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버스터가 중단되고, 그 논란 많던 테러방지법이 여당 안 그대로 공포 및 시행된 지도 일주일이 지났다. 그리고 지금은 사이버 테러방지법 통과를 위한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는 듯하다. 이 두 법이 초래할 수 있는 역기능들은 야당 의원들의 목소리나, 언론 지면 또는 SNS를 통해 우리 사회에 많이 알려졌다. 국정원 권한 강화, 시민에 대한 사찰 증대, 그리고 이로 인한 개인의 자유와 인권 침해 등이 그 핵심이다. 일각에서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의 주인공에 빗대 ‘대형(big brother)’의 시대를 암울하게 예측하기도 한다. 이 경고는 과장스러운 측면이 있지만, 테러방지법들과 민주주의의 쇠퇴 가능성의 관계를 선명히 드러낸다는 점에서는 나름의 적실성을 갖춘 것 같다.

이와 더불어, 우리가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문제는 이 법들의 존재 자체가 가지는 상징적 효과다. 이들의 공식적인 존재 이유는 “국민 보호와 공공안전”이라지만, 되레 우리 사회 내부의 불안 심리를 크게 자극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마치 사회가 철저히 단속되지 않으면 테러라는 무서운 결과가 있을 것 같은 공포심을 그 일원들에 안겨준다. 게다가 국가 원수가 집회와 시위 참가자들을 테러리스트에 빗대면서 그 무서운 결과를 일으킬 수 있는 사람들의 범주를 넓혀 놓기까지 했다. 북핵 문제가 외부로부터의 위협을 표상한다면, 테러방지법이 상징하는 테러 발발 가능성 환기는 내부로부터의 공포를 부추긴다. 우리 사회가 안팎으로 위협받고 있다는 두려움에 휩싸이게 될 지도 모르겠다.

20세기의 역사에서, 내부와 외부로부터의 공포가 결합되었던 사례들은 대부분 비극적인 결말로 끝이 났다. 1933년 독일에서 정권을 차지한 나치는 베르사유 조약으로 그들에게 수모를 안겼던 영국과 프랑스에도 큰 적대감을 느끼고 있었지만, 외부로부터의 공포를 야기하는 주된 대상으로는 다른 나라에 주목했다. 멀게는 18세기 여제 엘리자베타 시대 러시아의 베를린 침탈에 대한 역사적 기억을 불러일으키고 가깝게는 ‘야만적’ 공산주의의 팽창 가능성을 독일 국민들에게 경고하면서, 나치는 소련을 공포의 원천으로 형상화하였다. 한편, 이런 외부의 적 만들기와 함께 내부의 적 찾기 및 제거 작업도 동시에 진행되었다. 이에 주 희생양이 되었던 것은 잘 알려져 있듯이 유대인들이었다. 나치의 반유대주의는 유대인들이 아리안 족의 순수성을 오염시킨다는 조잡한 인종주의에서만 기인했던 것은 아니었다. 유대인들은 독일 국민의 안전을 해치는 위험인물들로도 묘사되었다. 테러, 사보타주, 간첩 활동 등은 유대인들에게 덧씌워진 죄목들이었다. 이렇게 내부 및 외부로부터의 공포가 한데 엮였던 1930, 40년대의 독일에서 어떤 일이 발생하였는지에 대해서는 더 자세히 이야기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정보부 또는 비밀경찰의 영향력 강화, 일당 독재, 언론 탄압과 사상 획일화, 그리고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인명 피해를 초래했던 전쟁과 집단학살 등을 열거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이런 시대에 히틀러의 공식 연설에서 가장 자주 등장했던 단어들 중 하나가 안보였다는 점은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외부와 내부로부터의 공포가 결합된 사례가 나치 독일과 같은 폭압적인 독재국가에서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1950년 2월 위스콘신 주의 무명 상원의원이었던 조셉 매카시는 미국 사회, 특히 국무부 등의 주요 국가 기관에 공산주의자들과 같은 내부의 적들이 존재한다는 주장을 펴 파장을 일으켰다. 그 이전의 반공주의 수사와 달리, 메카시의 발언이 큰 반향을 얻었던 이유는 이 내부의 적 ‘고발’이 당시 미국과 소위 자유 진영을 둘러싼 외부 정세와 결합되었기 때문이었다. 매카시의 발언이 있기 불과 몇 개월 전, 소련은 핵무기 실험에 성공하였고 중국은 공산화되었다. 그리고 그 해 여름 미국인들에게 스탈린의 사주이자 세계 제 3차 대전의 서막으로 보였던 한국전쟁이 발발하였다. 점점 붉게 물들어가는 지구의 이미지와 “러시아인들이 몰려오고 있다”라는 경보 메시지가 조성한 공포 분위기 속에서, 내부로부터의 위협을 제거하기 위한 미 정보기관들의 적극적인(?) 활동이 시작되었다. 이는 수많은 미국 지식인들을 향한 마녀사냥으로 번졌고, 미국 사회가 지금도 가장 부끄러워하는 과거사를 빚어 놓았다.

테러방지법들이 두려운 이유는 시민에 대한 저인망식 사찰 가능성의 비약적 증대에만 있지 않다. 그 법들이 존재함으로써, 그리고 테러위험인물이라는 명목 하에 그 법들에 적용되는 범주가 확대됨으로써, 우리 사회 내부로부터의 공포 심리가 부추겨질 가능성은 훨씬 커진다. 이런 의미에서 테러방지법들은 국가보안법과 쌍을 이룰 것 같다. 안팎으로부터의 위협을 과장하는 방법을 통해 정권을 지켜온 21세기의 가장 대표적인 예는 아마도 북한일 것이다. 최근 한국 정치 행태를 “북한 체제의 거울 이미지”라고 표현했던 국내의 한 저명한 노(老) 정치학자의 통찰이 지나친 것으로 남기를 바랄 뿐이다.

광주과학기술원 교수ㆍ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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