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이 문을 닫았다. 아니 닫혔다.

네 탓이 전부요 내 탓은 하나 없다는 ‘나랏님’께서 윗동네 사람들 버릇 좀 고치겠다며 그 특유의 뚝심으로 앞뒤 살피지 않고 밀어붙였다. 통일의 보루? 뭐 거창하게 거기까지 논할 일도 없고 5만 4,000여명 북측 노동자들의 상황도 살필 겨를이 없다. 수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손실액 또한 실감이 나지 않는다. 당장 남측의 124개 입주업체를 비롯한 관련 하청업체 직원들과 그 가족들의 저녁식사 자리만 눈에 밟힌다. 누구 말처럼 ‘저녁이 있는 삶’을 잃어버릴 이들의 허망한 눈빛이 비수처럼 가슴을 콕콕 찌른다.

뉴스를 보다 숨이 막혀버린 나는 찍은 지 20년 가까이 된, ‘연식’깨나 쌓인 오래된 사진 한 장을 꺼내 들었다. 잠자던 기억을 흔들어 셔터를 누르던 그날의 상념도 일부러 들추어 보았다. 살짝 가슴이 설레는 걸 보니 이젠 추억이라 할 만한 오래 전 ‘그날’이 상큼하게 되살아난다. 잠깐이겠지만 숨통이 조금은 트인다.

한복 차림에 약간 마른 체구인 사진 속 그녀는 앳된 얼굴 가득 붉은 빛을 띤 채 배시시 웃기만 했다. 우연히 만난, 까르르 웃고 떠들던 젊은이들 중 하나였던 그녀는 친구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일 뿐 자신이 나서서 분위기를 이끌지는 않았다. 흥에 겨운 노래를 함께 부를 때는 기타를 들어 연주를 해주던 모습도 기억이 나는데, 그러면서도 늘 홍조 띤 얼굴로 주변을 배려하던 그녀의 고운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런 그녀에게 나는 계속 시선이 끌렸다. 오래되긴 했어도 그날의 감흥이 선명하게 남아있는 걸 보면 청순한 눈빛의 맑은 인상을 지닌 그녀가 확실히 눈도장을 찍긴 했던 듯싶다.

사진 속 주인공의 이름은 ‘장류진’.

갓 스무 살을 넘긴 그녀는 당시 김일성종합대학교 경제학부에 다니던 대학생이었다. 사진기자를 하던 시절 중 한때 ‘북한전문기자’ 또는 ‘김정일 위원장이 아는 유일한 남녘사진기자’라는 농반진반의 별칭이 있을 만큼 여러 차례에 걸쳐 방북취재를 했었던 나는, 1999년 여름 즈음 평양 시내 한복판을 흐르는 대동강의 강변공원을 거닐다가 대학생 무리들 중 한 사람이었던 류진씨를 만나게 되었다.

그녀에 대한 당시의 관심은 단지 순수해 보이는 어린 여성에 대한 가벼운 호기심 때문이 아니었다. 그 자리는 남과 북으로 나뉘어 극단적으로 양분화된 채 서로를 ‘주적’으로 여기며 살아온 상대끼리 마주 앉아 머쓱함을 풀어내는 곳이었고, 자연스레 서로에 대한 경계와 구분이 사라지면서 다를 바 없이 ‘같은 우리’를 확인하는 벅찬 감흥의 순간이기 때문이었다. 북녘 땅을 돌아볼 수 있는 아주 특별한 기회가 운명처럼 펼쳐질 때마다 나는 굳은 다짐을 하곤 했었다. 내가 취재해야 할 것은 ‘우리’가 얼마나 다른지가 아닌 얼마나 같은지를 찾는 것이라고. 류진씨는 그런 나의 의지와 열정을 있는 그대로 채워주는 취재원이나 다름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옛 기억을 주저앉히고 나니 다시 가슴이 먹먹해진다.

나는 너무 오래되어 더 이상 사람들의 눈길을 끌 만한 여지도 없는 이 낡은 사진 한 장을 왜 지금 꺼내 든 것일까. 막장 드라마나 다름없는 어이없는 현실 속에서 망각의 바다를 뒤져 걷어 올린 퇴색한 기억 하나로 나는 대체 무엇을 하려는 것인가.

끊어질 대로 다 끊어져 더 이상 이음새를 찾기 어려워진 남북관계 탓에 속이 끓는다고 할 생각은 없다. 짧은 숨통 한번 트이는 것만으로는 뭔가 아쉽다. 그냥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부질없는 심정을 감출 도리가 없을 뿐이다.

달팽이사진골방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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