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슬림이 바라본 이슬람 분쟁 (9/끝)]

무슬림이 바라보는 십자군 전쟁

교황청의 종교적, 정략적 발상 때문

무지한 유럽세계가 일으킨 침략전쟁

첨단 학문 전달… 르네상스 원동력 돼

강대국 이권다툼에 쪼개진 이슬람

서구가 200년 지배… 종교와 민족 훼손

석유 이권 위해 아랍권 22개로 분열

팔레스타인 등 분쟁 뇌관 도사려

문명 충돌을 뛰어 넘으려면

헌팅턴의 “이슬람의 피의 경계선” 주장

서구 우월성 정당화한 의도 드러나

화해와 공존 ‘문명 간 대화’로 극복해야

분쟁에서 평화로: 희망의 불씨는 없는가?

이슬람 급진세력들의 테러는 주로 서구를 대상으로 한다. 이슬람세계와 서구 사이에 그만큼 갈등과 반목의 골이 깊다는 반증이다. 그렇다고 이를 종교간 분쟁이나 문명간 충돌로만 본다면 해결의 실마리를 놓치기 쉽다.

최근 필자는 지난해 1월 발생한 프랑스 샤를르-에브도 언론사 총기난사 현장과 이스탄불 폭탄 테러 현장을 직접 경험했다. 특히 1월 16일 이란과 서구의 37년에 걸친 적대적 대치의 끝인 경제제재 해제라는 역사적 순간을 테헤란에서 직접 목격하면서 극한적 대치상황인 두 세계가 다시 공존할 수 있는 해법에 대한 고민이 깊었다.

십자군 전쟁은 갈등이 아닌 교류와 만남의 계기

흔히 서구와 이슬람권의 갈등의 뿌리를 십자군 전쟁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그러나 이슬람 역사에서는 십자군 전쟁을 두 세계의 ‘갈등 전쟁’으로 서술하지 않는다. 무지의 유럽세계가 교황을 중심으로 일으킨 침략전쟁이며, 가장 치욕적이고 반문명적인 사건으로 기록한다. 로마 교황 우르반 2세의 호소로 시작된 1차 십자군이 1099년 예루살렘을 점령하면서 시작된 십자군 전쟁은 1365년까지 9번의 대규모 출병으로 이어졌고 약 270년 동안 중동과 유럽 동남부 일대를 피로 물들였다. 당시 이교도의 수중에 있었지만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기독교인들의 순례는 세금을 내는 조건으로 보호됐고, 해마다 그 숫자가 늘어나고 있었다. 따라서 기독교 순례자가 박해를 받는다는 종교적 호소는 다분히 교황청의 정략적인 발상이었다.

오히려 이슬람 역사는 십자군 전쟁을 통해 서구와 이슬람 세계가 전 방위적으로 만나면서 유럽대중들이 이슬람의 선진 문화에 크게 자극 받았다고 기술한다. 이때 향료, 진귀한 상품, 오렌지, 레몬, 커피, 설탕, 면화와 그 재배법 등은 물론, 첨단 과학과 학문이 광범위하게 유럽으로 흘러 들어갔다. 이는 후일 르네상스가 일어나는 원동력이 된다. 십자군 전쟁이 갈등의 뿌리가 아닌 두 문명이 교류하고 영향을 받는 만남의 촉매제로 보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이슬람세계의 분쟁과 비극

그럼 왜 유독 지구촌분쟁이 이슬람세계 언저리에서 집중적으로 일어나는가? 그만큼 역사적 응어리와 분노의 층이 두텁다는 의미이다. 이슬람 세계는 최근 200년 가까이 서구의 지배를 경험하였다. 종교적 가치가 훼손되고 민족의 자긍심은 모욕당했다. 심지어 전통 문화와 언어마저 빼앗겼다.

무엇보다 수 천년간 살아왔던 삶의 터전이 무너지고 석유는 축복보다는 저주가 됐다. 강대국들은 석유이권을 위해 자신들의 입맛에 따라 중동을 요리했다. 중동 최대의 민족이었던 쿠르드인들의 거주지는 1923년 로잔 조약으로 하루 아침에 다섯 나라로 쪼개졌다. 지금 그들은 터키, 시리아, 이란, 이라크, 아르메니아 등지에서 각각 소수민족이 되어 독립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시리아, 이라크. 바레인, 레바논에서는 소수 종파가 권력을 장악했고 아랍이라는 거대 공동체는 22개 개별국가로 쪼개져 서구의 이해관계에 따라 자신들끼리 반목하고 있다.

