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수도 파리는 우리에게 어떤 이미지인가? 우선 먼저 떠오르는 것은 유럽 문화의 중심으로서 파리가 가진 세련됨과 우아함일 것이다. 고딕, 바로크, 로코코 양식 등으로 치장한 건축물들, 루브르를 비롯한 주요 박물관들 소장의 예술품들과 도시 곳곳에 남아있는 그 창작자들의 발자취, 세계 패션을 선도하는 몽테뉴와 그르넬 거리, 그리고 호화로움의 대명사 샹젤리제 거리까지.

개발독재시대 군사문화와 경제성장 제일주의에 익숙해 있던 과거의 우리들에게 파리는 자유로운 느낌의 그 세련됨과 우아함으로 돋보였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해외여행 자유화가 시행되었던 1980년대 말 이후, 파리가 한국 사람들이 가장 선망하는 여행지가 되었던 것은 자연스런 일이었다. 같은 의미라도 불어 발음은 왠지 더 로맨틱하게 들렸던 것은 필자만의 경험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파리가 가진 이미지의 전부는 아니다. 적어도 1960~80년대 민주화 투쟁 세대들에게 파리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 느낌은 파리가 억압적 권력에 대항한 민중 궐기의 주 무대였다는 역사적 사실에서 생겨난 것이다. 프랑스 대혁명을 만든 1789년 파리 시민들의 바스티유 감옥 습격에서 시작해, 불통의 왕 샤를 10세를 권좌에서 끌어내렸던 1830년 7월 시위, 대문호 투르게네프가 그의 대표작 ‘루진’의 마지막 장면에서 묘사했던 1848년 바리케이드 봉기들, 그리고 1871년 파리코뮌 운동까지 파리는 단지 ‘어엿비’ 여겨지는 객체일 뿐이던 백성, 즉 민(subject)을 정치 권리 행사의 주체인 국민(nation)으로 바꾼 세계 정치의 수도였다. 20세기에도 그 전통은 이어져서 1968년 5월에는 수많은 대학생들이 파리 시내 도로 포장용 돌을 파내 바리케이드를 쳤고, 이는 곧 근대 역사 최대의 노동자 파업과 결합되었다. 이처럼 파리는 민중 궐기를 상징해 온 공간이기도 하다.

이런 두 가지 사뭇 다른 이미지를 가진 파리가 이제 또 하나의 이미지를 얻게 되었다. 지난 주 금요일 밤 발생했던 비극은 이 세계적 도시에 참혹한 테러 피해자라는 실로 불행한 이미지를 심어 놓았다. 이제 우리는 파리를 생각할 때마다 테러라는 단어를 먼저 떠올리게 될 지도 모른다. 9ㆍ11 이후 ‘최악’의 테러라는 일부 언론의 표현은 정확하지는 않았지만(그 기간 동안 더 큰 테러 피해들도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 피해가 아시아나 유럽의 변방에서 일어났기에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았을 뿐이다), 평범한 시민들에 대한 사실상의 무차별 테러가 야기한 충격의 강도를 잘 드러내주었다.

테러리즘이 서양 정치에 본격적인 영향을 미쳤던 것은 19세기 후반이었다. 당시 중동부 유럽을 중심으로 성행(?)했던 테러는 현재의 그것과는 달리 그 대상이 분명했다. 이를 주도하던 무정부주의자들은 계급 지배를 영속화시키는 기제가 국가라는 믿음 아래, 그 해체를 외쳤다. 러시아의 브나로드 운동이 보여주듯, 초기에 그들은 민중 계몽을 통한 국가 기구 타파의 가능성을 믿는 평화주의자들이었으나, 곧 자국의 ‘낮은’ 민도(民度)에 좌절을 거듭하며 결국에는 국가를 운영하는 관료나 공직자들에 대한 직접 테러로 전략을 바꾸게 되었다. 그것은 이들의 물리적 제거가 국가 조직 해체로 나아가는 디딤돌일 수 있다는 무정부주의자들만의 절망 섞인 기대에서였다.

표적이 명확했던 과거의 ‘테러범’들과는 달리 20세기 후반 이후의 이슬람 급진주의자들은 무차별 테러를 자행한다. 그들은 19세기 제국주의 시대 이래로 서양 기독교 문명이 이슬람 문명을 지배 및 모욕해왔다고 믿으면서, 이를 전 지구에 선전하는 동시에 서양 세계에 대한 직접적 심판과 보복을 가하려 한다. 계급 지배 종식과 국가 조직 해체라는 구체적 목표를 가졌던 19세기 테러리즘과 달리 오늘날의 그것은 문명 간 갈등의 양상이기에 그 대상은 불행히도 해당 문명에 속한 불특정 다수가 되어버린다. 평화의 가르침을 근본으로 하는 이슬람교에서 테러리즘이 등장한 것은 역시 평화롭고 목가적 세상을 꿈꾸던 무정부주의에서 그것이 발생했던 것처럼 역사가 만들어낸 슬픈 현실이다.

파리가 새롭게 얻게 된 이 불행한 이미지는 국내 정치에도 의도하지 않은 영향을 준 것 같다. 파리 테러 소식은 지난 토요일, 주최 측 추산으로 무려 10만 명 이상의 인파가 노동법, 역사교과서 국정화, 청년 실업, 빈곤 등의 문제를 부르짖었던 광화문 민중 궐기를 언론 지면의 한편 구석으로 밀어내었다. 여러 방송은 몇몇 소수의 시위대가 경찰과 대치하는 모습을 단면적으로만 보여주는 카메라 구도를 택하기도 했다. 현 정권을 향한 어찌 보면 가장 크나큰 외침이 하나의 지나가는 에피소드로만 느껴질 정도이다. 파리의 새로운 이미지는 그간 파리가 간직해온 민중 궐기의 수도라는 이미지를 흐릿하게 만들지도 모르겠다. 마치 그 테러 소식에 국내의 현안들이 묻힌 것처럼 말이다. 새로운 파리가 파리의 전통을 덮은 셈이다.

노경덕 광주과학기술원 교수ㆍ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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