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을 아우르는 록 스타'의 탄생

MBC 예능 프로그램 '복면가왕'에 '우리 동네 음악대장'이란 이름으로 출연한 국카스텐의 하현우가 고인이 된 신해철의 노래 '민물장어의 꿈'을 부르고 있다. 하현우는 ‘라젠카’,‘일상으로의 초대’등 세 번의 무대를 통해 신해철을 향한 추모의 마음을 드러냈다. MBC 화면캡쳐

지금은 고인이 된 가수 신해철은 2014년 인터뷰에서 ‘넥스트와 윤도현밴드(YB) 이후 대중을 아우를 만한 록스타가 등장하지 않고 있다’는 질문을 받고 록 밴드 하나를 지목했다. 바로 국카스텐이다. 그는 “국카스텐 같은 친구들이 쭉쭉 뻗어가야 한다”며 “국카스텐이 멈춰있으면 결국 후배들이 기회를 잃는다”라고 말했다.

2년이 지난 지금 신해철의 바람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현실화됐다. 올해 초 MBC의 예능 프로그램 ‘복면가왕’에 지금까지 어떤 출연자와도 비교할 수 없는 인기몰이를 한 가수가 등장했다. ‘우리 동네 음악대장’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그 가수는 국카스텐의 보컬 하현우였다. 그는 지난 주까지 무려 20주 동안 왕좌를 지키며 일약 이 시대의 주목 받는 가수로 떠올랐다.

하지만 그는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다가 운 좋게 뜬 벼락 스타가 아니다. 음악대장의 인기 뒤에는 10년 간 인디 음악계에서 부단한 노력을 하며 대중 음악시장의 두터운 빗장을 두드려 온 인고의 시간이 자리잡고 있다.

2008년 12월 홍대 앞 쌈지스페이스에서 열린 국카스텐의 공연에서 하현우(왼쪽)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장기하를 넘어선 ‘무서운 신인’

2008년 11월 서울 광장동 악스홀에서 열린 ‘헬로 루키 오브 더 이어’의 주인공은 누가 봐도 ‘장기하와 얼굴들’이었다. 이 행사는 EBS의 스페이스 공감이 진행한 신인발굴 프로그램의 연말 결선이었다. ‘홍대의 빅뱅’으로 통하던 장기하는 여기서 ‘달이 차오른다 가자’라는 노래를 불러 강력한 대상 후보로 꼽혔다.

그런데 세 번째 순서로 등장한 국카스텐이 그들의 대표곡 ‘거울’을 부르면서 판이 뒤집어졌다. 하현우가 압도적 카리스마와 파괴적인 보컬로 단박에 관객을 사로잡은 것이다. 심사위원들은 만장일치로 국카스텐에 대상을 줬다.

음악평론가 김작가는 이를 “인디씬의 라이브 최강자가 바뀌는 순간”으로 꼽았다. 하현우는 수상 소감에서 “우리는 이미 (대상을 받을 줄 알고) 스페이스 공감 정식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절실하게 준비를 한 만큼 자신감도 컸다는 의미였다.

2009년 한 공연장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하현우의 모습. 국카스텐 팬카페(www.guckkasten.com) 자료.
피를 토하며 노래를 연습한 ‘절차탁마’의 시간

이런 자신감은 고교 시절부터 인정받은 노래 실력에서 나왔다. 하현우가 노래에 본격적으로 빠져든 것은 고 2 때 바람 난 여자친구 때문이었다. “왜 여자를 빼앗겼을까” 고민하던 그는 “남자가 멋있어 보이려면 무엇인가에 몰입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때부터 일주일에 4일을 노래방에서 피가 나오도록 노래를 불렀다. 그렇게 갈고 닦은 뒤 고 3 학교축제 때 메탈 밴드 스틸하트의 대표곡 ‘She’s gone’을 불러 엄청난 환호를 받았다.

미대에 진학한 그는 2000년 대전의 한 거리에서 국카스텐의 드러머 이정길을 우연히 만났다. 녹색 머리에 가죽바지를 입은 하현우를 보고 이정길이 “혹시 음악하냐?”고 말을 걸면서 의기투합해 이듬해 ‘뉴언발란스’라는 밴드를 결성했다. ‘뉴발란스’라는 상표를 패러디한 이름이다. 그들은 2003년 밴드명을 더 컴(The Compass Of Music)으로 바꾸고 아르바이트와 공연을 병행하며 노력했지만 배고픔을 견디지 못해 2004년 팀을 해체했다.

그 사이 군대를 다녀온 하현우는 2006년 다시 과거의 멤버를 규합해 밴드를 결성했다. 이름은 진중권의 책 ‘미학 오디세이’에서 읽은 만화경을 뜻하는 독일어 ‘국카스텐(Guckkasten)’으로 지었다. 1960, 70년대 저항과 평화의 상징이었던 사이키델릭 록 같은 실험정신을 지향한 것이다.

