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명목의 정책경쟁 활발 전망

공적 자금은 최후에, 최소 규모로

주식시장 통한 자본조달 유인해야

20대 총선 민의를 곱씹으며 여야가 ‘민생’의 이름으로 내년 대선까지 정책경쟁을 벌일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 정쟁과 정략이 아닌 정책경쟁이 대선국면을 주도한다면, 이 역시 이번 선거혁명의 성과가 될 수 있겠다. 그러나 민생을 살린다는 명분으로 포장할 정책이 기득권 유지를 위한 술수에 불과하거나 표를 의식한 실효성 없는 구두선에 그칠 수도 있음은 경계해야 한다.

총선이 끝나기 무섭게, 조선 및 해운 산업 구조조정 문제가 주요 경제정책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조선 및 해운 산업의 구조조정 필요성과 급박성에는 누구나 쉽게 공감할 만하지만, 이런 구조조정이 진정 민생을 위한 정책으로 귀결할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따라서 조선 및 해운 산업의 구조조정이 민생을 위한 여야 정책경쟁의 첫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 같다.

사실, 과거 정부주도의 많은 구조조정은 국민 세금으로 기업의 부실 채무를 탕감하고 자본도 보충해 준 뒤 부실 경영에 책임이 있는 재벌 총수 일가에게 기업을 돌려주는 기득권 유지ㆍ강화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 예가 많았다. 이런 구조조정은 재벌 총수들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고 국가재정을 재벌의 사금고로 전락시키는, ‘민생’이름으로 이뤄지는 가장 반(反) 민생적 정책이다.

조선 및 해운 산업 구조조정이 과거의 실패를 답습하지 않기 위해서는, 정부가 공적 자금을 동원해 기업을 회생시켜야 한다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 공적 자금 투입은 최후의 수단이고 최소화해야 한다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 따라서 정부는 부실기업에 대한 회생절차가 아니라 주주와 채권단이 자발적으로 매각과 청산 절차를 밟도록 우선적으로 유인해야 한다. 이와 같은 방안이 여의치 않다면, 산업은행이 아닌 제3의 별도 전담기구를 구성해 부실기업의 주식을 매입한 후 부분 매각 및 구조조정 절차를 밟아야 한다. 이 모든 과정에서 경영 실패의 책임과 비용을 지배주주, 주주, 채권자 순으로 부담시키는 원칙을 꼭 지켜야 한다.

구조조정 절차에서 공적 자금이 투입되어야 한다면, 철저히 수익성을 기준으로 공적 자금의 규모를 결정해야 한다. 일시적 유동성 위기가 경제위기를 야기할 수 있는 은행산업이나 보험산업이 아닌 이상 공적 자금 투입을 정당화하긴 쉽지 않다. 오히려 국책은행을 통한 금융지원은 기업부실을 심화시키고 좀비 기업화 하는 부작용만 낳기 십상이다.

산업은행을 중심으로 하는 채권단은 이미 지난해 대우조선에 4조2,00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고, 이중 2조800억원을 집행했다. 또한 STX 조선에는 이미 4조원을 투입했다. 그러나 이런 지원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다름없는 거대한 재정 낭비였다. 기업회생이라는 명목으로 쏟아 부을 수십 조원의 공적 자금을 조선 및 해운 산업에서 발생하는 실업자 구제와 전업 훈련에 사용하는 게 훨씬 더 효율적인 민생 정책이 될 수 있다.

반복되는 기업 부실과 정부주도 구조조정은 은행 대출과 회사채 발행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한국 재벌과 관치 금융이 한계에 도달했음을 보여준다. 은행, 특히 산업은행과 같은 국책은행은 기업경영을 제대로 감독하지 못하고 있으며, 채권시장에서는 정부의 영향력 하에 있는 기관들이 부실기업의 회사채를 주로 매입하고 있다. 2013년 해운사를 돕기 위해 정부가 도입한 회사채 신속 인수제는 정부가 사실상 산업은행과 신용보증을 동원해 해운사의 부실을 떠안아 주어 재벌기업의 도덕적 해이를 편들어 준 꼴이었다.

결국, 주식 발행을 통한 자본 조달과 주식시장을 통한 경영 감시 및 기업 청산이 제대로 작동하는 시장의 정상화 없이는, 기업부실과 구조조정의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어려워 보인다. 따라서 차제에 기업이 주식시장을 통해 자본 조달을 할 수 있도록 유인하는 정상화 조치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런 정상화는 재벌총수의 경영권 유지라는 사익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 적은 자본으로 비정상적 출자관계를 이용해 기업집단을 지배하는 재벌의 경제력 집중의 해소가 필요한 또 하나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상인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 시장과 정부 연구센터 소장

/그림 2박상인/2016-03-30(한국일보)/2016-04-05(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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