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과 대지를 먹고 빨갛게 익은 제철 토마토를 베어 물면 무궁무진한 맛이 한 입에 터져 나온다. 게티이미지뱅크

어느새 높아진 태양을 짊어지고 서점에 갔더니 소설 코너에 '치킨의 50가지 그림자'라는 책이 놓여 있었다. 전 세계적으로 히트한 에로 소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패러디했다고 표지에 적혀 있다. 섹시한 요리사와 영계 아가씨의 은유적인 19금 성애가 화끈하게 펼쳐질 때마다 닭 요리가 하나씩 완성된다. 야하다가도 웃긴 혼합 장르 책이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이후 미국에서 수많은 패러디 책이 나왔다고 한다. 요리 부문에서도 '케일의 50가지 그림자' 등 다양한 시도가 있었지만 이 책이 가장 성공적이라고 한다. 한국에 갓 번역서가 나왔다.

야할까 웃길까 망설여지는 가벼운 내용에 비해 레시피는 제법 번듯하다. 담백한 물성을 지녀 마치 도화지처럼 모든 맛을 포용하는 재료인 닭으로 할 수 있는 요리야 워낙 다양하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그러고 보면 '치킨의 50가지 그림자' 보다야 '토마토의 50가지 그림자'가 먼저 나왔어야 옳다. 닭이 흔한가, 토마토가 흔한가? 닭의 아성도 어마어마하지만, 아마도 한 줄기에 여러 송이가 주렁주렁 열리는 토마토가 앞설 것이라 감히 주장해 본다.

토마토는 어디에나 있다. 토마토는 어느 대륙에서나 자라고, 어떤 음식 문화권에서도 유용하게 쓰인다. 토마토가 채소라는, 상식 퀴즈 같은 정의가 굳어져 있지만, 실상은 과일인지 채소인지 중요하지 않다. 먼 옛날 미국을 드나들던 무역상이 더 유리한 관세를 적용 받기 위해 채소로 적어낸 것을 계기로 채소로 굳어졌다는 비화도 있다. 생으로 과일처럼 먹다가, 요리 재료로 가열 조리할 때엔 채소처럼 쓰기도 하는 만능 재료 정도로 정의하자.

맛도 영양도, 조리법도 무궁무진

빨갛게 잘 익은 산 마르차노 품종의 토마토는 다시마 이상으로 감칠맛을 낸다. 글루탐산이 풍부해서다. 비타민C, 비타민E 외에도 강력한 항산화성분인 라이코펜이 풍부한데, 이 모든 성분들 역시 글루탐산과 마찬가지로 붉게 익으면서 함량이 높아진다. 라이코펜은 기름을 만나면 더 많이 몸에 흡수된다.

영양 면에서 이 모든 혜택을 누리자면 대체 얼마나 많이 먹어야 눈에 띄는 효과가 나타나는지에 대한 수치화된 자료는 찾기 힘들다. 일단은 열심히 먹어 보자. 적어도 맛은 대단히 좋으니까. 든든하게도 5대양 6대주 어디에서나 토마토를 맛있게 먹는 방법에 대한 연구가 완료돼 있다.

마침 여름이 다가온다. 토마토가 맛나게 영글고 있다. 토마토도 언젠가부터 사철 나오는 생활 작물이 되긴 했다. 그러나 텃밭에서 토마토를 키워봤다면 안다. 대지와 태양을 양껏 먹고 자란 6-7월의 제철 토마토는 온실에서 곱게 자라 플라스틱 상자에 참하게 담겨 나오는 하우스 토마토에 댈 게 아니다. 달다, 시다, 짜다 같은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농축된 맛이 난다.

하지만 썩어도 준치요, 일러도 토마토다. 토마토 철을 맞아 '토마토의 50가지 그림자'를 준비했다. 단, '치킨의 50까지 그림자'처럼 야하진 않다.

새콤달콤한 맛을 살린 차가운 토마토

추억 속 토마토는 여름날 엄마가 썰어 내 준 설탕 토마토(1)가 압도적이다. 냉장고에서 차게 식혀진 그 붉은 과실은 한 입 크기로 얌전히 놓여 있었다. 흰 설탕이 솔솔 뿌려져 있지 않으면 눈물을 쏙 뺄 정도로 서운했다. 흥건하게 빠져 나온 토마토 속즙은 설탕을 만나 화룡점정을 이뤘다. 후루룩, 언제나 토마토 간식의 대미는 진득한 설탕물로 마무리 됐다. 접시에 고인 즙은 달고 시원했다.

