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바퀴찬가<20> '기계 도핑'의 시작과 끝

벨기에서 열린 세계사이클로크로스대회에 출전했다 자전거에서 모터가 발견된 펨케 반덴드리슈(19) 선수와 그의 당시 경기 모습. TDWsport.com

“내 자전거가 아니다. 나와 똑같은 자전거를 타는 친구의 것을 팀 기술자가 실수로 갖다 준 것이다”

대회에 출전한 자전거 안에서 모터가 발견되자 선수가 내놓은 궁색한 변명이다.

지난 1일 국제사이클연맹(UCI) 주최로 벨기에에서 열린 세계사이클로크로스대회에서 ‘기계 도핑(모터 도핑)’이 발각됐다. 여자 23세 이하 부문에서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혔던 벨기에의 펨케 반덴드리슈(19)의 자전거에서 소형 모터가 발견된 것이다. 약물 대신 기계나 장치를 이용해 운동능력을 증가시키는 기계 도핑이 실제로 밝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UCI는 구체적인 조사에 착수했고 해당 선수의 징계절차에 돌입했다.

□ 오래된 기계 도핑 의혹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기계 도핑 의혹은 6년 전에도 있었다.

2010년 4월 대표적 클래식 자전거대회에서 2개의 우승컵을 거머쥔 스위스 사이클 스타 파비앙 칸첼라라에게 처음으로 ‘모터 도핑’ 의혹이 불거졌다. 칸첼라라는 벨기에 플랜다스 투어에서 매우 가파른 오르막 구간을 안장에서 엉덩이도 떼지 않은 채 아주 빠른 속도로 올랐다. 그의 모습은 대부분의 선수들이 엉덩이를 들고 죽을 힘을 다해 오르는 모습과 완전히 대조됐다. 칸첼라라는 오르막 구간에서 경쟁 선수를 완벽하게 따돌리고 우승컵을 들어 올린다. 같은 달 프랑스에서 열린 파리-루베 경기에서도 압도적인 기량을 보여준다. 선두 경쟁에서 자전거의 움직임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의 운동능력을 과시한다. 순식간에 경쟁 선수와 격차를 벌리고 50여km를 독주한 뒤 우승컵을 차지한다.

파비앙 칸첼라라 선수가 2010년 4월 파리-루베 경기에서 역주하고 있다. 스페셜라이즈드 홈페이지

칸첼라라의 초인적인 기량이 의심스러웠던 한 전직 사이클 선수가 경기 영상을 분석해 유튜브에 올리면서 의혹은 커진다. 경기 도중 자전거 핸들을 옮겨 잡는 과정에서 특정 부위를 누르는 동작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버튼을 눌러 모터를 가동하고 모터의 힘을 받아 추진력을 올렸다는 주장이었다.

팻 맥콰이드 당시 UCI 회장은 “모터를 가동하려면 배터리가 설탕봉지만큼 커야 된다”며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주장을 일축했다.

칸첼라라도 “내 몸이 곧 내 모터다”라면 의혹을 완강히 부인했다. 이후 이탈리아 언론이 계속 의혹을 제기했지만 파장은 크지 않았다. 칸첼라라는 자신의 결백을 증명이라도 하듯 3년 뒤 두 대회에서 모두 우승했다.

논란은 지난해에도 발생했다. 영국의 크리스 프룸이 세계 최고 권위 대회인 뜨루 드 프랑스에서 압도적 기량을 보이자 도핑 논란에 휩싸였다. 사람이 낼 수 있는 힘을 넘어섰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사이클 황제로 추앙 받았던 랜스 암스트롱의 전성기 시절 ‘약물의 힘’에 맞먹는다는 주장도 나왔다. 전직 사이클 선수들이 논란에 가세하면서 의혹은 확산됐고 약물 도핑에 기계 도핑 의혹까지 불거졌다. 하지만 이런 의혹은 프룸이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데 장애물이 되지 않았다.

□ 소형 모터가 낼 수 있는 힘은?

오스트리아 전기자전거 전문 업체 비박스 어시스트가 생산하고 있는 자전거용 모터. 자전거 안장에서 크랭크 허브 쪽으로 연결된 프레임 안에 장착할 수 있다. 업체에 따르면 최대 200W의 힘을 낼 수 있다고 한다. www.vivax-assist.com

자전거 프레임 안에 감출 수 있을 만큼 작은 모터가 낼 수 있는 힘은 얼마나 될까. 오스트리아 전기자전거 전문업체 ‘비박스 어시스트’에 따르면 프레임 안에 감출 수 있는 모터가 낼 수 있는 힘은 200W에 이른다. 최상위권 사이클 선수들이 순간적으로 가장 강력하게 낼 수 있는 힘이 500W(참고로 1마력은 746W) 전후라고 하니 모터를 가동했을 때의 힘은 상상을 초월한다. 많은 힘이 필요한 언덕 구간이나 급가속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모터를 가동한다면 엄청난 추진력을 얻을 수 있다.

모든 장비를 자전거 속에 감춰 장착하는데 드는 비용은 3,357유로로 우리 돈 500만원이 채 안 된다. 돈으로 직결되는 순위에 목맬 수밖에 없는 선수들이 충분히 유혹에 빠질 만하다.

이탈리아 스포츠 전문매체 가제타 델로 스포르트가 보도한 새로운 기계 도핑 방식. 자전거 뒷바퀴에 전자기 장비를 부착해 추진력을 얻는다. www.gazzetta.it

이탈리아 스포츠 전문 매체 가제타 델로 스포르트는 “모터를 프레임 안에 삽입하는 방식은 구식”이라며 “새로운 기계 도핑이 이미 공공연하게 사용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가제타 델로 스포르트에 따르면 뒷바퀴에 전자기 장치를 부착해 추진력을 얻는 방식도 등장했다고 밝혔다. 이 바퀴를 장착할 경우 20~60W의 에너지를 추가로 얻을 수 있다고 밝혔다. 가격은 20만 유로에 이른다.

□ 의혹은 해소될 수 있을까

브라이언 쿡슨 UCI 회장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모든 대회에서 자전거를 전수조사하는 방안까지 고려하고 있다”며 “수단을 가리지 않고 부정행위를 뿌리 뽑겠다”고 밝혔다. 조사결과에 따라 세계 사이클계에 엄청난 후폭풍이 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약물과 달리 건강에 악영향을 끼칠 우려가 없는 점은 선수 입장에서 기계 도핑의 치명적 매력이다. 수백 대의 자전거가 투입되는 사이클 경기 특성상 모터를 설치한 자전거를 감추는 꼼수를 발휘하는 일은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초인적 기량을 뽐냈던 선수들의 페달을 전기가 굴렸다는 조사결과를 기다리는 사이클 팬은 없다. 의혹이 더 이상 생기지 않도록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재발방지책도 나와야 한다. ‘모터 스캔들’은 여기서 끝나길 바란다. ‘진짜’ 자전거는 사람의 힘으로만 움직이는 것이다.

김주영기자 wil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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