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존경하는 선생님과 식사할 자리가 생겼다. 선생님은 도쿄의 한 대학에서 인권을 가르치며 여러 이유로 아이를 갖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선생님이 쓴 글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중 나온 대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글의 내용은 국가가 애국심을 애향심과 가족애 등과 연결시켜 국민에게 주입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었다. 가족에 대한 사랑,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국가에 대한 충성과 결합하면 전체를 위해 개인을 희생시키는 폭력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에 가족-고향-국가에 대해 개인이 ‘분리될 수 있는 자유’가 중요하다는 취지의 글이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분리의 자유는 이기주의가 되기 쉽기 때문에 사회가 유지되는 것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 어떻게 분리의 자유를 누리면서 동시에 사회를 유지해나갈 수 있을까. 나는 이 문제와 관련해 애국심이나 애향심과는 다르게 가족애나 자녀에 대한 부모의 희생은 본능적인 부분이라 분리가 불가능한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부모들은 아이를 키워봤기 때문에 다른 아이가 겪는 고통에 대해서도 상상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따라서 분리될 수 없는 가족애를 바탕으로 사회를 유지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라는 질문도 드렸다.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반문하셨다. “자네 아이와 누구 집 아이인지 알 수 없는 아이가 동시에 며칠을 굶었다고 하세. 누구에게 남은 한 조각의 빵을 먹일 것인가.”

선생님의 질문은 자기 자식에 대한 사랑은 본능적일 수 있더라도 내 아이를 향한 사랑으로부터 ‘다른 아이’를 향한 사랑으로 나아가는 것은 매우 어렵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었다. 질문과 같은 극단적인 상황에서 나는 과연 내 아이와 남의 아이를 똑같이 대우할 수 있을까. 무엇이 정의로운 선택일까. 내 본능을 거스르고 두 아이를 동일하게 대우하는 것일까, 아니면 본능에 따라 내 아이를 우선적으로 대우하는 것일까.

아직까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나는 내 아이와 남의 아이를 똑같이 대우할 수는 없지만, 사회는 똑같이 대우해야 하고 그렇게 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가 사람들을 똑같이 대우하지도 않고, 보호할 의지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그래서 그 날 이후로 나를 포함한 다수의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위험한 일을 만나면 “중앙의 지시를 따르라”거나 “구조대가 올 때까지 기다려라”가 아닌 “누구보다 재빨리 위험에서 탈출하라”고 가르친다. 이 말에는 제 기능을 못해준 국가와 사회에 대한 ‘불신’과 내 아이와 남의 아이는 같지 않다는 ‘인식’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어쩌면 육아하기 좋은 사회란 부모와 아이가 살아남기 위해 ‘분투’할 필요가 없는 사회, 그리고 부모가 자기 자식에 대해서 갖는 본능까지도 망각하는 것이 가능한 사회일 것이다.

1943년 9월 26일 로마의 유대인 거리에서 독일군의 유대인 일제 체포가 시작되었다. 이때 구속된 사람 수는 1,022명. 그 중에는 자신이 보호하고 있던 장애를 가진 유대인 고아와 운명을 같이한 비유대인 여성 한 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구속된 이들은 가축용 화물차에 실려 아우슈비츠로 이송됐다. 1,022명 중 생환한 사람은 고작 15명. 이 여성은 비유대인인 것을 밝히기만 하면 체포를 면할 수 있었지만 자신의 혈연도 아니고, 장차 보답도 기대할 수 없는 장애 어린이와 죽는 운명을 함께 했다. 그녀의 행위는 애국심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오로지 자기 자신이 가장 ‘사람답다’고 여겨지는 행위를 선택한 것이다.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내 아이를 사람답게 키우는 방법은 무엇일까. “가만히 있으라”도, “누구보다 재빨리 탈출하라”도 아닌 “네가 옳다고 믿는 일을 하라” 혹은 “한 사람이라도 구하고 나오라”고 하는, 어쩌면 ‘빈말’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더 이상의 비극은 없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권영민 ‘철학자 아빠의 인문 육아’ 저자ㆍ철학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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