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반’이라는 말은 조금 이상한 말입니다. 절반이 넘어서부터는 목표점이 가까워지니까 안심이 됩니다. 하지만 종점이 좀더 가까워진 느낌에 초초해지기도 하지요. 제대로 시작도 못했는데 끝낼 일만 남았다는 생각을 하면 어이가 없어지기도 합니다.

안심의 단맛 위에 불안의 쓴맛이 점점 더 넓게 퍼지는 이상한 단어가 바로 ‘절반’입니다. 생의 절반은 어디쯤이죠? “이렇게 살 수도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온다”고 최승자 시인이 말한 서른 살일까요? 삼십 대의 마지막 한 해를 보내는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지도 몰라요. “무슨 소리야, 평균 수명 81세. 나는 아직 절반을 넘어서진 않았다고!”

생의 절반이 지났다고 느끼는 순간은 저마다 다르지만, 시인은 그 기분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노란 배와 야생 장미 가지가 땅의 경계를 넘어 물 위에 드리워지는 기분. 청춘의 백조가 꿈에 취해 있다가 물 속에 길고 가는 흰 목을 담그며 이제 막 맑은 한기를 느끼는 기분.

거기까진 참 아름다운 기분인데, 절반의 순간이 지나면 꽃과 햇살을 어디서 구할까요? 곧바로 가난한 마음이 들 거예요. 깃발들이 바람에 어쩔 줄 모르고 펄럭이는 소리가 아직은 청명합니다. 가을이 벌써 절반이나 지나갔어요.

진은영 시인ㆍ한국상담대학원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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