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 환경보건시민센터가 22일 서울 종로구 환경보건시민센터에서 주최한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은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사에 대한 살인죄 처벌 필요성을 주장하고 정부의 법적ㆍ도의적 책임을 지적했다. 뉴시스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의 주범으로 꼽히고 있는 제조업체 옥시레킷벤키저(옥시)가 21일 사건 발생 후 처음으로 사과문을 발표했습니다. 옥시는 이날 오후 기자들에게 ‘가습기 살균제와 관련하여 말씀드립니다’라는 제목의 이메일을 보내 사과와 피해 지원 기금 50억원을 내놓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검찰 수사가 턱밑에 차서야 뒤늦게 입을 연 옥시에 대해 피해자들은 즉각 반발했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모임 및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옥시의 사과는 받지 않겠다”고 거부하고, 옥시를 ‘살인자’로 일컬으며 “처벌되어야 할 대상”이라고 했습니다. 일반 국민이 보기에도 옥시는 이미 ‘살인 기업’으로 치부되지만 실정법상으로도 과연 살인죄 처벌이 가능할까요.

우리 형법은 사람을 살해한 자를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합니다. 살인죄가 적용되려면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는 예견가능성과 살인의 고의가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옥시가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을 때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예견할 수 있었음에도 ‘죽어도 어쩔 수 없다’는 미필적 고의를 갖고 제품을 만들어 팔았다면 살인죄로 처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올해 1월 꾸려진 가습기 살균제 피해사건 특별수사팀(팀장 서울중앙지검 이철희 형사2부장)은 먼저 살균제 원료인 폴리헥사 메틸렌 구아디닌(PHMG)ㆍ염화 에톡시 에틸 구아디닌(PGH)과 피해자들의 폐 손상 간 인과관계가 있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폐 손상을 입은 피해자들의 진료기록부와 폐조직 검사 결과, X레이 등 영상 기록을 분석하고 의사 등 전문가들에게 1,000여차례 자문을 받은 끝에 내린 결론입니다.

그런데 옥시가 이 같은 유해성을 인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정황이 나타났습니다. 여러가지 증거 인멸 시도가 그것입니다. 검찰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옥시는 살균제가 폐 손상의 원인이라는 질병관리본부의 역학조사 결과를 반박하기 위해 별도의 실험을 실시해 보고서를 검찰에 제출했습니다. 하지만 자신들에게 불리한 결과가 도출된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KCL) 보고서는 제출하지 않았고, 제출한 보고서도 유리한 결과가 나오게끔 실험 조건을 설정하도록 관여한 정황이 드러났습니다. 또, PHMG를 SK케미칼 등으로부터 납품 받으면서 제품의 유해성 등을 기재한 물질안전보건자료(MSDS)를 폐기하고, 검찰 수사 직전 소비자들이 옥시 홈페이지에 살균제의 부작용을 호소한 글들을 삭제한 사실도 알려졌습니다. 다시 말해 PHMG 성분이 든 자사 제품이 사용자 사망이라는 결과를 야기했음을 인지했을 가능성, 나아가 사망을 예견할 수 있었다는 가능성까지 배제할 수 없다는 얘깁니다.

하지만 살인의 고의가 있었는지 밝히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이윤 추구를 위해 제품을 만들어 파는 기업이 잠재적 소비자들을 죽이려고 독성 물질을 가공ㆍ판매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습니다. 옥시가 제품 출시 전 동물을 대상으로 흡입 독성 실험을 했을 때 실험군의 동물이 모두 죽었는데도 불구하고 제품을 제조ㆍ판매했다면 당연히 살인죄가 적용돼야 하겠지만 현실적으로 기업이 이런 의도를 가졌다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한 법조인은 “국민의 법 감정상 옥시는 이미 ‘살인자’로 낙인 찍혔지만 실정법으로는 살인죄 적용이 어려울 수 있다”고 말합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족이 19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살균제 제조업체 관계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며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법조계에서는 살인죄 적용은 쉽지 않아도 업무상 과실치사 및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로 처벌은 충분히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업무상 과실치사는 업무상 필요한 주의를 게을리해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했을 때 처벌하는 조항입니다. 가습기 살균제 외에도 다양한 제품을 생산해 내는 옥시가 독성 물질을 다루면서 인체에 해를 끼치지 않도록 충분한 주의 의무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점만 입증되면 처벌이 가능합니다. 한 부장 판사는 “지금까지 알려진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업무상 과실치사 및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 적용이 가능해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일부에서는 ‘부작위(不作爲)’에 의한 살인죄도 거론하고 있지만 이는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평이 지배적입니다. 형법상 부작위는 위험이 생기는 것을 막을 의무가 있거나 위험 발생 원인을 제공한 자가 적극적으로 이를 막지 않은 것을 말합니다. 즉, 옥시 제품 사용자가 위험에 빠진 것을 알게 된 옥시가 이에 대한 적극적 보호조치를 취하지 않아 사람을 죽인 것과 같은 것으로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옥시는 살균제의 유해성을 알면서도 제품을 만들어 파는 ‘작위(作爲)’를 했기 때문에 법적으로 피해자에게 보호 조치를 취하지 않은 ‘부작위’로 보기 어렵습니다.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는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위험에 빠진 승객들을 구호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수백명의 승객을 버리고 도망간 이준석 선장에게 적용돼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습니다.

기초 조사를 끝낸 특별수사팀은 옥시 측이 이 물질들의 유해성을 알면서도 제품을 만들어 팔았는지 여부 등을 조사하기 위해 관계자들을 소환 조사하고 있습니다. 검찰은 옥시 제품 관계자 30여명을 포함, 롯데마트 등 유해성이 확인된 4개 제품 실무자 및 핵심 임원 등 50여명을 불러 조사할 방침을 세우고 있습니다.

2011년 4월 이후 영유아와 임산부 등 정부가 살균제 피해자를 조사해 나온 사망자만 143명에 달한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은 지금까지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았습니다. 발생 후 5년이 지나도록 책임이 규명되지 않은 이 사건이 어떻게 마무리돼 누가, 어떻게 책임질지 지켜봐야겠습니다.

안아람기자 onesh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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