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성의 일상 속 자연 누리기(9)

대기에 아직 동장군의 냉기가 감도는데 노랗게 피어 봄을 제일 먼저 알리는 영춘화.

축축 늘어진 줄기에 달린 노란 꽃이 영락 없이 개나리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개나리로 안다. 하지만 아니다.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꽃이라고 해서 영춘화(迎春花)라고 부르는 꽃이다. 요즘처럼 꽃샘 추위로 아침 저녁 냉기가 꽤 강한 3월 초ㆍ중순은 서울 중부지방에서 개나리가 피기에는 이르다. 조금 자세히 들여다 보면 개나리와 생김새가 많이 다르다. 둘 다 물푸레 나무과이지만 개나리는 꽃잎이 네 갈래인데 이 꽃은 여섯 갈래, 간혹 다섯 갈래다. 잎 모양이 다르고, 줄기가 녹색인 것도 개나리의 회갈색 줄기와 차이가 난다.

영춘화(왼쪽)와 개나리

학명 Jasminum nudiflorum 에서 알 수 있듯이 영춘화는 재스민 종류다. 지구상에는 300여종의 재스민이 있는데 영춘화는 중부 남부가 고향인 재스민이다. 향이 뛰어난 다른 재스민종류와는 달리 아쉽게도 영춘화는 전혀 향이 없다. 하지만 추위가 채 가시기도 전에, 대개는 매화보다도 먼저 노란 색의 꽃을 피워내 봄을 알린다. 추위에 몸을 웅크리고 종종 걸음 치던 어느 날 담벼락 모퉁이에서 뜻하지 않게 영춘화 노란 꽃을 마주치면 “아니 벌써” 라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삼청동 한옥마을 담벼락 화단에 흐드러지게 핀 영춘화

환하게 빛나는 노랑 꼬마전구 같기도 하고, 작은 막대에 노란 등불을 매달아 놓은 것 같기도 하다. 피기 직전 뾰족하게 부풀어 오른 주황색 꽃망울도 예쁘기 그지 없다. 붓꽃이나 옥잠화 개화 직전의 맵시 있는 꽃망울을 연상시킨다.

피기 직전 부풀어 오른 영춘화 꽃망울 맵시. 붓꽃이나 옥잠화 꽃망울을 연상시킨다.

개나리가 활짝 피면 본격적인 봄이지만 영춘화는 꽃샘추위 오락가락 하는 시기에 피어 씩씩한 기상을 펼쳐 보인다. 서울 중부 기준으로 볼 때 개나리보다 3~4주는 일찍 피는 것 같다.

작은 노랑전구처럼 가지에 매달려 빛을 발하는 영춘화.

영춘화는 낮은 담벼락 위쪽이나 경사진 언덕, 석축 사이에 많이 심는다. 주택가 담벼락 아래로 주렴처럼 내려뜨려진 가지에 노랑 꽃들이 줄줄이 달린 모습은 정말 아름답다. 서울 서초구 사평대로 강남고속버스터미널 쪽 낮은 석축을 따라 요즘 영춘화가 만개해 참 보기 좋다.

영춘화는 대개 낮은 석축이나 경사지에 심는다. 서울 서초구 사평로 강남고속버스터미널 쪽 석축에 핀 영춘화.
피기 직전의 영춘화 줄기. 마치 꽃 주렴을 내려뜨린 것 같다.

영춘화가 웬만큼 핀 다음에야 산수유가 노란 꽃망울을 터뜨리고, 양지쪽의 매화도 피어나기 시작한다. 야외로 가면 복수초, 바람꽃, 큰개불알풀꽃 등 풀꽃 종류들이 일찍부터 봄 소식을 알리지만 도심에서는 봄의 화신을 전하는 데 단연 영춘화가 앞장을 선다.

영춘화와 비슷한 시기에 피지만 눈에 잘 안띄는 회양목 연한 녹색 꽃. 좀 매캐한 향이 진하다.

화단의 경계용 낮은 울타리나 경사진 석축 사이에 많이 심는 회양목도 일찍 꽃을 피운다. 꽃 색깔이 엷은 연두색이어서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좀 맵싸한 향이 진하다. 언뜻 벌꿀 향이 느껴지기도 한다. 요즘 밤길에 평소 맡지 못한 향이 훅 끼치면 틀림 없이 회양목 꽃 향이다. 우리나라 석회암 지대에 자생하는 회양목은 6,7월에 갈색으로 열매가 익는데, 세 갈래로 벌어진 생김새가 영락 없이 앙증맞은 부엉이 3형제다.

회양목 열매. 부엉이 세 마리가 모여 있는 듯한 모양이다(최영선 제공).

요즘 주택가 밤 길에는 회양목 꽃향기 외에 본격적으로 매화 향도 감돌기 시작했다. 그윽한 매화 향은 차분하고 콧속으로 촉촉하게 젖어 드는 듯한 느낌을 준다. 긴 겨울을 지나고 드디어 밤이나 낮이나 대지에 생명들의 환희가 시작됐다.

요즘 주택가 밤길에는 촉촉한 매화 향이 그윽하게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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