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는 귀하게 얻어진 기회를 적극 활용해 보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다. 방법론을 중심으로 한 작품 이야기를 늘여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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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형(왼쪽)씨와 오태석씨가 대담을 벌이고 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오태석 선생에게는 아래의 질문들을 주섬주섬 늘어놓았다.

-선생님의 작품 중 현실의 무대화란 점에서, 스스로 평가하시기에 가장 성공한 작품이라면 무엇을 꼽으시겠습니까?

= “앞산아 땡겨라 오금아 밀어라”, “천년의 수인(天年의 囚人)”, “DMZ내사랑” 정도겠지요. '앞산아 땡겨라'는 당시 도민이 60만이였는데, 그 중 네명 중 한명이 돌아가셨다고 하는 제주도 4.3 사태 때 외할아버지를 잃은 제자의 이야기를 작품으로 옮긴 겁니다.

'천년의 수인'은 평생 민족의 죄인으로 요리조리 도망치면서 살아온 안두희가 마침내 정의봉이라는 야구 방망이로 타살되는 사건을 소재 삼은 거에요. 그때 문득 나도 안두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질지질 못나게 살아와서 뭔가에 쫓기고 갇히면서...

“내사랑 DMZ”는 DMZ에서 지뢰 밟아 다리 세 개가 된 노루가 많다는 얘기가 단서였지요. 더는 다리 잘리지 않기를 바래는 마음으로, 더는 사람 손 타지 않는 DMZ가 되기를 바래는 마음으로 "내사랑 DMZ"에서는 경의선 경원선 두 철도를 다 지하로 뚫리게 만들었어요. 그런데 얼마뒤 경의선이 지상으로 뚫리는 바람에 희대의 사기극이 되고 말았습니다.

“앞산아 땡겨라” 가 제주도에서 일어난 일이여서 섬사람들에 아픈 심정 조금이라도 덜어주리라 작심하고 제주도 갔어요. 고등학생들 동원했으니 만큼 결코 웃음거리 되지 않게 발음 정확하게 하자고 우리 배우들 참으로 열심히 했지요. 무슨 소리냐 하면 작품이 제주도 사투리로 쓰여졌거든요. 그런데 하이고(아이고), 학생들이 전혀 못알아들어요. 서울 관객들 못알아 듣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학생들은 배우들의 서투른 제주도 사투리 즐겨주기 바랬는데...

사투리는 말에 문풍지 같은 역할을 합니다. 마음과 마음에 틈새를 내고 멍석을 깔아주지요

-한국어 특유의 리듬이 모범적으로 잘 구현된 작품들을 꼽으신다면?

="먼저 '자전거(自轉車)'. 자전거는 뒷바퀴가 밀어서 나아가지요. 이 땅에 어른들 아무 준비도 없이 해방 당하고 그리고 바로 덮친 이데올로기 뒤집어 쓰고 이십년 삼십년 몸 뒤집힌 풍뎅이모냥(마냥) 뱅뱅 헛돌고만 있을 때 다음 세대 어린 처녀는 몸속에 나병 (天刑) 바이러스가 뿔어나고 있어 자고나면 손가락이 쑥 뽑히고 입술이 허물어져 내릴것이라는 환영에 시달리다가 불쑥 자전거 올라타고 페달 밟으니 수십년 꼼작 못하고 세워져있던 자전거 앞으로 내달립니다.

또 '백마강(白馬江) 달밤에' 가 있어요. 배우들도 무대에서 시쳇말을 주고받지만 그게 허구의 세계서 하는 말이라 여니 사람들이 매일 주고받는 말하고는 다르게 마련입니다. 3.4조는 바로 그런 다른 말이 금새 눈에 띄게 잘 들리게 간추려 주는 말의 틀이지요.

그리고 '연지분 있네만 뉠 위해 고이할고'를 꼽고 싶네요. 송강 선생님 '사미인곡'에(의) 한 구절입니다. 많은 사연이 한숨이 그리움이 잘 간추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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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체크해 보셨는지 모르겠으나, 지금껏 각종 교과서에 수록된 작품은 무엇입니까? ‘오태석 공연 대본 전집’의 편찬자들은 선생님의 작품에 과연 정본이 있느냐라는 문제를 심각히 제기했습니다. 그 작품들은 이후 무대에서 선생님의 손에 의해 숱하게 고쳐졌을 텐데, 문자로 고정된 작품과 수정중인 대본의 차이를 선생님 스스로는 어떻게 보십니까?

