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2주기] 두 번째 봄 <상> 아픔마저 성장하다

지난 2014년 10월 진도 팽목항에 해가 지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두 번째 봄이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4월, 서울의 한 대학 캠퍼스에서 만난 김민지(19ㆍ가명)양은 전공서적을 팔 한 가득 안고 강의실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오전 9시부터 연달아 수업이 있는 빽빽한 시간표 탓에 점심 식사는 삼키다시피 먹은 김밥 한 줄이 전부다. 오후 3시, 수업이 모두 끝나고 그제야 한 숨 돌린 민지는 “오늘도 리포트 때문에 밤을 새야 할 것 같아요”라며 멋쩍게 웃고는 도서관으로 발길을 옮겼다.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첫 중간고사를 걱정하는 민지의 모습은 영락없는 새내기 대학생이었다. 하지만 그에게 봄은 남다르다. 그 해 봄, 민지는 차디찬 진도 앞바다에서 가까스로 살아 돌아왔다.

2014년 4월 16일. 떠올리기 싫은 그 날. 바다의 짠 내음이 진동한다. 세월호 4층 객실에서 친구들과 놀던 민지는 물을 마시러 3층 식당으로 내려갔다. 식당 앞 소파에서 다른 친구와 선생님을 만나 이야기꽃을 피우던 순간 ‘쿵’하며 배가 기울었다. 순식간이었다. 눈 앞에서 친구들이 반대편 벽으로 굴러 떨어졌다. 한 친구는 벽에 머리를 부딪혀 정신을 잃었다. 아비규환이었다. 민지는 소파가 다행히 식당 문에 걸려 발을 딛고 설 수 있었다. 발 밑으로 바닷물이 넘실댔다.

“구명조끼 주세요. 제발 구명조끼 좀 주세요….” 민지의 외침은 허공으로 흩어졌다. 가까이에 구명조끼는 두 개뿐. 민지에게는 돌아오지 않았다. 물이 차올라 민지는 맨 몸으로 바다에 뛰어내렸다. 봄 바다는 차가웠다.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엄습했다. 그 때마다 ‘나는 꼭 살 거야’ 다짐하고, 다짐했다. 멀어지는 해경 구명보트를 향해 허우적대며 “가지 마요”라고 소리쳤다. 간신히 배에 올라탔다. 그 날 이후 민지에게는 ‘세월호 생존 학생’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세월호 참사 후 두 번째 봄을 맞았지만 여전히 진실은 규명되지 않았고, 미수습자 9명은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참사 2주기를 하루 앞둔 15일 전남 진도 팽목항 등대 옆에 희생자 추모 등의 내용이 담긴 노란색 깃발이 바람에 날리고 있다. 진도=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세월호 참사 2주기를 하루 앞둔 15일 오후 세종시 종촌동 세월호 합동분향소 인근에 설치된 세월호 희생자 이름 팻말 앞에 시민들이 기증한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세종=연합뉴스

‘홀로 살아 돌아왔다’는 자책은 10대 소녀가 견뎌내기 힘든 고통이었다. 가장 소중했던 친구를 잃은 슬픔과 트라우마 때문에 수면제를 먹어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대학에 진학하며 민지는 함께 사고를 겪은 친구들과 헤어졌다. 학기 초엔 세월호 특별전형 입학생이라는 자괴감에 지레 겁을 먹었다. 하지만 선배 동기 교수님들은 “그게 무슨 문제냐”며 아무렇지 않게 대해주었다. 민지는 입학 한 달 만에 학생회 간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틈틈이 봉사활동도 하고 있다. 쏟아지는 과제에 밤을 새는 한편 새로 사귄 대학 친구들과 한강공원에 나가 치맥도 즐긴다. 봄이면 아픔은 늘 새롭게 생각날지 모른다. 그마저 내 삶의 부분으로 받아들이며 민지는 다시 다짐한다. 살아내겠다고, 친구들 몫까지 더 열심히 살아내자고.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자랐고, 내일은 더 성장할 것”이라고 각오를 다진다. 두 번째 봄이다.

허경주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양진하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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