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측, 노조에 탈퇴 종용 가능성 커
산별노조와 교섭 거부 악용 우려도
"기업별 노조 많아지면 세력 파편화
부당노동행위 훨씬 심각해질 것"
금속노조 발레오만도지회 조합원들이 19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산별노조 지회의 기업별 노조로 변경을 인정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선고에 대해 아쉬운 표정으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연합뉴스

대법원이 19일 금속노조 산하 발레오만도지회 사건에서 산별노조 지부 및 지회가 기업별 노조로 전환할 수 있다고 판결하면서 노동계 전체에 비상이 걸렸다. 산별노조는 우리나라가 1997년 외환위기(IMF) 당시 겪었던 기업별 노조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2000년 초부터 활성화한 후 성숙해 나가는 단계인데, 그 기반이 흔들릴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특정 산업 종사자들을 조합원으로 하는 산별노조는 개별 기업 소속 근로자만을 조합원으로 하는 기업별 노조보다 협상력이 커 종사자들의 권익 보호에 유리하다.

산별노조 탈퇴, 교섭 상대 불분명

먼저 전국 산별노조 지부ㆍ지회에서 탈퇴가 적지 않을 전망이다. 특히 금속노조 등 산별노조와 사이가 좋지 않은 기업들이 노조에 탈퇴를 종용할 가능성이 많다. 산별노조를 탈퇴하고 기업별 노조로 바꿀 경우 사측이 발휘할 수 있는 영향력이 커지기 때문이다. 신은종 단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대법원이 독자적인 규약 및 집행기관이 있는 지부는 조직형태를 변경할 수 있다고 했으므로, 기업의 지원 아래 이런 규약과 집행기관 등 ‘탈퇴를 위한 조건’을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승욱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우리나라는 2011년 복수노조 제도가 도입됐기 때문에 산별노조 사업장이라도 탈퇴해 따로 기업별 노조를 만들 수 있다”며 “그런데 대법원이 노조 형태 변화까지 허용하면서, 사업장 내 갈등이 더 커질 수 있다”고 비판했다.

교섭과정에서도 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이 지부ㆍ지회를 하나의 독자적인 조직으로 인정한 것이 사측이 산별노조와의 교섭을 거부하는 근거로 악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산별노조 지부ㆍ지회는 예외적인 몇몇 지부(현대ㆍ기아차지부 등)을 제외하곤, 모두 산별노조가 교섭에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이승욱 교수는 “대법원이 ‘노조 내 또 다른 노조’를 인정함으로써 산별노조와 지부를 어떻게 구분하고, 교섭은 누가할지 혼란이 생기게 됐다”며 “사용자가 산별노조의 교섭을 거부할 경우 어떻게 되는지 법리적으로도 매우 복잡해졌고, 현실적으로도 지부들의 잇단 탈퇴 등 큰 혼란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일부 기업과 노조의 ‘짬짜미’도 예상된다. 산별노조와의 교섭을 꺼리는 기업의 경우 자신들의 사업장에 있는 지부에 ‘별도로 교섭을 할 경우 임금 인상율을 더 높여주겠다’고 제안하고 지부 역시 경제적 이익을 쫓아 독자적인 교섭에 나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산별제도 자체가 무력화되고 노동자끼리 노노갈등은 심화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유럽 미국은 100% 산별노조

산별노조는 비슷한 업종 종사자의 급여와 복지를 균등한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또 산별노조에 소속되면 영세 사업장도 사측을 상대로 당당히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이에 유럽 미국 등 주요 선진국은 거의 100% 산별노조로 이루어져 있다. 독일 미국 등은 기업노조를 아예 법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해산시키는데, 기업노조는 기업이 노조를 쥐락펴락하며 개입할 여지가 큰 구조이기 때문이다. 근로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산별노조가 적합하다는 공감대가 세계적으로 형성돼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기업노조 형태를 갖고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일본이 유일하다.

우리나라는 노조 형성 초기 기업노조 중심이었지만, 1997년 외환위기(IMF) 후인 2000년 초반부터 산별노조가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대량 구조조정 등을 겪으며 기업노조의 한계를 절감했고, 이에 1997년 노동법 개정 당시 ‘노조 조직 형태 변경 제도’를 신설했다. 기업노조가 산별노조로 전환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날 판결에서 이 제도는 산별노조 지회가 다시 기업노조가 되는 근거가 됐다.

현재 우리나라 노조 조합원의 56.5%가 산별노조 조합원이다. 자동차 및 자동차 부품 회사 종사자들로 구성된 금속노조가 조합원 15만6,000명으로 가장 덩치가 크고, 공공부문 근로자 화물ㆍ버스ㆍ택시 기사 등으로 구성된 공공운수노조, 병원 종사자 등이 가입한 보건의료노조, 언론노조 등이 있다.

하지만 유럽 등 선진국처럼 공고하지 않은 상황이다. 신은종 교수는 “우리나라는 산별노조가 아직 불완전하고 허약한데 이마저 흔들어버리는 판결이 나왔다”며 “기업별 노조가 많아지면 노동세력이 파편화돼 기업의 노조개입, 노조 파괴 시도 등 부당노동행위가 훨씬 심각해지고 한국 노사관계가 발전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남보라기자 rarar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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