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연의 다시 읽고 싶은 그림책] 7. 장수탕 선녀님

● '장수탕 선녀님' 백희나

선녀 머리와 구슬 귀고리로 치장하고 공들여 화장을 한 할머니가 요구르트에 빨대를 꽂아 쪽 빨아 마시고 있다. 입술은 최대한 오므린 채 눈을 치뜬 것이 황홀경에 빠진 듯하다. 그런데 이 할머니 알몸이다. 그림이 아니라 점토인형을 사진으로 찍어, 풍만한 살집과 주름살이 실감나게 느껴진다. ‘장수탕 선녀님’의 표지다. 그림책의 표지에서 옷을 입지 않은 어른이 단독으로 등장한 것은 처음 봤다. 야하지는 않다. 표지를 열어 후루룩 넘겨보니 대부분의 페이지가 알몸이다. 이 그림책, 신기하다.

예닐곱 살 쯤 된 소녀 덕지는 엄마랑 오래 된 동네 목욕탕에 간다. 덕지는 불가마와 얼음방이 완비된 신식 목욕탕에 가고 싶지만 참는다. 울지 않고 때를 밀면 엄마가 사주시는 요구르트가 덕지의 낙이다. 덕지는 폭포수 벽화와 바위가 있는 냉탕에서 놀다가 이상한 할머니를 만난다. 날개옷을 잃어버려 장수탕에서 지내고 있다는 할머니는 덕지에게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를 들려준다. 선녀 할머니는 냉탕에서 노는 비법을 덕지에게 전수한다. 선녀 할머니가 먹고 싶어하는 요구르트를 드리기 위해 덕지는 꾹 참고 때를 민다. 집에 간 덕지는 감기에 걸려 열이 펄펄 끓는다. 밤에 선녀 할머니가 물수건 대야에서 나타나 덕지의 이마를 어루만진다. 덕지는 상쾌한 아침을 맞는다.

공중 목욕탕 여탕의 일상적 풍경이 정겹다.

공중목욕탕 여탕의 일상적 풍경이 미화 없이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할머니의 살집은 쳐졌고 아줌마의 몸매는 펑퍼짐하며 여자자이의 배는 볼록하다. 대중매체에서 주입하는 ‘잘 가꿔진 몸’의 이미지에 중독된 현대인(아이들도 마찬가지이다)에게 해독제를 준다. 노년 여성의 알몸을 자세히 본 적 없던 딸아이는 처음 선녀 할머니의 알몸을 보았을 땐 민망한 듯 혀를 내밀고 웃었다. 그러나 덕지와 선녀 할머니의 익살스러운 냉탕 놀이를 보며 점점 책에 빠져들었다. 덕지가 눈 딱 감고 때를 미는 장면에선 표정의 비장함과 밀려나온 때의 리얼함 때문에 웃음이 터진다. 그림보다 실감 나지만 야하거나 불편하지 않은 알몸, 점토인형을 연출해 찍은 사진의 덕이다. 작가 백희나는 진짜 목욕탕(속표지에서 ‘계동 중앙탕’과 ‘대흥동 크로바대중사우나’라고 밝혔다)을 배경으로 크기가 상당히 작은 점토 인형을 놓고 그럴듯한 사진을 찍어냈다. “스토리보다 연출이 중요하다”는 백희나의 지론에 무릎을 치게 된다.

선녀 할머니에게 요구르트를 선물하기 위해 꾹 참고 때를 미는 덕지의 표정이 비장하다.

‘구름빵’ ‘달 샤베트’에서도 그랬듯이 백희나는 현대의 서민적인 일상에서 판타지를 자연스럽게 길어낸다. 현실의 세계와 상상의 세계를 스스럼없이 넘나든다. 소아정신과 전문의 서천석은 “어린이들은 상상을 통해 열등감과 상처를 극복하려고 노력한다. 어린이들에게 상상이란 미래를 만들어가는 방법이자 현실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이라고 했다. 엄마가 먼저 때를 밀고 머리를 감고 있는 동안 심심한 덕지는 자신만의 친구, 선녀 할머니와 논다. 덕지는 열이 펄펄 끓어 힘들었던 밤도 상상으로 이겨낸다.

