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천파동으로 부실 공약 빚어

그마저 당위론적 구두선 그쳐

그래도 주인인 국민이 나서야

4.13 총선 투표용지 인쇄에 들어간 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양평로에 있는 한 인쇄소에서 담당직원이 투표용지를 꼼꼼히 살피고 있다. 배우한기자 bwh3140@hankookilbo.com

다음 주 수요일은 20대 총선 투표일이다. 그러나 20대 총선은 정책이 실종된 선거로 역사에 기록될 것 같다. 후보자 등록 마감일까지 당권 투쟁에만 골몰했던 여권의 공천 파동은 막장드라마 그 자체였으며, 야권은 분열돼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데 더 골몰했다. 이런 극심한 당권 및 주도권 다툼 와중에, 각 당의 총선 공약이 새로운 것을 담을 수도 없고 구체성을 띨 수도 없는 것은 당연하다.

물론 정당의 공약이 꼭 새로운 내용을 담아야 할 필요는 없다. 문제는 이런 반복적 공약들이 우리 사회의 현안들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지를 제시하지 못하고 당위론적 구두선에 그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우리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문제가 저성장과 양극화라는 점에는 여야 모두 그리고 국민 대다수가 동의할 것이다. 한국경제의 성장을 주도했던 주력산업의 경쟁력이 급속히 떨어지고 있고, 이런 경쟁력 저하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는 점에서 저성장에 대한 우려는 클 수밖에 없다. 이와 더불어, 노인빈곤과 청년실업 문제는 갈수록 악화되고 있으며, 자신의 노력과 실력보다 집안 배경이 더 중요하다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재벌 총수일가를 위시한, ‘정부주도-재벌중심’ 정책으로 형성된 기득권 집단이 공고화하고 있고, 이들의 지대(rent) 추구행위가 국민경제의 이익과 상충되는 일들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한국경제가 장기침체에 빠질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이제는 대세를 이루고 있다.

상황이 이처럼 엄중함에도, 당위론적 구두선에 그치고 있는 일자리 창출, 미래 먹거리 산업육성, 내수 육성과 중소기업 동반성장, 소상공인 보호 등등의 기존정책들이 각 당의 20대 총선공약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런 실효성이 담보되지 않은 정책들로 ‘정부주도-재벌중심’의 정책 기조와 경제 구조를 환골탈태해 혁신형 경제로 이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제1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20대 총선에서 현 정부의 경제실패를 심판하고 경제민주화라는 해법을 제시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그런데 경제민주화가 무엇을 의미하고, 공약한 정책들이 경제민주화를 달성하기에 왜 효과적이며, 이를 통해 저성장과 양극화가 어떻게 해결될 수 있을지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비례대표 후보자들 면면을 보아도, 경제민주화를 추진할 진용을 갖추고 있는지 의문이다.

정책과 정치를 주도해야 할 집권 여당의 공약은 더 부실하다. 일자리 창출이라는 고장난 축음기 같은 소리가 주목되지 못해서인지 아니면 더불어민주당의 경제민주화와 경제실정 심판에 맞불을 놓으려는 것인지 알 수 없으나, 뜬금없이 중앙은행을 동원한 양적 완화책을 들고 나왔다. 정책 효과에 대한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부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공약은 우리의 국격을 스스로 깎아 내리고 국제사회에서 어렵게 쌓아가고 있는 한국은행의 신뢰도를 하루아침에 무너뜨릴 수 있다.

남은 1주일의 선거 기간에도, 안보몰이와 야권분열을 부추기는 새누리당의 전략, 사표 방지와 야권 분열 책임론으로 여당 비판층의 표심을 잡으려는 더불어민주당의 전략, 새누리당을 지지했던 합리적 보수층을 흡수하겠다고 하면서도 호남에 거의 올인하는 국민의당의 전략 등 정치공학적 선거운동이 계속될 듯하다.

그러나 정당들이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 선거 전략을 채택하는 것을 마냥 탓할 수는 없다. 이런 선거 전략을 채택하도록 유인하는 게 우리 선거제도와 관련법이기 때문이다. 정책으로 유권자의 마음을 얻는 것이 최적의 선거 전략이 되도록 유인할 수 있는 선거법 개정이 필요한 이유이다. 사실 이와 관련된 제안들은 이미 나와 있다.

정치인과 정당이 많이 부족하다고 투표를 포기하는 것이 우리의 선택일 수는 없다. 저성장과 양극화의 폐해는 고스란히 대부분 국민의 몫이 될 것이고, 국가의 주인으로서 국민이 나서지 않으면 비관적 전망이 가득한 한국경제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도 없기 때문이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시장과 정부 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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