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한국에서 ‘사랑한다는’ 말이 유행이다. 라디오나 TV 방송, 잡지나 인터넷 등 여러 곳에서 그 말이 자주 등장한다. 연예인들이 팬에게 특히 많이 쓰는 인사말이기도 하다. 친한 친구 사이에도 ‘사랑해’라는 말을 문자 끝에 사용하는 것이 많아졌고 젊은이들뿐만이 아니라 나이 든 사람까지 그런 표현을 점점 더 쓰게 됐다. 평생 이 말을 안하고 지낸 부부도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해야 한다는 조언을 듣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유행이 쉽게 번지고 자주 변하는 듯 하다.

세상 어느 곳이나 옛 풍습이 바뀌려면 시간이 걸리고, 사람들은 처음에는 낯설어하다가 차츰 새 방식을 받아들인다. 1970년대 내가 프랑스 사람이라고 말하면 “프랑스에서는 애인끼리 ‘쥬때므’(je t’aimeㆍ사랑해)라는 말을 많이 하지 않냐”고 물어보는 한국 여성들이 많았다. 한국 남성들은 무뚝뚝하고 표현을 잘 하지 않으니 재미가 없고, 표현에 적극적인 서구인들이 부럽다고 고백하곤 했다. 그 당시 나는 한국 남성들이 사랑의 표현은 서툴지만 한국 부부의 이혼율이 프랑스보다 낮았기 때문에 한국의 관습이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프랑스 남자는 데이트할 때는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하고 안아주기도 하지만, 어느날 갑자기 ‘쥬땜 플리’(je t’aime, plusㆍ더 이상 사랑 안 해)라고 말한다.

인간이면 누구나 감정을 표현하게 된다. 다만 문화에 따라 표현의 방법이 다를 뿐이다. 사회적 압박 때문에 말로 잘 표현을 못할 경우 다른 방식을 찾아서 한다. 40년 전에 가르치던 연세대 불문과 제자들을 보니 남학생은 여학생 가방을 들어주는 방법으로 그녀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했던 것 같다. 또 여학생은 어떤 남학생을 좋아하면 웃으면서 머리나 어깨를 때리거나 밀어버리는 행동을 해 그 남자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곤 했다. 카세트테이프에 낭만적인 노래를 녹음해 전달함으로써 마음을 밝히기도 하고. 요새는 사랑한다고 직접 말로 하지만 옛날에는 심수봉 노래처럼 “아니야, 아니야, 말 못해, 나는 여자이니까” 그런 식이었다.

그런데 사랑의 마음을 꼭 말로 표현해야 하는가. 따뜻한 사랑을 가지고 있으면 말 안 해도 상대방이 느낄 수 있지 않겠는가. 사랑한다는 말 대신에 다른 다정한 말로도 표현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집을 방문한 상대방에게 “어서 와요”라는 평범한 말에도 마음을 담으면 그 말속에서 깊은 사랑의 마음을 느끼지 않겠는가. 어떨 땐 ‘주때므’보다도 더 좋을 것 같다. 사랑한다는 말은 사실 너무나 추상적이라 무슨 말인지 자세히 알 수 없다.

물론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싶은데도 못해본 사람은 그 말을 꼭 하는 게 좋겠다. 그렇게 함으로써 감정의 해방을 느끼며 기쁨을 갖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본인이 그런 심리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만 말이라는 것이 쓰면 쓸수록 힘이 약해진다는 것이 문제다. 맨 처음에 사랑한다고 했던 그 때의 느낌과 나중에 습관적으로 그 말을 할 때의 느낌이 다르기 때문이다. 무의식적으로 사용하게 되면 자기도 모르게 형식적이 돼 감동이 사라지기가 쉽다.

듣기에는 사랑한다는 말이 멋있지만 습관화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 얼마 전에 병원에 갔는데 거기서 어떤 큰 교회에서 발행된 소책자를 우연히 읽게 됐다. 제목이 ‘존경 받는 남편이 되기 위한 10가지 제안’이었다. 첫째 제안은 ‘표현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하루에 한번씩 사랑한다고 말하라’ 였다. 한국인이 읽으면 아무렇지도 않겠지만 나에겐 그 문장이 이상하게 들렸다. 사랑이라는 것은 말로 표현하든 안 하든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한국에서는 매일 사랑한다고 말하라고 가르칠 수 있겠지만, 프랑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사랑을 표현하는 것은 분명히 좋은 것이고 매우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쓰는 요즘의 세대가 그런 말을 거의 안 하던 옛날 세대와 비교해 더 행복한지 궁금해진다.

마틴 프로스트 전 파리7대 한국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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