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무명 가수 이애란의 노래 ‘백세 인생’의 가사는 “육십 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아직은 젊어서 못 간다고 전해라”라는 틀로 되풀이 된다. 죽음과 관련된 오래된 문화적 세계관을 놓고서 말한다면, 여기서 데리러 오는 사람은 틀림없이 저승사자일 것이다. 이 노래의 시적 화자는 모든 인간에게 있어서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죽음을 여러 연령대에 걸쳐서 거부하고 있는 것인데, 다만 특이한 것은 시적 화자가 저승사자에게 대놓고 직접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제3자를 통해 그 거부 의사를 간접적으로 전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2015년 하반기의 최대 유행어라고 해야 할 ‘전해라’는 이렇게 ‘거부’ 의사를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화법으로서 큰 인기를 모았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라)고 (전)하세요”라든가 “(라)고 (전)해 주세요” 등과 같은 표현을 쓴다. 이에 반해서, 이 노래는 반말투 명령형인 “전해라”를 쓰고 있다. 한국의 일상 언어감각에서 ‘전하라’의 반말투 명령은 군대나 성경에서만 쓰인다.

어떤 점에서 ‘전해라’는 ‘너나 잘하세요’라든가 ‘처드세요’와 비슷하다. 이 ‘전해라’ 화법은 무시무시한 저승사자에게 마치 직접 반말을 하는 듯한 효과를 낳는다. 이런 효과는, 이 ‘전해라’가 많은 사람들에 의해 패러디되면서 “팀장님께 오늘 회식 못 간다고 전해라” “사장님께 주말 등산 못 간다고 전해라” “김장날 시댁에 못 간다고 전해라” “학교짱에게 빵셔틀 못 간다고 전해라” 등으로 변형되어 쓰인 데서도 잘 알 수 있다.

노래의 저승사자에 상응하는 이가 갑질이나 꼰대질하는 사람일수록, 즉 패러디되는 권력이 크면 클수록 이 화법적 패러디의 풍자 효과도 더 크다. 그러니까 ‘전해라’는 최근 두어 달 사이에 거부 의사의 간접화법으로서, 결국 화법의 코스프레로서 유행한 셈인데, 힘 있는 사람에게 직접적으로는 표현하기 힘든 것을 에둘러서 동시에 풍자적으로 표현하는 의사 전달의 복음이 되었던 것이다. ‘전해라’는 범용성과 편리성이 있을뿐더러 전투력까지도 갖춘 표현의 아이템 노릇을 했다.

노래 ‘백세 인생’ 자체는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모았는데, 중장년층 및 노년층에게는 ‘백 살까지 살아보자’는 취지에서, 젊은층에게는 짤방 자체의 우스꽝스러움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전해라’가 젊은 층에게 유행하게 된 최초의 계기는 노래 동영상의 일부를 사람들이 짤방이나 움짤 이미지로 만들고 거기에 여러 가지로 패러디한 ‘전해라’를 자막으로 넣어 유포시킨 것이다.

짤방이란 ‘짤림 방지’의 준말이고 ‘움짤’은 움직이는 짤방의 줄임말이다. 과거 어느 인터넷 게시판에서 글을 올릴 때는 반드시 이미지를 첨부해야만 했기 때문에 생긴 말이다. 글이 잘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첨부했던 이미지 중에는 글 내용과 상관이 없는 것도 많았고 심지어 일부러 그러한 이미지를 골라 붙이기도 했다.

이애란 ‘백세 인생’의 유행은 1993년 신신애의 ‘세상은 요지경’이나 2000년 신바람 이박사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신신애 때에는 아직 초고속 인터넷이 보급되기 전이었고, 이박사 때에는 디카나 포토샵에 의한 짤방 이미지 사용이 일반적이지는 않았다. 캐릭터 호빵맨을 위아래 방향에서 타원형으로 길게 늘인 듯한 얼굴의 이애란이 미니 스커트를 입고 묘한 표정과 진지한 톤으로 부르는 뽕짝 풍의 노래 ‘백세 인생’은 젊은 층의 인터넷 문화와 만나면서 큰 덕을 보았다.

‘전해라’의 범용성과 편리성은 누구든지 어떤 상황에서든지 쉽게 활용할 수 있다는 것에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배신의 정치는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이 심판해 주셔야”라고 말한 바 있다. 그 말은 유행하는 방식의 자유간접 화법으로는 다음과 같이 표현된다: “X는 배신자이니 선거에서 떨어뜨리라고 전해라”, 또 “진실한 사람들만이 선택받을 수 있도록 해주시길”은 “Y는 친박이니 선거에서 뽑으라고 전해라”로.

마찬가지로 정치적 반대편에서 ‘전해라’를 사용할 수도 있다: “교과서 국정화 안 된다고 전해라” “노동개혁은 사기질이니 재벌개혁부터 하라고 전해라” “위안부 관련 한일간 합의는 야합이니 인정 못한다고 전해라”. 참 쉽쥬?

이재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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