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내부자들'에서 줄도 없고 빽도 없는 경찰 출신 검사 우장훈(조승우 분). 쇼박스 제공

검사와 정치깡패가 의기투합해 재벌과 권력, 언론의 검은 유착을 파헤치는 영화 ‘내부자들’의 우장훈(조승우 분) 검사는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입니다. 원래 열혈경찰이었던 그는 도중에 사법시험을 준비해 결국 검사가 됩니다. ‘경찰 출신 검사’. 실제 대한민국 검찰에선 쉽게 볼 수 없는 캐릭터죠. 경찰대 졸업 후 사시에 붙어 검사가 된 경우는 있어도, 일선 경찰로서 범죄현장을 누비다 뒤늦게 검사가 된 케이스는 검찰 역사상 없다고 합니다.

우 검사가 비주류인 지점은 또 있습니다. 바로 지방대 출신이라는 점이죠. 모두가 알다시피 법조계 인사, 특히 판ㆍ검사의 절대 다수는 서울대와 연ㆍ고대, 이른바 ‘SKY’ 대학 출신입니다. 지방대 출신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당연히 우 검사에겐 자신을 밀어주고 끌어주는, 학연으로 똘똘 뭉친 선배 검사가 거의 없습니다. 줄도 없고 빽도 없는, 하지만 출세는 하고 싶은 그가 택한 마지막 길은 ‘일’입니다. 일만 잘 하면 될 뿐, 출신학교는 상관없다? 우 검사는 현실과는 다른 이 말에 코웃음을 치면서도, 결국은 여기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죽어라 일만 하면서 “조직을 위해 개처럼 살았던” 이유겠죠.

그런데 잠깐, 진짜로 지방대 출신이 검찰 조직에서 출세하기 어려운 걸까요. 살다 보면 으레 당연하다고 여겼던 게 알고 보니 그저 선입견에 불과할 때도 많습니다. 그래서 한번 따져보기로 했습니다. ‘출세’의 의미야 사람들마다 다르겠지만, 그래도 가장 객관적 지표라 할 수 있는 검사장 승진 여부로 파악해 봤습니다(차관급인 검사장은 ‘검찰의 꽃’으로 불리는, 검사들이라면 누구나 꿈꾸고 영광스럽게 여기는 자리입니다).

1948년 검찰이 만들어진 이래, 최초의 지방대 출신 검사장이 탄생한 것은 1980년이었습니다. 조선대를 나온 이용식(82ㆍ고등고시 8회) 변호사가 주인공입니다. 지방대 출신이 검사장 승진의 문턱을 넘는 데 무려 32년이 걸렸던 셈입니다. 이듬해인 81년엔 전남대 출신인 김양균(79ㆍ11회) 전 헌법재판관이, 다음해엔 부산대를 나온 고(故) 김경회(14회) 전 부산고검장이 각각 검사장에 올랐습니다.

그 이후, 20년이 넘도록 지방대 출신 검사장은 단 한 명도 배출되지 못했습니다. 일종의 암흑기였다고 해야 할까요. 그러다 2004년 청주대 출신의 권태호(62ㆍ사법연수원 9기) 변호사가 대전고검 차장검사로 승진하며 22년간 꽁꽁 닫혔던 문을 다시 열었습니다. 당시 법무부 보도자료에 “검찰 내에서 신망 있고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지방대학 출신 검사 1명을 검사장급 보직자로 신규 발령하여 능력 중심의 인사 구현에 최선을 다하였음(※ 역대 검사장 중 지방대학 출신은 3명)”이라고 기재될 정도로 화제가 됐습니다.