목 마른 한낮엔 주스(2)이기도 했다. 강판에 석석 갈아서, 아니면 믹서에 휙 갈아서 농도 있는 액체를 만들어냈다. 거기에 설탕, 아니면 향 좋은 꿀을 한 술 듬뿍 넣으면 묵은 갈증이 다 풀렸다. 한 때 '미제 가게'에서만 팔던 V8 토마토 주스 캔(3)은 단맛에 앞서 짠맛과 감칠맛이 강하게 나 주스보다는 요리 같았다. 호불호가 극명히 갈렸다. 지금은 정식 수입되고 있는데 아무래도 오랜 팬들의 의리 덕분에 가능했던 일로 보인다.

잘 익은 토마토는 그 자체로 맛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사실 가장 맛있는 것은 토마토를 통째로 베어 물 때(4)다. 터질 듯한 얇은 껍질을 치아가 통과하자마자 속의 풍부한 육즙이 뿜어져 나온다. 그저 토마토 자체로 맛 있으려면, 즉 풋풋한 흙의 향, 태양열에 녹아 섞인 듯 복잡한 맛이 다 담겨 있으려면 앞서 얘기한 제철, 노지, 완숙 토마토여야 한다. 철 밖에 나온 토마토, 다 익기 전에 따 유통 중 붉어진 토마토는 확실히 밍밍하다.

소금과 오일로 맛을 낸 단순한 토마토 샐러드로도 충분하다. 게티이미지뱅크

한 입 크기로 썬 토마토에 소금을 살살 뿌려 과일향을 지닌 좋은 올리브오일을 뿌리고 뒤섞는 것으로 끝이다. 가장 간단한 토마토 샐러드(5)다. 이 간단한 방법에 다른 재료가 추가되면 각기 다른 이름의 샐러드가 된다. 슬라이스 한 토마토와 프레시 모차렐라 치즈(기왕이면 물소 젖으로 만든 것!)를 겹쳐 놓고 소금과 올리브오일, 발사믹 식초를 흩뿌리면 카프레제 샐러드(6)가 뚝딱 완성된다.

신선함이 돋보이는 토마토 샐러드. 게티이미지뱅크

토마토, 아니면 색색의 방울토마토와 비슷한 크기로 썬 리코타치즈(혹은 페타치즈), 아니면 두부를 곁들이면 그 또한 각각의 샐러드가 된다. 리코타치즈 토마토 샐러드(7), 토마토 두부 샐러드(8)다. 두부 샐러드엔 소금이나 발사믹 식초 대신 간장도 드레싱으로 어울린다.

타코, 부리토, 엔칠라다 등 남미 음식에 들어가는 살사 소스(9)는 재료와 조리법으로 보자면 샐러드가 그대로 소스가 된 것이다. 잘게 다진 토마토, 양파, 빨간 파프리카나 피망에 고수와 라임즙이 들어가면 근사하다.

거칠거칠한 수퍼 곡물 퀴노아도 토마토와 잘 어울린다. 잘게 다진 토마토와 파프리카, 새싹채소, 양파 등을 뒤섞고, 익힌 퀴노아 위에 얹는다. 토마토 퀴노아 샐러드(10)다. 이때 겉과 속을 바꾸어 속을 파낸 토마토 안에 다른 재료들을 넣으면 눈이 즐거운 토마토 컵 샐러드가 된다.

콘킬리에 파스타를 이용한 토마토 파스타 샐러드. 게티이미지뱅크

퀴노아보다 무난한 조합은 사실 파스타다. 펜네나 푸실리 같은 한 입에 먹기 좋은 파스타를 잘 삶아 넣으면 샐러드 느낌의 토마토 콜드 파스타(11)도 만들 수 있다. 콘킬리에(조개 모양의 숏 파스타), 파르팔레(나비 넥타이 모양의 숏 파스타), 오르키에테(귀 모양을 닮은 숏 파스타), 아니면 마카로니 같은 작은 파스타를 이용하면 속을 파낸 토마토 안에도 쏙 들어간다. 토마토 컵 콜드 파스타를 만든다면 갖가지 채소보다는 바질페스토에 버무린 숏 파스타 하나만 넣어도 충분하다.

곡물 모양과 크기의 중동식 파스타, 쿠스쿠스로 응용 메뉴를 만든다면 파스타보다는 퀴노아 레시피에 적용하는 게 더 잘 어울린다. 이름은 토마토 쿠스쿠스 샐러드(12) 정도면 적당하다.

