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오는 저지른 자가 책임져야' 금융위기의 교훈

5일 사임한 시그뮌뒤르 다비드 귄뢰이그손 전 아이슬란드 총리가 4일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의 의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AP=레이캬비크 연합뉴스
4일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의 의회 앞 광장에서 총리의 사임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열리고 있다. EPA=레이캬비크 연합뉴스

지난 5일 아이슬란드의 시그뮌뒤르 다비드 귄뢰이그손 총리가 전격 사임했다. 지난 4일 전세계 100여곳의 언론이 보도한 조세회피처 관련 기밀 문서인 '파나마 페이퍼'에 이름이 오른 각국 정상 중 첫 번째 사퇴였다.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의 의회 앞에서 1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귄뢰이그손 총리의 사임을 요구한 지 하루 만이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 지아니 인판티노 FIFA 회장, 축구스타 리오넬 메시 등 '파나마 페이퍼'에 이름이 오른 수많은 유명인사들이 의혹을 전면 부인하거나 방어하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이고 있던 와중이었다.

귄뢰이그손 총리 역시 처음엔 "어떠한 잘못도 하지 않았다"고 완강히 버텼다. 그러던 그가 왜 제일 먼저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을까? 배경에는 인구 32만명의 작은 나라 아이슬란드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사태를 겪으며 정착된 교훈이 자리잡고 있다. '과오는 저지른 자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2008 금융위기 주범인 전 은행 CEO들이 복역중인 크비아브리기야(Kviabryggja) 교도소. VÍSIR
'나쁜 은행가들이 감옥 가는 유일한 나라'

아이슬란드는 전세계를 강타한 2008년 국가 부도 사태를 불러온 금융위기에서 유일하게 은행의 최고 책임자들을 감옥에 보낸 나라다.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차로 3시간 걸리는 크비아브리기야 교도소에는 2008년 국가 부도 사태를 불러온 은행의 최고 책임자들이 3년~5년형을 선고 받고 복역하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도 전직 은행 CEO들이 실형을 선고 받는 등 지금까지 교도소에 복역중인 전직 은행 고위직은 모두 29명이다. 2008년 미국의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으로 금융위기가 촉발됐지만, 미 연방검찰이 단 한 명의 간부도 기소하지 못한 채 2011년 리먼브라더스 비리 조사를 종결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블룸버그 통신은 지난달 31일 '이곳은 나쁜 은행가들이 감옥을 가는 유일한 국가'라며 글로벌 금융위기의 책임을 물리지 못한 미국과 영국을 아이슬란드와 비교하기도 했다.

2008년 정부 사퇴를 요구하며 레이캬비크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는 시위대. AFP
아이슬란드 경제 방향 바꾼 '주방용품 혁명'

2008년 아이슬란드의 통화 크로나(krona) 가치가 붕괴했을 당시 아이슬란드의 3대 은행 카우프싱, 란즈방키, 글리트니 르는 국가 전체 GDP의 10배에 달하는 자산을 소유하고 있었다. 은행이 망하면 당시 금융업으로 경제 규모를 불린 아이슬란드에 엄청난 타격이 오는 상황이었지만, 아이슬란드는 은행을 구제하지 않았다. 결국 이 은행들이 파산을 선언하면서 아이슬란드 금융 시스템의 85%가 붕괴됐다.

결국 2008년 아이슬란드는 국가부도를 선언,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요청을 하기에 이른다. 2009년 정부는 금융위기 피해를 본 다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국가채무 35억 유로를 15년간 채권국들에게 갚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아이슬란드 국민들은 이에 반기를 들었다. 은행이 야기한 국가 빚을 세금으로 갚는 것을 반대한 국민들은 연일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대규모 시위를 이어갔다. 시위대가 냄비와 솥을 두드리며 시위를 벌여 '주방용품 혁명'이라고 불렸다. 결국 당시 집권 보수당 총리였던 게이르 호르데가 책임을 지고 사퇴했고, 국민 총투표를 통해 채무 상환안을 무효화시켰다. 그리고 그 해 총선에서 정권교체를 이룬 사민주의 정권은 다른 국가들과 정반대 정책인 가계부채 탕감 정책을 펼쳤다.

