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바퀴찬가] 21. '스마트 롤러'의 등장

20일 오후 서울 도봉구 알피엠 스포츠 트레이닝 룸에서 라피에르 오버로드 동호인 자전거팀이 스마트 롤러 ‘비텔리(Bitelli)’를 이용해 훈련하고 있다.

위이이이잉, 헉헉, 위이이이잉, 헉헉……

부드러운 마찰음 사이로 거친 숨소리가 쏟아진다. 두 자전거 동호인이 괴상한 물체 위에서 페달 굴리기에 여념이 없다. 자전거를 받치고 있는 물체가 꿈틀댈 때마다 두 사람의 표정은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두 사람이 흘린 땀방울은 기계를 금세 적셔 버렸다.

20일 오후 서울 도봉구 마들로에 위치한 한 자전거 전문매장 지하. 동장군의 기세가 꺾이지 않았지만 이곳은 열기로 가득했다. 자전거 대회 출전을 준비하는 동호인들이 막바지 훈련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경기 성남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라피에르 오버로드 팀은 전남 강진에서 열리는 대회를 일주일 앞두고 이곳을 찾았다. ‘스마트 롤러’로 훈련하기 위해서다.

스마트 롤러 위에서 힘차게 페달을 구르는 동호인들. 스마트 롤러는 코스 경사도에 따라 롤러의 기울기를 조절해 실제 오르막과 내리막을 이동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스마트 롤러는 무턱대고 구르기만 하는 기존 롤러와는 차원이 다르다. 코스를 선택하면 자전거 이용자 시점에서 촬영된 코스 영상을 보며 달릴 수 있다. 실제 풍경이 담긴 화면은 달리는 속도에 맞춰 보인다. 언덕, 내리막도 그대로 실내로 가져왔다. GPS 정보에 따라 롤러가 각도를 조절하는 방식이다. 예컨대 오르막에서는 앞바퀴 쪽이 높아지고 뒷바퀴 쪽이 낮아져 실제 경사도를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최대 경사도는 오르막, 내리막 20%까지 조절된다고 한다.

스마트 롤러 위에서 거친 숨을 몰아치며 달리고 있는 라피에르 오버로드 팀의 이두식(왼쪽)씨와 정희준씨.

이날 라피에르 오버로드 팀은 스마트 롤러를 이용해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강진 코스 30 여km를 달렸다. 정희준(30)씨는 가뿐 숨을 몰아 쉬며 “내리막 구간에서 몸이 앞쪽으로 기울어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다”며 “시각적으로나 물리적으로 실제로 밖에서 타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팀의 에이스 이두식(30)씨는 “오르막과 내리막에서 수시로 기어 변속을 해야 할 정도니 집에서 벽보고 타는 롤러와는 확실히 다르다”며 “지루함을 느끼지 않고 오랫동안 다양한 방식으로 운동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하종래(33) 팀장은 “취미로 자전거를 타는 동호인 입장에서 대회가 열리는 실제 코스를 사전에 답사하기는 어렵다”며 “시간과 비용을 많이 들이지 않고도 실제 코스를 체험해 볼 수 있는 점이 좋다”고 했다.

스마트 롤러에 직접 올랐다. 기존 롤러와는 차원이 달랐다. 언덕을 넘으며 차오르는 숨을 내뱉기 위해 입이 벌어졌다.

기자가 스마트 롤러에 올라봤다. 수도권 동호인 사이에서 ‘성지’로 불리는 ‘분원리 코스’를 선택했다. 경기 광주시 남종면 분원리에서 시작해 팔당호 주변을 끼고 도는 코스다. 페달을 굴린 지 1분이나 지났을까 언덕이 나타났다. 경사도는 5%가 채 안됐다. 오르막 축에도 끼지 못하는 작은 언덕이다. 언덕 구간에 진입하자 몸이 뒤쪽으로 기울면서 속도가 급격히 떨어졌다. 누군가 몸 뒤쪽에서 잡아 당기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겨우내 오를 대로 오른 살들은 격렬히 언덕을 거부했다. 무를 대로 물러진 몸으로 억지로 페달을 밟다 금세 숨이 차 올랐다. 눈은 오르막의 끝만 찾고 있었다. ‘이 고생을 왜 하나’ 싶었을 때 언덕배기에 다다랐다. 이제 내리막길이다. 몸이 앞쪽으로 기울면서 페달이 가벼워졌다. 순식간에 속도가 높아졌다. 다운힐의 쾌감을 본격적으로 만끽하려던 찰나 또 다시 등장한 언덕. 다시 끙끙댄다. 그렇게 언덕 몇 개를 넘었을까. 안경 렌즈를 타고 땀이 흘러 안경테 아래쪽에 고였다. 입에서 단내가 나기 시작했다. 오기는 나중에 부리기로 하고 페달을 멈췄다.

신통방통한 녀석임이 틀림없다. 밖에 나가지 않고도 실제 코스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달리고 싶은 욕구는 하늘을 찌르지만 추운 날씨 탓에 자전거 타기를 주저하게 되는 요즘 같은 시기에 ‘딱’이다.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자전거와 함께 즐거운 겨울을 보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자전거를 타다 익숙지 않은 지역에 들어서면 길을 헤매기 일쑨데 실제 라이딩에 앞서 사전에 코스를 익히는 데도 유용할 것으로 보인다. 대회에 앞서 실내에서 훈련하기에도 제격이다. 언젠가는 세계 3대 자전거 대회인 ‘뚜르 드 프랑스’, ‘지로 디 이탈리아’, ‘부엘타 아 에스파냐’의 유명 코스도 서울에서 실제처럼 달릴 수 있을 것이다.

똑똑해지는 기기 덕분에 자전거족들은 즐거워진다.

김주영기자 wil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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