토마토는 무엇이든 되는 요리 재료
시원한 토마토 수프. 토마토 가스파초. 게티이미지뱅크

시원한 토마토 요리는 샐러드와 파스타 외에도 또 있다. 토마토 가스파초(13)다. 차게 먹는 토마토 수프다. 토마토를 레몬즙, 소금, 후추와 함께 덩어리 없이 부드럽게 갈고, 오목한 그릇에 담아 올리브오일을 한 번 둘러주면 된다. 파프리카, 양파, 오이, 샐러리 등 더 풍부한 맛을 내는 다른 채소들은 취향대로 넣어도 그만, 안 넣어도 그만이다.

뜨거운 토마토 수프(14)는 이 땅의 다이어터들에겐 '마녀 수프'라는 이름이 더 친숙하다. 하지만 실제의 토마토 수프는 차라리 살 찌는 음식처럼 보이기도 한다. 양배추, 콩, 고기 등 더 많은 부재료가 듬뿍 들어갈 수 있다. 그 살 찌는 것들을 잘게 썰어 푹 끓인다. 강렬한 붉은 색을 크림으로 누그러뜨린 토마토 크림 수프(15)엔 고소하게 크림이 추가되고, 어지간하면 부재료를 갈아 넣는다는 차이가 있다. 프랑스 프로방스 지방의 음식인 부야베스(16)도 수프에 가깝다. 게, 새우, 오징어 무엇이든 바다의 것과 갖가지 채소, 토마토를 넣어 끓인 국물 요리다.

토마토를 맛있게 먹기 위한 도구 중 하나가 오븐이다. 토마토와 마늘을 갈아 소금간한 것을 얇게 썬 바게트 위에 발라 그대로 구우면 맛있는 토마토 토스트, 판콘토마토(17)가 된다. 가지 토마토 구이(18)도 맛있다. 가지를 길쭉하게 저며 간 토마토, 치즈를 얹어 오븐에 굽는다.

선드라이드토마토. 게티이미지뱅크

토마토를 적당히 슬라이스해 말리는 정도로만 구우면 선드라이드토마토(19) 비슷한 모양새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역시 최고는 쨍쨍한 햇살에 짭짤하게 말린 진짜 선드라이드토마토다. 같은 토마토 페이스트(20)라도 선드라이드토마토 페이스트가 훨씬 맛이 진하다.

속을 채운 토마토 오븐 구이. 게티이미지뱅크

속을 파낸 토마토 안에 졸인 토마토 소스와 고기 종류, 혹은 삶은 콩 종류를 넣고 위에 치즈를 수북이 얹어 구우면 반칙 수준으로 맛있는 토마토 오븐 구이(21)를 만들 수 있다. 가지, 애호박 등 냉장고 속 채소를 자투리까지 모두 꺼내 슬라이스 하거나 한 입 크기로 썰어 토마토 소스를 붓고 치즈를 얹어 오븐에 구우면 라타투이(22)가 된다.

강렬한 존재감, 토마토 소스

토마토 소스 이야기가 나왔으니 흐름은 이제 더 빨라진다. 토마토와 양파, 마늘, 당근, 샐러리, 몇 가지 허브, 소고기 간 것이 들어가면 볼로네즈 소스(23)다. 라구 소스가 이 종류다. 간 고기를 소스에 풀어 넣는 대신에 따로 뭉쳐 놓고 소스를 끼얹으면, 토마토 소스 미트볼(24) 혹은 토마토 소스 햄버거스테이크가 된다. 소고기 대신 햄이 들어가면 나폴리탄 소스(25)가 된다. 소고기도 햄도 들어가지 않으면? 마리나라 소스(26)다. 고추를 넣어 매콤한 맛을 더하면 아라비아타 소스(27)라고 한다. 크림을 섞으면 부드러운 분홍빛을 띈 로제 소스(28)가 된다.

토마토 소스 미트볼. 게티이미지뱅크

이름이 많고 낯설 뿐, 요체는 간단하다. 토마토를 끓이되, 제 각각의 맛을 더한 것에 불과하다. 원리가 같으니 이것만 제대로 알면 된다. 토마토 소스는 재료를 최대한 센 불에 볶다가 최대한 약한 불에서 오랫동안 뭉근하게 끓이는 것이 관건이다. 물론 오래 공들일 가치가 있다.