80년에 시작된 이라크-이란 전쟁은 같은 이슬람 국가끼리 8년 전쟁을 벌여 양측 모두 미국 무기를 사용하면서 상호 200만 명 이상의 고귀한 생명을 잃었다. 미국의 침공으로 시작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수십만 명의 무고한 민간인이 죽었고, 지금도 자국민끼리 원수가 되어 서로 죽고 죽이고 있다. 서구와 러시아의 국제 대리전이 된 시리아 내전에서는 전체 인구 2,200만명 중에서 1,100만명 이상이 난민이 되어 이웃국가나 유럽으로 생존의 탈출을 시도하고 있다. 이스라엘에 의한 팔레스타인 점령지나 서구가 깊숙이 개입하고 있는 수단과 소말리아, 리비아, 보스니아, 코소보 등지에서도 갈등과 분쟁의 뇌관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문명충돌론’의 본질

미국의 전략적 이익을 대변하는 보수파 정치학자 사무엘 헌팅턴은 이슬람이 있는 곳에 분쟁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슬람의 피의 경계선’이라는 섬뜩한 이론으로 문명충돌론을 제창했다. 그에 따르면 서구와 이슬람 세계의 대결은 피할 수 없고 일련의 갈등을 문명간의 충돌로 설명한다. 표피적인 현상으로만 보면 매우 그럴듯하게 보인다. 그러나 실상은 문명 충돌이라기 보다는 국익 극대화를 위한 강대국들의 부당한 침략, 석유이권을 둘러싼 갈등, 극우정치집단들의 전쟁 비즈니스, 일부 이슬람 급진주의자들의 종교적 일탈과 무모한 복수 등이 원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헌팅턴의 문명충돌론은 독일의 하랄트 뮐러, 미국의 에드워드 사이드, 노암 촘스키, 영국의 아마르티아 센, 타리크 알리 등과 같은 세계적인 석학들에 의해 비판 받았다. 96년 하랄트 뮐러가 분석한 내용에 따르면, 27건의 폭력위기 중에 단지 9건만이 문명간의 충돌이고, 나머지는 단일 문명권에서 일어났다. 그에 의하면 전쟁과 유혈폭력사태의 2/3 이상이 인종문제와 관련돼 발생하고 있다. 대규모 인구유입을 통한 인구구성비의 인위적 조작, 식수부족이나 농지 잠식 등 자연환경의 오염으로 인한 생태학적 스트레스가 소수집단의 정체성을 위협하게 될 때, 필연적으로 지배집단과의 갈등이 심화된다고 봤다. 이 때 종교와 이데올로기는 소속 집단을 결속시키는 강력한 ‘사회적 시멘트’로 기능한다고 보았다.

다른 측면에서 문명충돌론은 오리엔탈리즘의 입장과도 맥이 통한다. 문명충돌론이 미국과 서구를 문명화된 강대국으로 설정한 것 자체가 오리엔탈리즘이 재생산해 왔던 편견을 답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명충돌론도 얼핏 보면 상이한 문명간의 충돌이 본질적인 것처럼 묘사되지만, 근저에는 문명화된 서구가 우월적으로 존재하고 있고 서구의 공격을 정당화하려는 전략적 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문명충돌에서 문명간 대화로

그럼 어떻게 문명충돌이 아닌 문명간 대화를 이끌어내고 새로운 담론을 제시할 수 있을까. 현재 빌 게이츠 재단이 추진하고 있는 빅히스토리(Big History) 프로젝트가 그나마 인상적인 대안으로 평가된다. 인류의 다양한 삶과 역사를 빅뱅에서 현재까지 138억년이라는 하나의 지구사 관점으로 접근하면서 기존의 서양중심 역사에서 인류사 전체로 새롭게 조망해 보자는 취지다. 그래서 중동-이슬람권 역사는 물론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라틴 아메리카 등지의 역사도 비중있게 다룬 인류의 공동 교과서를 집필해 함께 배우자는 것이다. 획일화된 문화를 강요하는 독선과 이로 인한 갈등과 전쟁 보다는 138억년이란 긴 우주역사 속에서 인류의 존재가치를 깨닫게 하자는 것이다.

또 하나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아마르티아 센 교수가 제시한 ‘문화적 자유’ ‘다원적 정체성’ 개념을 통해 새로운 가르침을 얻을 수 있다. 네 편과 내 편, 하나의 종교, 하나의 이념만이 아니라 인류가 태생적으로 갖고 있는 다원적 정체성을 인정하고 교육하자는 것이다. 예를 들면 기독교인이면서도 절에도 가보고 이슬람 친구들을 사귀어보는 것을 말한다. 센 교수는 문화적 자유와 정체성의 이성적 선택권을 강조함으로써 이주민들이 주류사회에 동화를 택하건 자신의 과거 정체성을 유지하건 그것을 개인적 판단에 맡기자는 입장을 취한다.

“문명충돌론은 각국의 이해관계나 욕망의 충돌, 정치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어 온 측면이 강하다”고 본 파키스탄 출신 영국 작가 타리크 알리도 9.11 테러와 IS 준동 그리고 십자군 전쟁의 정신으로 맞서는 서구세력간의 갈등을 주류간의 대치라기보다는 소수 세력에 의한 ‘무지의 충돌(Clash of Ignorance)’로 설명한다. 또 이란 전 대통령 모하마드 하타미는 ‘문명간의 대화’를 주창해 신선한 충격을 줬다. 문명 충돌보다는 문명간 화해나 공존을 통해 서로 다른 가치를 인정하고 상대를 이해하는 방식으로 인류의 미래가 펼쳐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들이다.

이 희 수(한양대 교수/중동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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