2005년엔 이승구(64ㆍ11기ㆍ경북대) 변호사가 검사장으로 승진해 법무부 보호국장에 임명됐고, 2007년에도 박태규(62ㆍ13기ㆍ동아대) 변호사와 조한욱(60ㆍ13기ㆍ부산대) 변호사가 각각 춘천지검장과 서울고검 형사부장에 올랐습니다. 이듬해에도 충남대를 나온 김홍일(60ㆍ15기) 당시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가 검사장으로 승진했습니다. 현재 법무법인 세종의 변호사인 그는 2009년 8월 검찰 사정수사의 사령탑인 대검 중수부장에도 발탁됐는데, ‘지방대 출신 중수부장’은 고 김경회 전 부산고검장(87년 임명)에 이어 22년 만에 처음이었다고 합니다. 2011년 8월에도 변찬우(56ㆍ18기ㆍ경북대) 당시 수원지검 성남지청장이 검사장(서울고검 형사부장)에 올랐습니다.

이후 4년여간 끊겼던 명맥은 작년 12월 다시 살아났습니다. 경북대 출신인 김영대(53ㆍ22기) 대구지검 1차장검사와 전남대를 나온 양부남(55ㆍ22기) 수원지검 1차장검사가 각각 대검찰청 과학수사부장과 광주고검 차장검사로 승진했거든요. 11명(21기 4명, 22기 7명)의 승진자 가운데 2명이니 18%가 지방대 출신인 거죠. 22기 동기들로 폭을 좁히면 28.5%(7명 중 2명)에 이르고요. 단순 수치로만 보자면 ‘지방대의 약진’이라 해도 될 법합니다.

대한민국 검찰 68년 역사상 지방대 출신 검사가 ‘검사장 승진’의 좁은 문을 통과한 사례는 위에서 열거한 11명이 전부입니다. 지금까지 검사장 타이틀을 달았던 총 인원이 얼마나 되는지는 자료 수집의 한계로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지만, ‘11명’이 결코 많은 숫자는 아닌 듯합니다. 일단 확인 가능한 범위만이라도 살펴 볼까요. 참여정부 첫 해인 2003년 이후 배출된 검사장은 모두 147명으로 파악됐는데, 이들 중 지방대 출신은 ‘80년대 3명’을 뺀 8명뿐입니다. 고작 5.4%에 불과하죠. 그 이전, 고등고시 출신 검사장들까지 고려하면 그 비율은 더욱 더 줄어들 거구요.

하지만 이걸로 끝내면 ‘통계의 오류’가 발생합니다. 전체 검사들 중 지방대 출신은 얼마나 되는지, 즉 모집단 규모도 감안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각 기수마다 지방대 출신 검사는 2000년대 중반쯤엔 4% 안팎 정도였다가 2010년대에 들어선 6%대로 약간 증가했다고 합니다. 예컨대 2010년 신규 임용 검사 141명 중 수도권을 뺀 지방대 출신 검사는 9명(6.4%)에 불과했고, 2011년은 6.0%, 2012년에도 6.7%로 비슷했습니다. 한마디로 “지방대 출신 검사가 애초부터 극소수이니, 검사장 승진 인원이 적은 것은 당연하다”는 허탈한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는 거죠.

자, 원래의 질문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지방대 출신 검사는 정말 출세(검사장 승진)가 힘든가. ‘예, 아니오’ 식으로 딱 부러지게 대답하긴 어렵습니다. 다만 ‘100명 중에서 10등 안에 드는 것’과 ‘10명 중에서 1등을 하는 것’, 어느 쪽이 더 힘들지 따져 보면 참고가 될 것 같습니다. 판단은 독자 여러분의 몫으로 남겨두려 합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어느 대학 출신이든 ‘검사장 승진’은 모든 검사들한테 바늘구멍이나 마찬가지라는 점입니다. 때문에 학연이라는 끈이 절대적 요소는 아니라 해도, ‘학력자본’ 측면에서 불리한 위치에 있는 이들한테 경쟁은 그만큼 더 힘들게 다가올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검사들은 “조직 생활에서 학연은 결코 무시 못한다”고 토로합니다. 그래도 희망을 버려선 안 되겠지요. 수년 전 어느 검찰 간부(명문대 출신)가 술자리에서 지방대를 나온 한 후배 검사 이야기를 하며 “검찰의 미래를 이끌어 가야 할 재목”이라고 침을 튀기며 칭찬을 하던 모습에서 자그마한 기대를 품어 봅니다.

김정우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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