토마토 소스는 어디로든 확장된다. 토마토 소스 파스타(29)부터도 종류가 한도 끝도 없다. 어떤 종류의 소스와 부재료가 들어가는가에 따라 이름이야 짓기 나름. 대신 토마토 소스와 치즈가 만두피 안에 꽉 들어간 라비올리(30)나 넓적한 파스타와 토마토 소스를 층층이 쌓고 치즈로 머리를 올린 라자냐(31)는 그에 비해 형태와 이름이 특징적으로 짝지어진다.

소고기와 버섯이 들어간 굴라쉬. 게티이미지뱅크

토마토 소스가 다른 나라로 넘어가면 또 다른 이름을 갖는다. 중동 쪽에선 매콤한 토마토 소스 한 가운데 달걀 몇 알을 퐁퐁퐁 넣어 끓여 먹는다. 샥슈카(32)라고 한다. 헝가리에서는 굴라쉬(33)가 된다. 소스라기보다는 수프나 스튜에 가깝다. 고기와 콩을 잔뜩 넣고 매콤한 맛을 더하면 미국식 칠리가 되기도 한다. 일본식 ‘카레’, 혹은 인도식 ‘커리’를 만나면 토마토 카레 또는 토마토 커리(34)가 되기도 한다. 일반 카레와 똑같이 끓여도 감칠맛이 한층 깊다.

토마토 카레에서 카레(나 커리)를 빼면 그것이 곧 토마토 스튜(35)다. 볼로네즈 소스를 끓일 때와 원리가 같다. 간 고기 대신에 꽉 찬 한 입 사이즈의 고깃덩어리와 채소들이 들어가면 된다. 살코기 대신에 갈비가 들어가고 수분을 좀더 적게 잡으면 토마토 갈비찜(36)이 나온다. 갈비 대신에 소(기왕이면 송아지) 정강이뼈나 꼬리 부위를 넣으면 근사한 이탈리아 요리가 된다. 오소부코(37)다. 벌집양이나 양깃머리를 사용하면 트리파(38)가 되는데 여기에 도가니, 힘줄이나 곱창이 함께 들어가도 큰 탈은 나지 않는다. 토마토 갈비찜이나 오소부코, 트리파는 쿠스쿠스나 퀴노아, 아니면 묽은 죽 같은 폴렌타에 곁들여 먹기 딱 좋다.

단순함의 미학, 마르게리타 피자. 게티이미지뱅크

토마토 소스의 무한한 쓰임새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글루텐의 마법으로 쫀쫀하게 부활한 밀가루 도우 위에 토마토 소스를 펴바르고 치즈를 얹어 화덕의 강한 복사열에 구워야 한다. 피자다. 프레시 모차렐라 치즈와 바질 잎, 토마토 소스 외엔 아무 것도 얹지 않는 마르게리타 피자(39)는 토마토 향을 물씬 즐길 수 있는 종류다. 이탈리아 각 지방마다 유서 깊은 피자가 이외에도 즐비하지만, 순혈주의를 고집하지 않는다면 미국식 페페로니 피자(40)도 훌륭한 음식이다. 짭짤한 페페로니와 토마토 소스의 감칠맛이 이루는 조화는 오늘도 '1588'로 시작하는 주문 전화번호를 찾게 만든다.

가끔 피자보다는 햄버거 세트를 주문하고 싶을 때도 있다. 어쩌면 두툼한 햄버거(41) 안의 토마토보다는 짭짤한 감자튀김에 따라오는 토마토 케첩(42) 맛이 그리워서일지도 모른다. 시판 케첩이 문득 달게 느껴진다면, 착각이 아니라 현실이다. 시판 토마토 케첩엔 생각보다 어마어마한 설탕이 들어간다. 지나치게 달기만 달다. 원래는 단맛 외에도 여러 맛이 나는 음식인 케첩쯤은 집에서 한 번 만들어 보자. 잘 익은 토마토, 양파와, 설탕이나 꿀, 소금, 식초, 바질과 허브를 넣고 끓이면 완성된다. 생각보다 간편하고 쉽다. 시간 문제일 뿐이다. 잘게 썬 토마토와 양파가 녹아 형체가 없어지고, 액체라고 부를 수 없이 진득하게 졸아들 때까지 오래오래 끓이기만 하면 된다.

