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서 패터슨에 징역 20년 선고

19년 전 살해된 조중필씨의 어머니 이복수씨가 29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진범 아더 패터슨에게 징역 20년형이 선고된 후 법정을 나서며 "유죄가 안 될 줄 알았는데 다 도와줘서 이뤄졌다"고 말하고 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정의는 19년을 지각했다. ‘재미 삼아’ 휘두른 칼에 22세 아들을 잃고, 그 진범에게 법의 심판을 내리기까지 시간은 늪과 같았다. 범인을 잘못 짚은 첫 기소, 진범을 해외로 도주하게 만든 무관심 속에서, 남겨진 부모의 삶은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았다.” 18년 9개월 26일을 기다린 끝에 검찰과 법원은 늦으나마 엄중한 심판을 했다. 1997년 발생한 ‘이태원 살인사건’의 진범이 미국에서 16년 만에 송환된 아더 존 패터슨(37)이라고 1심 법원은 분명히 밝히고 법정 최고형을 내렸다. 70대 노모는 “(유죄가) 안될 줄 알았는데 국민과 언론,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 감독님 등이 다 도와줘서 고맙게 (뜻이) 이뤄졌습니다”라며 울음을 삼켰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 심규홍)는 29일 패터슨에게 “생면부지의 청년에게 저지른 끔찍한 범행으로 피해자는 젊은 나이에 존엄과 행복, 희로애락을 누릴 권리를 전면 박탈 당했고, 가족들은 사랑하는 아들을, 남동생을 잃었다”며 “단 한번도 반성 없이 모든 책임을 공범에게 전가해왔다”며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유족이 약 19년 앓아온 한과 고통을 고려하면 무기징역형을 선고해야 한다면서도 현행법상 최고형인 20년형을 내린다는 게 재판부의 설명이다. 범행 당시 패터슨이 만 17세로 미성년자여서 우리나라 소년법을 적용(최고 15년) 받는데, 살인 혐의라 특정강력범죄처벌법상 20년까지 형을 올릴 수 있다.

피해자 조중필씨의 어머니 이복수(74)씨는 재판장이 사건 후 유가족들의 비참함을 언급하자 상기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징역 20년.” 이씨는 멍하니 재판부를 보다가 이내 입을 다물었다. 선고 뒤 그는 “판결이 법대로 나와서 우리 마음이 편하고 시원하다”고 19년 동안 응어리 맺힌 말을 뱉었다. 그러나 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물었을 땐 잠시 말문이 막혔다. “미국으로 도망 간 살인범 잡아와서 20년 선고를 내렸으니 중필이가 마음 놓을 것 같아요. 억울함이 풀리나 생각할 거에요.” 패터슨을 송환하기 위해 4년 넘게 탄원서를 모으고, 사립탐정까지 고용했던 부모였다. 출국정지를 연장하지 않아 진범의 도주를 방치한 검찰에 분노했다는 표현은 부족하기만 했다. 이씨는 북받친 듯 말을 이었다. “이 좋은 세상 살지도 못하고 갔으니…. 너무 억울해. 중필이는 진짜 모범생이었는데.”

노모는 여전히 웃지 못했다. “지금 속은 시원한데 앞으로 지켜봐야죠. (애초 범인으로 기소됐던 에드워드 리가 1998년)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돼서 무죄가 됐으니까.” 이날 리(37)가 공범으로 인정되고도 처벌을 면한 데 대해 이씨는 “같이 벌을 줘야 하는데 안타깝고 속상하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현장에 패터슨과 같이 있었던 리를 “공범”이라고 판단했지만 리는 이미 무죄 확정선고를 받아 재차 처벌이 불가능하다. 재판부는 “리는 장난으로 패터슨에게 범행을 부추겼다지만 패터슨이 수차례 흉기로 공격해도 말리지 않고 아무런 구호조치도 안 했으며 되레 친구들에게 과시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지적했다.

패터슨은 1997년 4월 3일 밤 10시쯤 서울 용산구 이태원 햄버거가게 화장실에서 조중필씨를 흉기로 9차례나 무자비하게 찔러 잔혹하게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검찰이 출국정지를 연장하지 않은 틈을 타 1999년 8월 미국으로 도주했다가 지난해 9월 16년 만에 송환됐다.

손현성기자 hshs@hankookilbo.com

윤주영기자 roz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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