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에는 ‘과거의 오늘’이라는 기능이 있다. 작년, 재작년, 그 이전 오늘 날짜에 자신이 올린 글이나 사진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기능이다.

최근 4년 전 올린 글을 보고 얼굴이 확 달아오르는 걸 느꼈다. 2011년 종합편성채널(종편) 출범을 앞두고 올린 짧은 코멘트였다. “뉴미디어 시대에 케이블 방송 채널에 거금을 투자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 게다가 경기도 나쁜데 4개 사업자가 경쟁하면서 과연 생존할 수는 있을까.” 세상에, 지금 이렇게 잘 나가고 있는 종편에 대해 이런 부정적 전망을 했다니. 부끄럽기 이를 데 없었다.

오는 12월 1일이면 종편이 출범한 지 4년이 된다. 조금 다른 길을 선택한 JTBC를 제외하면, 그 동안 3개의 종편 채널은 우리나라 미디어업계에 네 가지 파괴적 혁신을 가져왔다.

첫째, 시청률을 위해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출연자를 섭외하는 혁신이다. 가수 장윤정의 가족이 장씨를 비난하자 채널A는 가족들의 주장을 여과 없이 내보낸 후 “장윤정씨 억울하면 나오세요”라고 말했다. MBN은 최근 강용석 전 의원과 불륜 의혹이 일었던 블로거를 시사프로그램에 출연시켰다. ‘모든 분야 전문가’인 패널들은 채널을 가리지 않고 겹치기 출연을 한다.

둘째, 단독 보도의 혁신이다. [긴급]“(김무성)딸, 32년 동안 한번도 속 썩인 적 없어” [단독]“유대균, 소심한 목소리로 뼈 없는 치킨 주문” [단독]유대균“배달음식 시킨 적 없다”. 모두 인터넷에서 숱한 화제를 불러모은 혁신적 단독 기사다. 성완종씨가 여당 의원들의 비리를 폭로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자 성완종과 이완구의 ‘이름 궁합’을 내보낸 것도 세계 어느 언론사도 생각 못한 혁신적 발상이다.

셋째, 북한 관련 보도 혁신이다. 종편에는 하루 종일 북한과 김정은 이야기가 나온다. ‘형광등 100개를 켠 듯한 아우라’와 ‘겨울왕국 엘사와의 공통점’까지 갖고 있는 대통령보다 단골 메뉴인 것 같다. 지난달 북한 인민군 열병식은 하루 종일 생중계했다. 그런데도 그다지 전문성을 인정받는 것 같지는 않다. 잔인하게 숙청당했다던 북한 고위직이 두어 달 후 멀쩡하게 등장해도 정정보도 하지 않는 식이 반복되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넷째, 수익모델의 혁신이다. 몸에 좋은 식품 얘기에 쉽게 혹하는 노년층을 대상으로 한 건강식품 홍보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협찬으로 제작되는 이 프로그램에선 이른바 ‘쇼닥터’라 불리는 한의사, 의사들을 동원해 특정 원료의 효능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방송이 끝날 때쯤 인접 홈쇼핑 채널에서 해당 원료를 사용한 건강기능식품을 파는 일이 일어난다.

네 가지 혁신은 모두 60~70대라는 열혈 시청자 층을 발굴함으로써 가능했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60대 시청자는 70% 가량이 하루 1시간 이상 TV를 시청하며, 이중 약 15%는 4시간 이상 시청한다. 기껏해야 출퇴근 시간에 스마트폰으로 잠깐씩 보거나 시간 날 때 ‘다시 보기’로 보는 젊은 층과는 차원이 다른 시청자 층이다.

물론 그런 날이 영원히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각종 선거에서 상대적으로 진보적 선택을 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현재의 30, 40대가 나이를 먹어 50, 60대가 됐을 때 현재와 같은 종편의 열혈 시청자로 돌변할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 하지만 그전까지 우리는 브레이크 없는 막말 방송의 행진을 계속 지켜봐야 하는 걸까.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에게 희망을 걸어본다. 김 대표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주장하면서 “김일성 사진이 세 번 이상 등장하는 교과서는 없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 논리로 생각한다면 하루 종일 북한 열병식을 생중계한 종편들은 재허가를 해주지 말아야 마땅하다.

디지털뉴스부 기자 parisc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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