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미국 대학가에 인종차별 문제가 새롭게 등장하고 있다. 미주리대학에서 시작된 논쟁이 다른 대학교로 번지고 있는 것이다. 그 중 눈에 띄는 것은 프린스턴대학의 윌슨 대통령에 관한 논쟁이다. 이 대학의 흑인학생회는 윌슨 대통령이 극심한 인종차별주의자였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딴 국제대학원이나 기숙사에서 이름을 삭제할 것과 학생식당에 걸린 그의 벽화 등을 철거하라는 주장을 펼치면서 32시간 총장실을 점거하였다. 학교 당국이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한 토론을 할 것을 약속함으로써 겉으로는 일단 사태가 진정된 듯 하지만 이를 둘러싼 미국 내의 논쟁이 뜨겁다.

특히 뉴욕타임스가 사설에서 학생들의 입장을 지지하고 이 신문에 윌슨 대통령의 인종차별 정책으로 피해를 본 후손의 글이 실리면서 파장이 크게 확대되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윌슨 대통령이 단순히 심정적인 흑백분리론자가 아니라 연방정부에서 흑인들을 배제하는 적극적 인종차별주의자였다는 것이다. 윌슨은 “인종차별이 흑인에게 수치가 아니라 혜택” 이라는 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차별정책으로 당시 연방정부에 임용된 다수의 흑인 사무직 직원들이 좌천, 강등 등으로 경제적으로 몰락하는 차별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를 발단으로 미국의 보수, 진보 언론과 단체는 물론 일반 시민들이 가세하여 다양한 의견을 내놓고 있다. 이들은 대체로 3가지 정도로 유형화할 수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윌슨의 이름을 학교에서 제외해야 된다는 주장이다. 국제연맹 창설 등 국제평화주의자로서 그의 공헌을 인정하면서도 이것이 그의 의도적인 인종차별 정책과 태도를 합리화할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일부 사람들은 지금까지 이런 사실을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데 대해 비판적이었다. 백보 양보하여 윌슨의 행적을 기린다면 공적비 설립이 그 대안이라는 주장이다.

이와 정반대로 윌슨의 이름을 지워서는 안 된다는 견해가 있다. 이는 다시 윌슨의 국내외 공적을 균형 있게 판단하고 그가 살았던 시대정신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과 비록 그가 인종차별주의자였다는 점은 문제가 있으나 단순히 그의 이름을 삭제하기보다 미래 역사의 살아 있는 교육장으로서 활용하기 위해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나뉘어진다.

제3의 견해는 윌슨의 이름을 제외할지 말지 여부보다는 이번 논쟁을 전반적으로 어떻게 접근해야 할 것인가에 주목하고 있다. 논쟁을 회피하기보다 직시하고 인간과 사회의 복합성을 이해할 것을 촉구하는 것이다. 이들은 특히 역사 평가에서 흑백의 이분법을 배격하고 역사를 직선적 발전으로 바라보는 것을 경계한다. 불행한 역사라도 미국 역사의 한 부분이며 향후 시간을 가지고 역사를 더 깊이 이해해가는 가운데서 해결해 나갈 것을 주장한다. 이번 논쟁이 어떻게 끝날지는 모르지만 전체적으로는 윌슨의 이름을 삭제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여론이 강한 것 같다.

미국 내 역사 평가에 대한 논쟁이 던져주는 가장 큰 교훈은 역사적 사실이란 그 해석이 다를 수는 있어도 사실 자체를 숨길 수는 없다는 것 아닌가 하는 것이다. 미국 시민들에게 숨겨졌던 역사적 사실이 윌슨이 대통령을 지내고 100여 년이 지난 오늘날 새롭게 등장했다는 것이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역사 해석은 다양할 수 밖에 없고 다양한 견해 중 어떤 것이 힘을 가질 것인가는 사회가 판단할 몫이라는 점이다.

또한 이번 미국 사례는 극단적인 역사 해석들이 공존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역사와 인간이란 복잡성을 가진 것이라는 이해에 바탕한 균형적 해석이 힘을 얻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미국 한 논객의 이런 글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반대되는 견해를 포용하는 능력이야말로 성숙한 인간의 징표이다. 우리는 ‘회색’을 이해하면서 성장한다. 흑백의 논리는 미성숙의 표시이며 세상을 모르는 세계관의 표현이다.”

한국 사회가 언제 이런 수준에 이를지 모르겠다. 다만 중요한 것은 미국 사회가 인종차별에 대해 지속적으로 경각심을 갖고 정책적ㆍ제도적 배려를 한 결과, 어느 정도 약자의 설움이 해결되었기에 이나마 가능한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하용출 미국 워싱턴대 잭슨스쿨 한국학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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