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면접을 앞둔 공천신청자들이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이 들어서자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 있다. 오대근기자 inliner@hankookilbo.com

“‘유승민 의원이 공천 받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 들어봐요. ‘못 받을 것 같다’도 손 들어봐요.”

지난 15일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회가 수도권과 대구에서 유승민계를 초토화시키는 공천 결과를 발표하기 몇 시간 전. 공천 논의가 진행되는 와중에 친박계 공천관리위원인 박종희 제2사무부총장이 회의장 밖을 지키던 기자들에게 던진 농이다.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시각 국회의원과 원외 후보들은 피 말리는 심정으로 자신의 정치생명이 걸린 공관위 결정만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박 부총장은 기자들을 졸지에 유치원 원생 수준으로 격하한 것도 모자라, 당의 미래가 걸린 공천을 ‘개그콘서트’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이한구 공관위원장의 위세는 더하다. 공관위원장을 맡은 이후 그의 언행은 곧 ‘내 말이 법이니 따르라’ 식이었다. 당의 헌법과 법률이 명시한 상향식 공천제는 이 위원장의 말 한마디에 날아갔고, 시행령이랄 수 있는 ‘공천 룰’도 휴지조각이 됐다. 대신 이 위원장의 입에서 나온 ‘양반집 도련님’, ‘저성과자ㆍ비인기자’, ‘당 정체성 부합 여부’, ‘편한 지역 다선 의원’ 등이 공천 잣대가 됐다. 여론조사 경선은 ‘당원 대 국민 비율 3 대 7’로 정하고 예외적으로만 ‘100% 국민 여론조사’를 실시하기로 했으나, 그는 원칙과 예외를 뒤바꿔 놓았다. 한 정치학자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스스로 선거법을 만들어 후보자를 뽑는 꼴”이라고 평했다.

새누리당에선 경선 레이스에조차 참가하지 못하게 한 컷오프 이유도 알 길이 없다. 이 위원장은 “그럼 그 사람(탈락자)은 ‘×신’ 되는 것”이란 거친 말로 기자들의 질문을 막았다. 컷오프된 현역 의원들의 탈당과 무소속 출마가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에 “그러니까 내가 사람을 잘 본 것 아니냐”며 “그런 사람은 공천 주면 안 될 사람들”이라고 했다.

미안한 말이지만 이런 이 위원장한테 중국 남송 때의 재상 진회의 그림자가 보인다. 명장 악비를 모함해 죽이고 나서 죄목이 뭐냐고 묻자 “아마도 있었을 것(막수유ㆍ莫須有)”이라고 궤변을 늘어놓은 인물이다.

누가 ‘이한구 공관위’에 그런 ‘완장’을 채워 주었을까. 만약 그것이 ‘월 300만원 이상’ 직책 당비를 내는 ‘청와대 당원’ 한 명의 뜻이라면, 새누리당은 세간의 비아냥처럼 이름을 ‘박근혜당’으로 바꾸는 게 차라리 낫겠다. 김지은기자 lun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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