=체크가 못 됐는데요. '춘풍의 처', '자전거', '태'는 본 것 같네요. 톨스토이나 도스토에프스키 초고를 보면 원고지가 아니고 먹지 같아요. 가필이 많아서. 그런데 소설에서 말은 활자로 고착이 되지요. 연극에서 말은 배우의 숨쉬기에 따라 부단히 변주합니다. 머물러 있으면 죽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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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태석. 목화레퍼토리컴퍼니 제공

-21세기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사건, 세태 등) 중 혹시 작품의 소재로서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계신 것은 있는지요?

=젊은 사람들 얼굴이 많이 밝아지고 자신감이 깃드는 것 같아서 반가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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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는 박근형씨와의 일문일답.

-작품 중 현실의 무대화란 점에서 가장 성공한 작품이라면 무엇을 꼽으시겠습니까?

= 아마도 '청춘예찬'이 아닐런지요. 이작품을 처음 공연한지 15년도 더 지났지만 아직도 그 작품속 청년들의 삶은 암울하고 미래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들의 가족 역시 세상을 걷돌며 마지못해 하루하루를 살고 있을겁니다. 그게 오늘의 현실이지요.

'청춘예찬'이 성공했다는 뜻이 아니라 청춘을 예찬할 그 어떤 청춘들도 이젠 보이지 않는 현실이 서글프단 얘기지요.

-한국의 현실을 온전히 인식하기 위해 평소 어떤 노력을 하십니까? 우리를 가장 정확히 직시하게 하는 공간(소주방, 노래방, 서울역 앞 등등)은 어디라고 보시는지? 그런 데서 작품을 위한 ‘취재’도 하실텐데?

= 특별히 작품을 위해 취재를 다니거나 따로 무얼 공부하는 그런 체질이 아닙니다.

그냥 평소에 길거리 사람들이 주고받는 애기를 듣거나 동료들과 지방 나들이 갔을때 보고 느낀것들 간간히 메모했다가 작품 소재로 씀니다.

살면서 부아 치밀어 오를때 그 분노 잊지 않으면서 말입니다.

-종종 세간을 들끓게 하는 사건들은 작품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끼칩니까?

= 화 나는 일 많지요. 특히 국민 건강 위해 담배값 잔뜩 올렸을 때. 이런 경우 특별히 제가 무대 위에서 할 일 별로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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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형. 극단 골목길 제공

하루빨리 담배 선호하는 대통령 나오길 기도하면서 담배 빡빡 빨아댑니다.

-‘쥐’의 경우 살육, 식인, 근친 상간, 폭력 등 “센” 소재들이 천연덕스런 일상 언어로, 일상의 제스처로 소화되고 있습니다. 파괴된 가족이나 친일 문제 등 “센” 주제를 담은 무대 또한 일상 언어의 옷을 입고 나타나기 십상인데 그 같은 천연덕스러움(혹은 어떤 이들에 의하면 ‘의뭉스러움’)은 전략적 무기인지요?

= 연극이 무게 잡고 관객들한테 훈육 선생님 같으면 지겨워서 누가 극장에 오겠습니까. 관객들이 예술을 몰라서 극장에 오나요.

관객들이 돌아가는 세상사 몰라서 입 다물고 사나요. 그런 관객들 앞에서 그냥 시치미떼고 딴짓해도 그분들이 다 앞뒤 헤아린다고 봅니다.

-간간이, 그러나 강인하게 드러나 온 바, 특정 종교(한국의 기독교 일부)에 대한 비판적 시선은 앞으로 작품에서 어떤 식으로 드러날 것 같습니까?

= 저는 단군할아버지, 예수님, 석가님, 그리고 여러 성인들 다 존경하고 흠모합니다.

오늘날 기독교는 이 땅에서 주류 사회의 여론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현실을 왜곡해서 자기 배만 불리우는 일부 목회자들의 맨 얼굴을 풍자해 보는 것은 재미있습니다. 물론 당사자들은 불편하시겠지만.

성경과 예수님의 말씀이 원래 그거 아닌가요. 사랑하되 세상의 부조리에 맞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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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을 바라지 않는 세력들은 음으로, 양으로 어떤 식으로 존재하고 있다고 보시는지? 통일이란 문제를 무대 안으로 끌어오려면 보다 정교한 장치들이 필요할 텐데요?

= 광화문 광장에 나가서 "통일을 바라지 않는 사람 있습니까, 손들어 보세요?" 하고 물어보면 아마 아무도 손을 들지 않을겁니다.

우문에 우답으로 답해서 죄송합니다. 나머지는 다 아시는 얘기라 생략합니다.

장병욱 편집위원 aj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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