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스포츠계가 도핑으로 홍역을 앓고 있다. 작년 11월 세계반도핑기구(WADA)는 러시아 정부 차원에서 육상 선수들에 대한 광범위한 도핑이 이뤄지고 있다고 폭로해 큰 파문을 일으켰다. 지난 달에는 러시아 출신의 여자 테니스 스타 마리아 샤라포바(29)가 금지약물인 멜도니엄 복용을 인정해 충격을 줬다. 3일(한국시간) 영국 선데이타임스에 따르면 프리미어리그 소속 150 여명이 런던의 한 의사를 통해 금지약물을 주입 받은 것으로 드러나 영국 스포츠계가 발칵 뒤집혔다.

한국에서도 도핑 전력이 있는 케냐 출신 마라토너 윌슨 에루페(28)의 특별귀화가 뜨거운 감자다. 그는 2012년 말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으로부터 자격정지 2년을 받고 작년 1월 마라톤에 복귀했다. 대한체육회는 6일 스포츠공정위원회를 열어 에루페의 귀화 여부를 심의할 계획이다.

에루페 귀화 찬성론자들은 “에루페는 올림픽 메달을 노릴 수 있는 선수고 또 그에게 노하우를 전수받아 국내 선수들도 강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에루페의 도핑 전력에 대해서는 “일부러 금지 약물을 맞은 것은 아니다”고 두둔한다. 그러나 에루페의 몸에서 검출된 성분은 EPO(Erythropoietin·이피오)다.

이종하 한국야구위원회(KBO) 반도핑위원장은 “이피오를 복용하면 적혈구가 많아져 유산소 능력이 증가한다. 육상의 장거리, 사이클 선수들이 유혹에 빠지기 쉬운 약물 중 하나다”고 설명했다. 에루페는 “말라리아에 걸려 치료를 위해 복용했다”고 해명하지만 이피오는 흔히 쓰이는 말라리아 치료약이 아니다. 이종하 위원장은 “말라리아 중에서도 아주 악성, 뇌 조직에 상해를 줘 혼수상태에 빠졌을 때 이피오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며 “이 정도 중증이면 회복 후 후유증이 남기 마련이다. 다시 마라톤을 하고 올림픽에 도전한다는 건 납득하기 쉽지 않다”고 밝혔다.

에루페는 최근 자신이 치료를 받았던 케냐 병원의 진료기록부를 대한 체육회에 제출했다. 이 진료기록부를 검토한 진영수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 위원장은 “기록부가 허위가 아니라면”이라는 단서를 단 뒤 “상당히 위급해서 이피오를 썼다는 내용은 명시돼 있다”고 했다.

하지만 여전히 의구심은 남는다.

에루페가 2년 징계를 받았다는 건 WADA가 약물 복용을 치료 목적으로 보지 않았다는 의미다. 치료를 위해서였다면 2년 이하로 떨어지는 게 일반적이다. 진영수 위원장도 “WADA 결정을 보면 병원 기록에 의심이 들고 병원 기록을 믿으면 WADA 결정을 이해하기 힘들어 양 측 입장이 상충된다”고 당혹스러워 했다. 이 경우 도핑 전문가들은 WADA의 판단에 ‘무게’를 둔다. 이종하 위원장은 “WADA 결정을 우리가 다시 판정하지는 않는다”고 강조했다. 진영수 위원장도 “WADA 결정을 또 왈가왈부할 입장은 아니다”고 했다. 다시 말해 에루페의 해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면죄부를 주면 WADA의 도핑 무관용 원칙을 한국이 정면으로 뒤집는 꼴이 된다.

IAAF와 WADA는 최근 케냐육상경기연맹에 6일(한국시간)까지 지속적인 금지약물 복용에 대한 해결책을 내놓지 않으면 리우 올림픽 출전을 금지할 수 있다고 경고를 줬다. 세계 육상 장거리 최강국 케냐에 대해 도핑 의혹이 가시지 않자 나온 조치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도핑 전력이 있는 케냐 출신 선수를 특별 귀화시켜 올림픽 메달에 도전한다니…. 어처구니 없게도 일부에서는 “케냐가 올림픽에 못 나오면 (강자들이 없어) 에루페의 메달 확률이 높아져 더 좋다”는 막말까지 쏟아내고 있다는 후문이다. 지금 스포츠계가 ‘도핑과 전쟁’ 중인데 한국은 거꾸로 ‘도핑 세탁’ 국가라는 오명을 뒤집어 쓸 셈인지 육상인들의 대오각성이 요구된다.

윤태석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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