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무리 단계서 수정ㆍ보완에 한계… 정부 입맛대로 편찬 가능성 커져
제작기간도 검ㆍ인정의 절반 수준… 11월까지 완료, 졸속 불 보듯
이영 교육부 차관. 한국일보 자료사진

27일 이영 교육부 차관이 국정 역사교과서 편찬준거를 공개하지 않고 집필하고 있다고 언급하면서 ‘밀실집필’에 대한 비판이 다시 거세질 전망이다. 제작 막바지 단계인 현장적용본을 국민들에게 공개하겠다는 이 차관의 발언은 사실상 비공개로 교과서를 집필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학교현장과 역사학계의 반발과 혼란이 클 것으로 보인다.

편찬준거는 교과서 집필진이 따라야 할 집필원칙으로 교과서에 언급할 핵심 용어와 서술방향을 언급하고 있다. 예를들면 과거 검정교과서 체제에서 ‘4ㆍ19혁명으로부터 오늘날까지 5ㆍ16군사정변, 유신체제의 성립 등 정치변동과 4·19 혁명, 5·18 민주화 운동, 6월 민주항쟁 등 민주화 운동의 주요흐름을 설명한다’는 기준을 제시해 집필자들이 이러한 내용을 교과서에 담도록 하고 있다. 세부적인 내용은 교과서마다 다를 수 있지만 1948년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서술할 것인가, 건국으로 서술할 것인가와 같은 역사서술 쟁점은 결국 편찬준거에서 가늠할 수 있게 된다.

때문에 역사학계는 역사교과서 편찬준거가 공개되지 않거나 공개되더라도 너무 늦을 경우 교과서 집필의 주요 쟁점에 대해 사실상 토론하고 의견을 수렴할 기회가 차단되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도면회 대전대 사학과 교수는 “집필기준을 공개할 경우 사회적 반발과 혼란이 예상되니 귀를 틀어막고 쓰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깜깜이 집필로 인해 정부의 입맛에 맞는 교과서가 탄생될 것이라는 역사학계의 우려가 현실화될 가능성도 높아졌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지난해 11월 역사교과서 국정화 확정고시 당시 “국내 역사학자의 99%가 좌파”라고 언급하는 등 정부 고위관계자들은 색깔론으로 역사학계를 재단했다. 정부는 지난해 9월 정부가 ‘2015개정교육과정’을 통해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라는 표현을 ‘대한민국 수립’으로 바꾸기로 결정해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보수세력의 친일행적을 감추려는 의도라는 비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준식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은 “‘현 교과서가 경제발전을 반(反)노동자적으로 묘사하는 등 반기업 정서를 유발하고 있다’는 대통령의 발언을 고려하면 현대사에서 기업인의 공과를 강조하고 노동자 서술 비중은 줄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이영 차관이 이날 서술 방향에 대해 “헌법 가치에 충실하고 북한의 현황에 대해 학생들이 알 수 있게 해 대한민국에 자긍심을 갖도록 하는 것”이라고 밝혔는데 한국전쟁 당시 북한의 대남도발에 대한 설명을 강화하고 주체사상, 인권탄압의 부작용에 대한 서술이 늘 것으로 전망된다.

졸속 제작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국정화 확정고시를 발표하며 올해 11월까지 집필을 완료한 뒤 내년 1월 학교현장 검토 및 수정, 2월 현장 배포작업을 진행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통상 제작에 2년이 소요되는 검ㆍ인정교과서와 달리 그 기간을 절반으로 줄인 만큼, 철저한 공개 검증이 중요한 셈이지만, 이영 차관이 “현장 적용본에서 국민이 내용을 보고 확인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밝힘에 따라 대국민 공개는 집필이 마무리되는 11월 말쯤이나 이뤄질 전망이다. 애초 교육부는 촉박한 제작 일정을 감안해 초안이 완성되는 즉시 온라인에 공개해 검증을 받겠다고 밝혔었다. 하지만 연말에나 교과서 초안이 공개될 것으로 보이고 교과서가 보급되기 직전까지 학계 논쟁이 거셀 것으로 보인다. 이영호 인하대 사학과 교수는 “역사는 해석의 차이로 논란이 불가피한데 정부는 국민과의 약속을 어기고 있다”며 “학계의 충분한 토론과 동의를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김현수기자 ddackue@hankookilbo.com

김민정기자 fac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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