강원도에서 1년 반 동안 합숙하며 밤에 실내포장마차에서 일하며 돈 벌고 낮에 열심히 곡을 쓴 이들은 2007년 350만원을 들여 첫 앨범 1,500장을 만들었다. 그로부터 1년 뒤 EBS의 헬로루키 무대를 통해 무서운 신인으로 주목을 받았다.

2009년 발매한 정식 1집 앨범은 비평가들의 찬사와 상업적 성공을 동시에 거머 쥐었다. 2010년 한국대중음악상에서 록 부문 최우수 노래상과 올해의 신인상도 받았다. 어느새 무대에 오르면 팬들이 가득 모였다. 덕분에 신인 밴드인데도 각종 록 페스티벌에서 황금 시간대에 배치됐고, 대표곡 ‘거울’은 노래방 목록에도 올랐다.

2014년 11월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의 복합문화공간 'NEMO'에서 국카스텐의 정규 2집 앨범 '프레임' 음감회 및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왼쪽부터 이정길(드럼), 전규호(기타), 하현우(보컬), 김기범(베이스). 한국일보 자료사진.
탄탄대로를 달린 ‘인디 2세대’의 기수

국카스텐은 곧잘 서양의 얼터너티브 록 밴드 레드 핫 칠리 페퍼스(Red Hot Chili Peppers)나 비운의 LA 록밴드 도어스(The Doors) 등에 비유된다. 정작 하현우는 이들보다 강렬한 인더스트리얼 록 계열인 마릴린 맨슨(Marilyn Manson)의 노래를 즐겨 들었다. 이는 곧 국카스텐이 추구하는 음악의 폭이 그만큼 넓다는 뜻이다.

팬들은 하현우를 ‘그쌤’이라고 부른다. 앨범에 수록된 얼간이를 뜻하는 그의 별명 ‘그리부이’에 선생님을 합친 조어다. 이렇게 부르는 이유는 그가 쓴 노랫말 때문이다. ‘다정하게 오염이 된 마술의 노래’(파우스트 가사), ‘조립을 하는 내몰린 몽상아’(몽타주 가사) 등의 노랫말은 시적이며 현학적이다.

국카스텐과 하현우의 이 같은 특징은 크라잉넛 등 기존 인디 1세대와 차별화 되며 인디2세대로 자리매김하게 만들었다. 그런 그들은 2012년 MBC 예능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2’에 출연하면서 인디 음악을 벗어나 본격 대중음악계의 주류로 진입하게 됐다.

국카스텐은 가수들이 다양한 노래로 경합을 벌이는 이 프로그램에서 해바라기의 ‘어서 말을 해’, 이장희의 ‘한 잔의 술’ 등 포크 넘버를 강렬한 록으로 변모시키며 대중을 사로 잡았다. 팬들은 “비밀의 섬이었던 국카스텐이 관광지가 됐다”며 그의 인기몰이에 대해 걱정과 환호를 동시에 보냈다.

지난 5일 방송된 MBC '복면가왕'에서 록 밴드 국카스텐의 보컬 하현우가 20주 만에 복면을 벗고 정체를 드러냈다. MBC 화면캡쳐.
시련을 딛고 도약하는 ‘우리나라 음악대장’

그러나 성공 뒤에 예기치 않은 시련이 찾아왔다. 국카스텐은 2011년 대중에게 좀 더 다가가기 위해 소속사를 예당으로 옮겼다. 그런데 예당은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국카스텐과 맺은 계약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다. 결국 국카스텐은 2013년 법적 분쟁에 휘말리면서 활동을 하지 못했다. 신해철이 이들의 분발을 촉구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 나온 말이었다.

국카스텐은 소송이 일단락 된 뒤 2014년 디지털 싱글 ‘감염’을 발표했다. 같은 해 11월 2집 앨범 ‘FRAME’을 내놓고 다시 왕성한 공연 활동을 시작했다. 시련을 겪은 만큼 사회 현상을 음악에 담으려는 고민도 깊어졌다. 거주지가 안산인 하현우는 2집에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작은 인질’이라는 노래를 담았다.

오래 준비한 해외 진출의 꿈도 가시화되고 있다. 올 상반기 미국, 영국, 프랑스에서 열리는 세계 3대 음악마켓에 대표로 참가하게 될 국내 뮤지션 12개 팀에 들었고 지난 3월 일본 도쿄에서 공연을 가졌다. 7개월 만에 새 싱글 ‘PULSE’도 12일 공개 예정이다.

복면가왕의 출연을 통해 임재범 윤도현 김경호 등에 이어 ‘대중을 아우를 만한 록 스타’ 반열에 오른 하현우는 더 높은 목표를 향해 새로운 도약을 시작했다. 이제 세계를 무대로 한 ‘우리나라 음악대장’의 활약을 지켜볼 차례다.

유환구기자 red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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