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란 말의 의미에는 크게 두 계열이 있다. 하나는 과거에 일어난 사건 혹은 과거에 사실로서 존재했던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것들에 대한 지적 탐구 및 그 탐구의 결과로서 기록된 것이다. 후자는 그리스어 ‘historia’에서 유래하는 영어 ‘history’에 상응하고, 전자는 독일어 ‘Geschichte’에 상응한다. 독일어 동사 ‘geschehen’은 생기다, 일어나다, 발생하다, 벌어지다 라는 뜻이다.

기원전 5세기 헤로도토스의 책 제목 ‘역사(histories apodexis)’는 영어로 직역한다면 ‘history on display’가 된다. 헤로도토스의 시절에 historia란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탐구를 뜻했다. 어원적으로 ‘탐구하다’ ‘증인’ ‘알다’ 등에서 파생된 그리스어 historia는 탐구 자체는 물론이고 또 그 결과로서 얻은 지식이나 저작을 뜻하기도 했다. apodexis는 드러나지 않았던 것을 공개적으로 보여주거나 해명하거나 전시하는 것을 뜻하는 동사에서 나온 명사다.

역사의 ‘역(歷)’은 지나간 것, 경과한 것을 뜻하며, ‘사(史)’는 그것을 기록하는 일을 맡은 관리를 뜻했다. 하나의 단어로서 ‘역사’가 처음 등장하는 것은 역사책 ‘삼국지’에 대해서 배송지(裴松之)가 달았던 주에서라고 알려져 있다.

역(歷)의 갑골문자는 형태상 민엄호(?)가 없는 채로, 나무 두 개와 발(止)로 이루어져 있다. 좀 더 나중에 나무가 벼(禾)로 바뀐 것인데, 그것이 단지 적는 과정에서의 오기인지 아니면 의미상 서로 상통해서 그런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고대 문명에서 나무와 벼는 둘 다 세월의 흐름을 나타내는 상징적 기능을 하기도 했을 터이기 때문이다.

형태상으로만 본다면 역(歷)의 최초 의미는 울창한 숲을 뚫고 지나간다는 것이었고, 이러한 공간적 경과의 의미에 시간적 경과의 의미가 덧붙여진 것으로 이해된다. 시간적 경과의 의미는 달력이나 역법에서의 역(曆)자를 낳았다. 사마천의 ‘사기’에서 역(歷)과 역(曆)은 서로 통하는 글자였다고 하며, 현대 중국어 간자체 역(?)은 이 두 글자 모두를 대신한다.

사(史)의 갑골문자는 ‘중(中)’에 ‘손(又)’이 붙어 있는 형태를 하고 있다. 일본의 저명한 한자학자 시라카와 시즈카의 해석에 의하면 ‘사(史)’와 ‘중(中)’에 공통적으로 들어 있는 입구 자 모양의 네모는 축문을 담는 그릇이며 세로로 뚫고 있는 막대기 모양은 그 안에 보관되는 기록 도구라고 한다. 물론 시라카와 특유의 이러한 주술적 해석에 대해서 강력한 반론과 논쟁도 없지는 않다.

상식적으로 말해서, 역사란 과거의 주요한 사건에 대한 특정 공동체의 집단적 기억을 기록한 것이다. 1860년대 초 서세동점의 시기 일본에서 간행된 영일사전에 history가 ‘역사 기록’으로 번역된 점도 이것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기록은 망각하지 않기 위해서 하는 것인데, 굳이 뒤집어서 말한다면 공동체가 먼저 있고 기억이나 기록이 나중에 생기는 게 아니라, 집단적 기억이나 기록을 통해서 어떤 공동체가 탄생하고 또 유지된다고 할 수도 있다.

박정희의 딸이라는 경력과 이명박의 후계자라는 이력을 갖는 박근혜 대통령은 지금 자신의 입맛에만 맞는 국정 교과서를 강요하고 있다. 흔히 역사는 두 번 되풀이 된다고 한다. 그 말에 기댄다면, 이명박은 공동체의 땅과 물을 망쳤고 박근혜는 공동체의 기억을 망치려고 하는 셈이 된다. 헤겔과 마르크스의 레토릭을 따르자면, 전자는 비극이고 후자는 희극이다.

역사 탐구와 서술은 선택적 재구성을 전제한다. 그런 만큼 공동체의 집단적 기억을 둘러싸고 여러 세력들 사이에서 정치적 상징 투쟁이 벌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그렇다고 하더라도 역사가 지적 탐구인 한에서는, 성찰과 비판의 다원성을 보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공동체적 기억의 기록에 관해서 국가가 일방적으로 강제 권력을 휘두르는 짓은 바로 이 성찰과 비판의 숨통을 조이는 것이 된다. 한마디로 파쇼다.

이탈리아어 파쇼란 말은 무기 등으로 쓰이는 나무 막대기들을 한데 묶어 세워놓는 관행에서 나왔다. 허, 참, 이제 다시금 그 지겨운 파쇼의 나무들을 뚫고 지나가야만 한다는 말인가.

이재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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