달걀과 토마토의 환상적인 조화
방울 토마토를 듬뿍 넣은 프리타타. 게티이미지뱅크

끈질기게 끓이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빠르게 볶는 레시피도 있다. 토마토를 볶을 때는 달걀이 잘 어울린다. 대표적인 것이 프리타타(43)다. 토마토와 시금치를 위시한 온갖 채소, 치즈, 햄, 파스타 등 넣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달걀과 함께 섞어 팬에 구워 갈색으로 겉을 익힌 프리타타는 오픈 페이스드 오믈렛이라고도 부른다.

아침 식사로 든든한 토마토 스크램블드 에그. 게티이미지뱅크

토마토와 양파 정도를 잘게 다져 물기가 제거되도록 볶아 오믈렛 안에 넣으면 전형적인 토마토 오믈렛(44)이다. 오믈렛을 말다가, 혹은 뒤집다가 실패했을 때는 빠르게 뒤적뒤적 섞어 버리자. 토마토 스크럼블드 에그(45)로 변신시킬 수 있다. 서양 음식 같지만 중국 음식 중에도 토마토 달걀 볶음이 있다.

토마토 스크럼블드 에그 혹은 토마토 달걀 볶음은 달걀이 다 익기 전, 촉촉한 상태에서 부드럽게 먹는 게 맛있다. 수분이 다 날아갈 때까지 볶아버리면 퍽퍽해진다. 그럴 땐 고슬고슬한 찬 밥과 함께 기름에 볶아 토마토 달걀 볶음밥으로 환생시킬 수 있다. 밥이 있다면, 반찬도 필요하다. 오이 피클보다 단맛을 덜어낸 촛물에 담근 토마토 피클(46)이 적당하다. 피클처럼 산미가 톡 쏘는 토마토 물김치(47)도 달달한 향이 감도는 시원한 맛이 좋다.

오밤중에 라면이 생각날 때는 토마토 라면(48)이 제격이다. 토마토가 들어가면 니글거리는 라면 맛이 개운해진다. 먹어 보기 전까진 상상하기 힘든 맛이지만, 뜨거운 국물의 국수 요리에 토마토가 들어가는 것은 동남아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예다. 토마토 쌀국수(49)는 특히나 맛이 좋다. 거기에 아직 푸릇푸릇한 토마토를 슬라이스해 튀김옷을 입혀 튀긴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50)를 곁들이면 더할 나위가 없다.

요리에 적합한 토마토가 따로 있다

제철 토마토에겐 미안하지만 토마토 요리에는 수입된 캔 제품이 적합하다. 토마토 종류가 아예 달라서다. 토마토는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새빨간 가열용 토마토와 완숙되어도 분홍 빛을 띈 생식용 토마토다.

가열용 토마토는 껍질이 두껍고, 홍옥마냥 붉은 색이 특징인데, 국내에서는 유통되고 있지 않다. 맛 차이도 크지만 영양소 면에서도 생식용에 비해 주요 성분 함량이 월등히 높다. 생식용 토마토는 과일처럼 먹기나 주스용으로는 적합하나, 푹 끓여 놔도 특유의 감칠맛이나 풍부한 맛이 부족해 많이 아쉽다.

대신 이탈리아, 스페인 등 토마토를 사랑하는 지중해 연안 지역에서 제조된 캔 제품이 다양하게 들어와 있다. 토마토 캔은 가장 잘 익었을 때 수확해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껍질을 벗겨 토마토 퓨레(토마토를 3배로 농축한 것)에 담가 밀봉한 후 가열 살균한 것이다. 수출하긴 하지만, 본 목적은 수출용 가공품이 아니다. 노지 재배하는 가열용 토마토를 여름 한 때뿐 아니라 철 없이 1년 내내 먹기 위해, 즉 그들 자신의 식탐을 위해 고안한 저장법이다. 토마토 캔은 크게 토마토를 통째로 넣은 것(홀 whole), 작은 주사위 모양으로 썬 것(다이스드ㆍdiced) 두 가지로 나뉘는데 용도에 따라 골라 쓰면 된다. 두 종류 이외에 으깬 것과 간 것도 있다.

생 토마토의 신선함을 포기할 수 없다면 짭짤이 토마토나 방울토마토 종류가 맛이 좀더 진해 요리에 쓸 만하다. 이때도 캔 제품을 밑바탕으로 쓰되, 요리 완성 직전에 생 토마토를 더하는 방법으로 신선한 맛을 더할 수 있다.

이해림 객원기자 herimthefoodwrit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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