앰네스티 “평화시위 보장” 영상 제작
오늘밤, 참가자 없이 스크린 상영만
경찰 “구호제창하면 집회ㆍ시위 해당”
처벌대상ㆍ단속규정 싸고 고민 깊어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가 촬영·편집한 '2.24 엠네스티 유령집회' 홀로그램 영상 장면.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제공

경찰은 광화문 한복판에서 “집회ㆍ시위 자유를 보장하라”고 외치는 ‘유령’을 단속할 수 있을까. 지난해 민주노총이 주관한 민중총궐기 집회 이후 정부의 집회ㆍ시위 강경 대응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3차원 영상(홀로그램)을 이용한 ‘2ㆍ24 앰네스티 유령집회’가 예고돼 경찰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23일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에 따르면 주최 측은 박근혜 대통령 취임 3주년 하루 전인 24일 오후 7시30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가로 10m, 세로 3m짜리 투명 스크린을 세워놓고 홀로그램 영상을 비추는 식으로 집회를 진행한다. 이름도 생소한 유령집회에는 시민 120여명이 미리 제작된 홀로그램 형태로 등장해 정부와 경찰의 집회ㆍ시위 강경 대응을 비판할 예정이다.

하지만 “평화시위 보장하라” “집회는 인권이다” 등의 구호 제창과 피켓 시위는 영상으로만 존재할 뿐, 집회 참석자는 전혀 없다. 30여명의 인력이 조명 및 무대 설치를 도와주는 정도다. 이런 이유로 앰네스티는 경찰에 집회 신고를 하는 대신, 서울시에 문화제 개최 허가만 받았다. 서울시 관계자는 “홀로그램이라는 새로운 방식을 통해 평화집회를 정착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판단해 장소를 내줬다”고 설명했다.

앰네스티 유령집회에 참가 지원한 시민들이 12일 서울 북아현동의 한 스튜디오에서 각자 제작한 피켓을 들고 행진하며 크로마키 촬영에 임하고 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제공

경찰은 겉으로는 유령집회 역시 일반집회에 준해 대응하겠다는 방침이나 속사정은 그리 간단치가 않다. 서울경찰청은 “홀로그램 시위도 구호를 제창하는 등 집단 의사를 표현하면 집회ㆍ시위에 해당한다”며 “순수 문화제 수준을 넘어설 경우 불법 예방 차원에서 공권력 동원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집단 구호를 외친다 해도 행위자가 영상 속 인물이라는 점에서 선뜻 처벌 수위를 정하기 어렵다는 게 경찰의 고민이다. 경찰 관계자는 “홀로그램 시위가 국내에선 처음이나 외국의 경우 신개념 집회 형태로 자리잡아 집시법 규정을 그대로 적용하기는 힘들다”며 “시위 당일 진행 과정을 보면서 대응 방향을 설정하겠다”고 말했다. 홀로그램 시위는 지난해 4월 시위 금지 기조를 표방한 스페인 정부에 맞서 현지 시민단체가 이를 풍자하는 3차원 입체영상을 선보이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사실 유령집회를 제재할 마땅한 근거도 없는 상태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경찰이 내건 준법시위 강화 방침과 충돌할 순 있어도 영상을 활용한 집회를 처벌하는 법 조항은 마련되지 않았다”며 “행사 중 돌발 상황이 발생해 교통흐름을 방해하는 등의 불법이 있다면 모를까 문화제 자체를 제재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경찰이 최근 문화제나 1인시위 등 집회 신고가 불필요한 행사에도 불법ㆍ미신고 혐의를 적용해 여론이 악화하고 있는 점도 부담이다. 경찰은 지난해 12월 19일 문화제 형식으로 열린 3차 민중총궐기 대회에서 정치적 구호 제창과 플래카드가 등장했다는 사실을 근거로 형사 처벌 방침을 밝혔고,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이를 비판하는 여론이 일고 있다.

앰네스티 관계자는 “경찰이 영상 시위에조차 불법의 올가미를 씌운다면 스스로 표현의 자유를 가로막는 퇴행성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결국 유령집회의 불법 여부는 영상에 담긴 목소리에 얼마나 정치적 의도가 있느냐가 될 것”이라며 “경찰이 설령 불법 집회로 간주해도 처벌 대상을 누구로 할지, 어떤 규정을 대입할지 등의 문제가 남는다”고 말했다.

김현빈기자 hbkim@hankookilbo.com

김정원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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