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민당 총재선거에서 무투표 당선이 확정된 아베 신조 총리가 이달 8일 도쿄의 한 호텔에서 지지그룹과 함께 불끈 쥔 주먹을 들어올리고 있다. 도쿄 AP=연합뉴스

국제규범을 따르지 않는 이른바 ‘불량국가(rogue state)’가 북한이라면, 1930, 40년대 일본은 원조 ‘불량국가’였다. 그런 일본이 과거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집단자위권 법제화로 ‘전쟁할 수 있는 나라’가 된 것이다. 패전 후 70년, 그 기다림이 스스로는 충분했다고 생각하지만 아시아를 짓밟던 군국주의 일본의 잔상이 이웃 나라에는 아직 뚜렷하다. 이런 주변의 시선을 외면한 채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은 일본 보수본류의 숙원을 이뤄가고 있다.

다음 수순은 평화헌법 개정이다. 지난해 ‘해석개헌’으로 헌법을 무력화 시켜놓고도 전후 체제 탈피의 마침표를 기대하고 있다. 안보법 강행처리로 불어난 반대여론이 내년 참의원 선거에서 아베 정권의 응징을 벼르고 있다. 하지만 시간이 많이 남아있다. 노회한 아베 정권이 국민시선을 돌리는 건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분노의 감정이 지속되려면 여러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임기 3년이 연장된 아베 총리는 아베노믹스의 새로운 3개 화살(강한 경제, 육아지원, 사회보장)을 내걸며 민생과 경제에 올인하겠다고 했다. 가업이 정치인 그는 대중을 다루는 기술에 숙련된 것 같다. 세 차례의 중ㆍ참의원 선거를 연승한 아베 정권은 매번 두 얼굴을 구사해왔다. 선거에 임할 때는 경제가 최우선이라고 하지만, 선거가 끝나면 특정비밀보호법과 안보법제 같은 인기 없는 정책을 밀어붙이는 식이다. 1960년 ‘안보투쟁’직후 위기에 처한 자민당 지지를 회복시킨 게 이케다 하야토(池田勇人) 내각의 소득배증계획이었다.

한국에서 일본소식을 접하면 당장이라도 아베 정권이 무너질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도쿄 한복판에서 느끼는 실제는 다른 것 같다. 지금의 국민감정은 군사적 자립의 필요성에 대한 의문보다 아베 정권의 일방통행식 행태에 대한 반감이 더 커 보인다. 사회 전체에 깔린 근원적인 우경화 정서를 놓쳐선 안된다. 야권연대로 정치생명을 복원하려는 과거의 거물,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생활당 대표가 ‘보통국가론’의 창시자 격인 점만 봐도 일본 정계에 보수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 짐작할 수 있다.

일본인은 중국과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을 두려워하고 분노하고 있다. 중국이 해양에 설정한 제1, 제2도련선은 일본이 대동아공영권을 내세워 지배한 태평양 영역과 일치한다. 장기침체 20년에 동일본대지진까지 겪은 일본이다. 개인도 의기소침해지면 과거의 영광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우리도 민족정기나 자신감이 필요할 때 1,500년전 고구려 영토를 끄집어내는 것과 비슷하다. 중국의 팽창을 지켜보는 일본인은 불과 70년 전 만주는 물론 태국을 제외한 동남아 전역, 남태평양 괌과 사이판으로부터 호주령 뉴기니까지 자신들의 광대한 영토를 떠올린다.

자민당 젊은 의원들 사이에선 러시아의 영공 침범을 전투기 격추로 대응해야 한다거나, 북한의 일본인 납치를 자위대 무력으로 구출하자는 말이 공공연히 오간다고 한다. 심지어 안보법 위헌논란을 법 규범을 뛰어넘는 ‘고도의 통치행위’라 우기는 분위기도 있다.

폭주하는 일본을 옆에 둔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한국과 중국은 보통국가화 된 일본이 19세기로 돌아갈까 의심한다. 한국과 일본은 전통적으로 제국을 운영한 중국이 무지막지한 패권을 휘두를까 위축되고 있다. 충돌위험이 증가할수록 해결의 장이 중요해진다. 우리가 한미일 아젠다를 중국에 설명하고 중간에서 조정자 역할을 강화시켜 나간다면 스스로 국익을 방어할 수 있다.

김대중 전대통령은 생전에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4대국으로 둘러싸여 잘못하면 과거 조선왕조 때처럼 지배당하고, 잘하면 예쁜 처녀 하나를 두고 네 총각이 프로포즈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 동북아 격변기일수록 기본을 주체적으로 떠올려야 한다.

도쿄=박석원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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