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환이 지난 2일 인천시청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리우 올림픽에 출전하게 해 달라고 호소하며 큰 절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통합 대한체육회가 외풍으로 첫 스텝이 꼬이는 모양새다. 박태환에 대한 리우 올림픽 출전 불허 결정이 역풍을 맞고 있기 때문이다. 박태환은 2014년 9월 인천아시안게임 직전 검사에서 금지약물 양성반응을 보여 이듬해 3월 국제수영연맹으로부터 18개월 자격정지 징계를 받았다. 약물의 힘을 빌려 딴 아시안게임 6개의 메달도 박탈당했다.

박태환에 대한 징계는 지난 3월 끝났다. 하지만 ‘징계 만료 후 3년이 지나지 않으면 대표 선수를 할 수 없다’는 대한체육회 규정에 따라 태극마크를 달 수 없다. 그러나 박태환은 국제 룰에 반하는 ‘이중 처벌’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실제 지난달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체육회의 규정이 부당하다며 제소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박태환은 한편에선 CAS 제소, 다른 한편으론 읍소 퍼포먼스로 여론을 움직이려 했다.

박태환의 읍소 퍼포먼스에 정ㆍ재계에서도 거들고 나섰다. 유정복 인천시장과 박용만 두산 인프라코어 회장, 그리고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가 박태환 구명 운동에 말을 보탰다. 특히 박 회장은 자신의 SNS에 “박태환을 도와주세요. 언제부터 국제기준보다 더 엄격한 규범을 우리가 적용해 왔었나요? 정말 그랬으면 진작에 우리 사회가 선진화되었을 텐데요”라는 글을 올렸다. 박태환에 대한 애정과는 별개로 국내 규정을 비하하는 듯한 뉘앙스가 담겨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김정행 체육회 공동회장도 “여론 70% 이상이 찬성하고 있다”며 박태환의 올림픽 출전을 옹호했다. 그는 사견임을 전제로 했으나, 체육회가 내린 결정에 대해 수장으로서 부적절한 엇박자를 냈다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

박태환의 올림픽행 찬성파들의 논리는 단순하다. 세계적인 스타에게 ‘명예회복’ 기회를 주자는 것이다. 요컨대 동정론이다. 차범근 전 축구대표팀 감독 역시 규정에 발목이 잡혔으나 국민 여론을 등에 업고 분데스리가에 안착할 수 있었다. 당시 서독 주재 대사관에서 차범근이 오지 않을 경우 한국의 이미지가 손상될 수 있다는 협조 공문을 당국에 보내기도 했다. 최근에는 여자배구 김연경이 동정론의 최대 수혜자다. 김연경은 소속팀 흥국생명과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둘러싸고 2년여 공방을 벌였다. 그러나 국제배구연맹이 김연경의 손을 들어줬고, 역시 여론의 압도적 지지가 있었기에 해외 진출도 가능했다.

이런 사례에 비춰 보면 약물 복용 꼬리표에도 불구하고 박태환의 리우행이 가능하겠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세계반도핑기구(WADA)는 약물 혐의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는데도 “러시아와 케냐 육상 선수들의 리우 올림픽 출전을 금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주목할 점은 특정인이 아니라 종목 전체 선수에 대해 출전 불허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럴 경우 여자 장대높이뛰기 세계신기록을 보유한 옐레나 이신바예바도 발이 묶이게 된다. 하지만 이신바예바가 WADA의 ‘월권’에 대해 제소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스포츠의 생명은 승자의 환호가 아니라, 페어플레이와 룰이다. 이를 통해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물한다. 챔피언 못지않게 꼴찌와 패자들도 박수를 받는 이유다. 하지만 박태환의 최근 행태를 보면 박수를 치기 어렵다. 설령 CAS에 호소해 ‘이중처벌’ 규정을 바꾸고 리우에서 메달을 목에 걸더라도 무슨 감동을 받을 수 있을까. 그보다는 ‘제2의 박태환’에게 출전티켓을 양보해 경험을 쌓게 하는 것이 더 아름답지 않을까.

과거의 한국 체육은 동정론에 귀를 기울인 측면이 많았다. 이 과정에서 부정과 비리가 ‘인정’이라는 미명으로 치장돼 통용되기도 했다. 이젠 달라져야 한다. 승부 조작ㆍ편파 판정 등 구악을 일소하고 출범한 통합체육회가 해야 할 첫 과제는 눈물과 호소, 여론에 따라 춤을 추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과 원칙이 작동하는 건강한 스포츠 생태계 구축이어야 한다.

최형철 스포츠부장 hcc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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