2010년 레이캬비크 시장직에 당선된 직후 미디어와 인터뷰하고 있는 욘 그나르. EPA
레이캬비크 시장에 코미디언이 당선되다

수도 레이캬비크의 시민들은 기존 정치인이 아닌 코미디언을 시장직에 앉히기도 했다. 2010년부터 2014년까지 레이캬비크 시장을 역임한 욘 그나르는 아이슬란드 최고의 정치풍자 스탠드업 코미디언이었다. 그는 아이슬란드 국가부도 사태가 벌어지자 '최고당(The Best Party)'를 창당하고, 창당 6개월 만에 시장에 당선됐다. '모든 수영장에 공짜 수건 제공', '시내 한복판에 디즈니랜드 건설' 등 엉뚱한 정책들을 내건 '최고당'은 진지한 정치 정당이 아니었다. 그나르가 "우리 당은 정치적 정당이 아니라 민주주의적인 자조 집당"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하지만 최고당의 실제 정강정책은 부패 척결과 경제 위기 주범들 처벌, 사회 전반의 복지 향상 등을 담았다. 무능한 정부와 정당에 대한 불신이 극도로 팽배했던 레이캬비크 주민들은 최고당에 표를 던졌고 그는 높은 지지 속에 앞선 4명의 선임자들보다도 긴 4년에 걸친 시장직을 수행했다.

국민들이 참여한 "세계 최초의 집단지성 개헌 작업"

아이슬란드 국민들은 2010년 시작된 헌법 개정에도 인터넷을 통해 참여했다. 90%가 훌쩍 넘는 인터넷 보급률 덕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이슬란드가 1944년 덴마크로부터 독립한 이후 처음으로 이뤄진 개헌은 2008년 겪었던 금융위기의 재발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2010년 마련된 개헌포럼에 국민들이 참여해 토론했고,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을 통해서 수렴된 의견을 바탕으로 개헌안이 마련됐다. 일반 국민으로 구성된 헌법심의회의 심의 과정은 홈페이지를 통해 진행상황이 공개됐다. 개헌안 초안은 2012년 국민투표에서 가결됐다. 최종 단계에서 보수정당과 엘리트 기득권층의 벽에 막혀 무산됐지만 “세계 최초의 집단지성을 통한 개헌 작업”(뉴욕타임스)은 세계의 큰 관심을 받았다.

아이슬란드 해적당의 창당을 주도한 비르지타 욘스도티르 의원. 개인 홈페이지 캡쳐
'직접 민주주의' 해적당, 지지율 43%

아이슬란드도 2008년 전까지는 보수정당인 독립당이 정계 주도권을 잡았다. 그러나 2009년부터 사회민주당과 녹색당의 사민주의 정권이 들어서 금융위기로 망가진 경제 회복에 주력했다. 부동산 가격 상승 등의 여파로 2013년 총선에선 다시 정권교체가 이뤄져 독립당과 진보당의 연정이 들어섰다. 금융위기를 불러온 중도 우파 정당들이 다시 정권을 잡았는데, '파나마 페이퍼'에서 이 정부의 수장이 국가를 망가뜨린 대형 은행들의 채권자였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이처럼 기존 정치가 국민들을 번번히 실망시키자 아이슬란드에서는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파격적인 정당이 급부상하고 있다. 직접 민주주의 도입, 주당 35시간 근무와 마약 규제 완화, 저작권법 폐지 등을 내건 해적당이 그 주인공이다. 해적당은 2013년 원내 진입에 성공했고 2017년 총선을 앞두고 지난 2월 집권정당들을 제치고 37.8%의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다.

더욱이 이번 귄뢰이그손 총리의 역외탈세 의혹으로 폭발한 민심은 총리 사임을 넘어 내각 총사퇴까지 요구하고 있다. 새로 총리로 지명된 시구르두르 잉기 요한슨 농업장관은 6일 올 가을 조기 총선을 치르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같은 날 아이슬란드모니터는 여론조사에서 해적당의 지지율이 43%까지 치솟았다고 보도했다. 올 가을, 아이슬란드에서 또다른 정치 실험이 시작될 수 있을까.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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