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 천일야화] 7. 이란에 대한 오해와 편견

여행객들이 쉬라즈 하페즈영묘를 둘러보고 있다. 하페즈는 이란 국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이다.

2014년 1월14일 이란의 고대도시 쉬라즈. 고동색 히잡에 잠자리 안경을 쓴 현지 여성가이드 소마이예가 가장 먼저 이끈 곳은 하페즈 영묘였다. 14세기 소박하고 서정적인 시를 남긴 국민시인의 묘지다. 석관을 어루만지던 그는 한참을 뭔가 읊조리다 또 다른 서정시인 사디의 영묘로 이방인을 인도한다. 굳이 시인의 영묘를 먼저 보여주는 것은 소마이예의 취향 때문만은 아니었다. 두 시인은 우리로 따지면 윤동주와 김소월 반열이었고, 소마이예가 읊조린 것은 이들의 시였다.

1935년까지 페르시아로 불렸던 이란 얘기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란 대통령인 로하니에 이어 최고지도자인 하메네이를 만난 얘기며, 42조원의 프로젝트 수주로 ‘제2의 중동붐’이 일 것이라는 전망하며, 루사리를 통해 본 히잡의 역사와 종류까지 이란이 단연코 화제 1순위다.

이 대목에서 심사가 비틀어지기 시작했다. 지난해까지도 이 나라는 미국이 분류한 ‘악의 축’ 국가 중 하나였고, 이란 땅으로 들어가면 곧 테러라도 당할 것처럼 떠들었다. 오바마가 관계를 개선한 후 악마의 나라가 하루 아침에 형제국에 기회의 땅으로 바뀌는 국제외교 무대는 낯설다.

사실 2년 전 에미리트항공의 A380기를 타고 두바이를 경유해 테헤란으로 넘어갈 때만 해도 내심 조마조마했다. 이란혁명, 이라크와의 8년 전쟁, 미국과의 대치로 위험국가라는 고정관념이 박혀있었다.

테헤란공항 로비에 내걸린 두 명의 대형 사진도 위협적이었다. 이란의 영적지도자인 호메이니와 현 최고지도자인 하메네이였다. 이란의 모스크와 거리, 공공기관에서 숱하게 만나야 했던 인물이기도 했다. TV 속에서 봤던 이 동네 남자들 인상은 거의 테러리스트 수준이다. 하물며 전ㆍ현직 최고지도자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테헤란의 호메이니영묘에는 지폐가 수북히 쌓여있다.

가장 먼저 테헤란 도심으로 진입하는 길에 이란의 영적지도자인 호메이니 영묘부터 들렀다. 공사 중인 이곳에는 호메이니와 그의 두 아들, 하메네이의 대형 초상화가 걸려있었고 철창과 유리로 격리된 영묘 앞에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오는 검은색의 차도르를 입은 여인이 꾸란을 읽고 있었다. 철창 틈새로 밀어넣은 지폐가 늦가을 낙엽처럼 쌓여있었다. 절 연못에 동전이 쌓여있는 느낌이었다. 이슬람과 영묘의 지폐, 뜻밖의 조합이었다.

갑자기 중국 베이징 천안문광장의 마오쩌둥기념관이 오버랩됐다. 유리관 속에 누워있는 마오쩌둥을 한 번 보려면 신경을 바짝 곤두세워야 한다. 기념관에 들어서면 정지는 없기 때문이다. 얼굴 구경해보겠다고 멈췄다가는 당장 인민해방군 병사들에게 끌려나갈 각오를 해야 한다. 30분 줄서서 10초 볼까 말까한 중국까지는 아니더라도 호메이니 영묘는 너무 허술했다. 카메라 반입을 막았으면 휴대폰 사진도 금지하는 것이 맞는데, 모두 스마트폰 들고 얼짱 각도로 셀카 찍느라 바빴다.

