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조금씩 추워진다. 겨울 냄새가 느껴진다. 찬 대기 속 피어나는 하얀 입김처럼 메마른 쓸쓸함 속 애틋한 그리움의 냄새다. 쓸쓸한 그리움은 어린 시절 시골에서 보낸 겨울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문풍지를 흔드는 매서운 북서풍, 꽁꽁 얼어붙어 미끄러운 안마당 우물가, 입춘이 가까워야 녹기 시작하는 뒤뜰 눈 더미. 친구들과 고드름으로 칼싸움 놀이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시린 두 손을 아랫목에 깔려 있는 요 안에 넣어 녹여주던 어머니 모습이 부지불식간 떠오르는 계절이다.

어릴 적 시골 생활이 안겨준 선물의 하나는 계절의 변화에 대한 감수성이다. 이 감수성은 기후 변화와 생태학에 학문적 관심을 갖게 했다. 최근 기후 변화의 미래에 대해선 낙관론과 비관론이 교차한다. 일각에선 지구 온난화의 위기가 과장됐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온난화를 더 이상 이대로 놓아둘 수 없는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은 이제 부정하기 어려운 과학적 사실이다. 분명한 것은, 미국의 환경전문기자 다이앤 듀마노스키의 주장처럼 지구의 역사에서 유난히 길고 평화로웠던 지난 1만 1,700년 간빙기의 마지막에, 그의 책 제목처럼 ‘긴 여름의 끝’에 우리 인류가 위태롭게 서 있다는 점이다.

기후 변화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는, 영국의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의 주장처럼 자연과학의 문제인 동시에 사회과학의 과제다. 기후 변화를 방치하면 극한 가뭄과 홍수, 생물종의 빠른 감소 등 지구 전체가 심각한 환경 위기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기후 변화 대책의 중요성을 인지하면서도 정책의 우선 순위에 밀려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경제 성장에 전력투구하는 개발도상국의 경우 그 대책은 부차적인 의미를 갖기 마련이다. 지구적 차원에서 체계적인 방안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인류는 영국의 대기화학자 제임스 러브록이 말한 생명의 지구인 ‘가이아의 복수’를 맞이하게 될 가능성이 작지 않다.

기후 변화 대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구적 거버넌스의 구축이다. 구체적으로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서구 사회와 비서구 사회 간의 합의를 도출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실천할 거버넌스를 제도화해야 한다. 현재 프랑스 파리에서 진행되는 신 기후체제 수립을 위한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가 주목 받는 이유다. 이 총회는 2020년까지 유효한 ‘교토 의정서’를 대체할 신 기후체제 협약을 이끌어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다음 주 11일까지 이어지는 총회에서 ‘파리 의정서’를 도출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온실가스 감축의 중요성과 이를 위한 합리적 재정 분담에는 모두 동의하지만 누가, 어느 정도의 책임을 질 것인가에 대해선 나라마다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현재 각 나라들은 소득 수준에 따라 크게 선진국 그룹과 개도국 그룹, 그리고 우리나라가 포함된 환경건전성그룹(EIG) 등으로 나뉘어 협의하고 있다. 선진국들은 모든 국가가 포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을 제시하는 반면, 개도국들은 지구 온난화의 일차적인 원인이 서구 사회의 산업화에 있는 만큼 선진국들이 주도적인 책임을 떠안아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한다.

우리나라는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에서 중재자의 역할을 자임하고 있지만 평가는 엇갈린다. 한편에선 우리 정부가 내놓은 온실가스 배출 전망치(BAU) 대비 37%의 감축 목표와 재생 에너지로의 전환 정책이 너무 소극적이라는 비판이 있다면, 다른 한편에선 이 감축 목표가 산업계에 과도한 부담을 안겨준다는 반론도 있다. 주목할 것은 지구적 차원에서 화석 연료 시대가 저물어가고 재생 에너지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역시 태양광ㆍ태양열ㆍ풍력ㆍ수력ㆍ조력ㆍ지열ㆍ바이오에너지 등의 재생에너지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한 셈이다.

지구는 아름다운 행성이지만, 동시에 위험한 행성이다. 지구 온난화를 되돌릴 순 없지만, 우리 인류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이에 적응하면서 살아갈 순 있다. 기후 변화에 대한 올바른 대책을 마련하는 것은 다음 세대를 위한 지금 세대의 당연한 의무다. 지속가능한 지구를 위한 새로운 합의를 소망한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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