덕지는 폭포 벽화와 바위가 있는 냉탕에서 선녀 할머니를 만난다.

그런데 선녀 할머니는 덕지의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인물일까? 선녀 할머니는 날개옷을 잃어서 늙도록 장수탕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황당한 얘기지만 곱씹을수록 내 어릴 적 한동네 사시던 봉길이 아저씨와 옆 동네의 동굴 할머니가 생각난다.

고래실 봉길이 아저씨는 시골 동네에 한 명씩 있을 법한, 정신이 온전치 못한 분이셨다. 한쪽 다리를 절면서 여름이면 하반신에 아무것도 입지 않고 동네를 돌아다니는 봉길이 아저씨가 무섭고 징그럽기도 했다. 봉길이 아저씨에게 돌을 던지는 꼬마들도 있었지만, 동네 아저씨들은 느티나무 그늘에서 막걸리 판을 벌일 때 봉길이 아저씨를 끼워주곤 했다. 봉길이 아저씨가 정신줄을 놓게 된 사연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봉길이 아저씨는 원래 부잣집 둘째 아들이었는데 형이 재산을 독차지하려고 봉길이 아저씨를 옥상에서 밀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형은 재산을 탕진하고 죽었다고 한다. 어렸을 땐 이 이야기를 믿었다. 그러다가 나중에 “봉길이 아저씨는 부잣집 아들이 아니었고 이야기의 상당 부분이 윤색됐다”는 동네 어르신의 말씀을 듣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일종의 ‘동네 전설’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전설은 정말 힘이 셌다. 봉길이 아저씨를 무섭고 성가신 사람으로 여기던 아이들도 그 이야기를 듣고 나면 연민의 눈으로 봉길이 아저씨를 바라보게 되었다. 봉계 동굴 할머니는 동굴에서 혼자 사셨는데 누더기 옷을 입고 때에 절은 인형을 소중하게 업고 다니셨다. 봉계 어르신들은 동굴 할머니가 젊었을 때 아기가 죽어서 정신줄을 놓게 되었고 남편도 떠나버려 저렇게 되었다고 했다.

선녀 할머니는 장수탕에 자주 오는 정신이 이상한 할머니였는지도 모른다. 날개옷을 잃어버렸다는 진술 너머, 봉길이 아저씨나 동굴 할머니 만큼이나 어떤 사연이 숨어있는 듯하다. 봉길이 아저씨는 재산과 가족을, 동굴 할머니는 아기를 잃고 정신이 이상해졌다. 선녀 할머니가 잃어버렸다는 ‘날개옷’은 무엇이었을까? 어떤 날개 같은 희망을 잃었기에 선녀 할머니는 그리 되었을까? 덕지가 정신이 나간 할머니와 냉탕에서 노는데 엄마는 왜 말리지 않느냐고 의문을 품을 수 있다. 덕지 엄마가 목욕하느라 못 봤을 수도 있고 봤지만 그냥 뒀을 수도 있다. 봉길이 아저씨도 동네 아이들과 놀곤 했고 어른들은 말리지 않았다.

감기에 걸린 덕지에게 장수탕 선녀님이 나타나 이마를 만져준다.

선녀 할머니가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를 들려줄 때 덕지는 다 아는 이야기지만 모르는 척 끝까지 듣는다. 선녀 할머니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준 것이다. 어릴 적의 나는 비극적으로 윤색된 ‘동네 전설’을 듣고서야 봉길이 아저씨를 마음속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덕지는 스스로의 힘으로 선녀 할머니를 포용한다. 덕지가 열이 펄펄 끓는 밤에 선녀 할머니가 나타나 치유해 주는 것은 덕지의 상상이다. 덕지의 상상 속에서 선녀 할머니는 정신이 이상한 할머니가 아닌 진짜 선녀가 된 것이다. 약자를 품게 해 주고 스스로를 성장하게 만드는 것, 상상이 가진 막강한 힘이다.

김소연기자 aur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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