영묘의 지폐 얘기가 나왔으니 이슬람의 5대 의무 중 하나인 자카트(헌금)를 보면 종교간의 차이를 조금 발견할 수 있다. 개신교는 잘 알려진 바대로 수입의 10%를 기부하는 십일조를 적용하고, 가톨릭도 통계상 4%선으로 알려져 있다. 헌금 비중으로 보면 이슬람이 가장 적다. 2.5%다. 사원이 아니라 주위의 불우이웃에게 나눠줘도 자카트 의무를 다하는 것으로 인정받는다. 하지만 신자 소리를 제대로 듣기 위해서는 어느 종교나 플러스 알파가 요구된다.

테헤란의 카펫박물관과 사드 아바드 궁전, 골레스탄 궁전, 중앙은행 지하에 있는 국립보석박물관도 좋았지만 역시 사람 냄새를 맡는데는 시장이 최고였다. 전통시장인 바자르 안에는 비단으로 만든 차도르에다 페르시아 카펫이 독특했지만 사람 구경하는 재미만 못했다. 바자르를 오가는 여성 대부분은 검은색 차도르를 입고 있었고 남성 복장도 검은색이 주류였다. 심지어 이란 하늘을 나는 새도 까마귀 일색이다. 이란의 상징색은 단연코 검정이었다.

이란 이스파한의 이맘광장에서 만난 현지 여성들의 히잡은 패션아이템이었다.

그렇지만 박 대통령의 루사리에서 볼 수 있듯 히잡은 더 이상 억압의 상징만은 아니었다. 푸른색 히잡에 푸른색 마스카라를 하고 선글라스를 걸친 여성을 보면 히잡이 패션의 도구가 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테헤란공항에서 상견례한 한국 여행단의 히잡 변천사도 눈여겨볼 만 했다. 의무라니까 당초 회색 계통의 히잡을 둘렀던 여인들이 날이 지날수록 빨강 파랑 노랑 초록 등 천연색 히잡으로 탈바꿈했다. 버스에서도 식당에서도 히잡을 벗지 않는 것을 보면 이슬람여인 다 됐다.

차도르와 히잡으로 중무장한 이들 이란 여성들이 폐쇄적일 것이라는 선입견도 단번에 깨졌다. 바자르 옆 왕궁에서 만난 테헤란대 여대생 바란씨도 차도르로 온 몸을 가리고 있었지만 왕궁 내 이곳 저곳을 직접 안내해 줄 정도로 발랄했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하는 그는 교사가 꿈이라고 했다. 페르시아 여인이 영어를 말하는 것도 신기했지만 동방의 이방인을 스스럼없이 대하는 대목에서 와장창 고정관념이 깨져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이란을 여행하다보면 가끔 화장실을 잘못 들어왔나 싶을 때가 있었다. 남성화장실 표시를 보고 들어갔는데 소변기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다시 나와서 남성 표시 확인하기를 거듭했다. 이는 이슬람 율법에 남성도 앉아서 소변을 보도록 했기 때문이란다. 다른 것은 몰라도 화장실 문화는 오래 전부터 남녀평등이다.

이것 만이 아니다. 이란에서는 여성이 부모를 모시고, 돌아가시면 기일도 챙긴다. 이슬람이 태동한 1,400여 년 전부터 여성의 재산소유권도 인정받고 있다.

테헤란 도심에서 어렵사리 '서울로' 간판을 찾았다. 1977년 서울에는 테헤란로, 테헤란에는 서울로와 서울공원이 선보였다.

페르시아의 영광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이란이지만 우리나라 사람, 특히 남성들은 이곳에서 오래 버티기 힘들다. 거리가 멀고 언어가 통하지 않는 것은 둘째 문제다. 바로 술을 구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설마했는데 진짜 열흘 가까이 이란에 있는 동안 술 한 방울도 구경하지 못했다. 당초 나와 동행하기로 한 여행매니아는 무알콜국가라는 소리를 듣자마자 이란행을 포기했다.

그렇지만 하페즈영묘가 있는 쉬라즈는 포도주의 고향이었다. 호주산 포도주 중에도 이곳 지명을 딴 쉬라즈가 있다. 하페즈는 틀림없이 포도주 애호가였을 것이다.

이란 사람들의 가정마다 최소한 두 권의 책이 있다고 한다. ‘꾸란’과 ‘하페즈 시집’이다. 시를 사랑하는 국민이다. 이란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봄눈 녹듯 사라졌다.

jhj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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