄새 가득한 청계천 뒷골목에 두게 되었다.

달팽이사진골방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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