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병욱의 춘풍예찬 (3) 오태석과 박근형, 만나다

노장은 시종 여유로웠다. 때로는 장난기마저 슬쩍 내비쳤다. 그러나 그의 답이 평소 언어 습관의 연장, 유희 정신의 일부라는 사실은 점점 자명해져 갔다. 그러나 한 세대 아래의 연출-극작가는 시종 진지했다. “하늘 같은”(그의 표현을 빌면) 대선배를 앞에 두고 자연히 우러나온 반응이었을 것이다.

박근형(왼쪽) 연출과 오태석 연출이 3일 서울 남대문로 한국일보에서 대담을 나누고 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똑같이 던진 질문에 두 사람은 결코 대동소이라고 치부할 수 없는, 진한 여운이 남는 답을 던져 주었다.어떤 책(객석 아카이브 ‘우리시대의 극작가’, 2010)에서 선생님은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우리 시대의 극작가’로. 또 한 사람(박근형)은 ‘우리가 주목해야 할 우리 시대의 극작가’로 나오는데 그 같은 그 같은 일반적 평가의 근거는 무엇이라 유추하시는지?..

“(그처럼 타성화된 평가는)잊어도 좋은데, 우리 말을 사랑하고 보존하는 것은 어느 작가나 가져야 될 사명이겠지요.”(오태석) “오 선생님에 대한 평가의 근거는 누가 보아도 자명한 것이지만 나에 대한 평가는 앞으로 계속 진행형으로 남을 것이다. 나중에는 '언급하지 말아야 할 작가'로 남을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박근형)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일단 미루고, 먼저 오태석 씨와 나눈 대화를 정리한다.

_선생님의 예술적 적자를 묻는 평론가(장성희)에게 박근형씨를 후계라 적시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여타 동년배 연극인들에 비해 어떤 점을 높이 평가하신 건지요? 예슬적 후계에 대한 생각은 언제부터 구체적으로 하셨습니까?

“기왕의 것을 넘어서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계획을 했다기보다 그의 개성이 돋보이기에.”

_선생님께서는 충남 해안 지방 방언에의 구사를 넘어 사투리연극제도 구상하셨습니다. 박근형씨는 서울 출신임에도 경상도 언어에 애착을 보입니다. 이 같은 언어적 측면을 굳이 이름 하자면 탈중심성(脫中心性)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는데, 사투리에 대한 애착이 가장 잘 형상화된 작품으로는 무엇을 드시겠습니까? 그 같은 계열의 작품을 쓰실 계획은?

“사투리라기 보다는 ‘문어체에 비해 숨쉬는 구어체’라고 하는 것이 옳을 듯 해요. 배우가 경직되지 않고 틈새가 많아 보여서 관객이 받아들이기에 부담이 적어요. 무대와 객석 쌍방간에 숨쉬기가 쉽다고 할까요. 백마강 달밤에서 말에 동원이 적당하지 않았나 싶네요. 항시 구어체로 쓰니까, 삼사(3-4)조가 더 많이 동원되는 작품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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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태석씨.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다음은 박근형씨와의 일문일답이다.

_박근형씨를 후계로 생각한다는 오 선생님의 말씀에 대한 생각? 오 선생으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하는지 (객관적이고 엄밀하게, 어떤 논리적 개연성을 지니는 답변이 되었으면 합니다. 연구자들에게 유용한 정보가 될 수 있는....)

“그런 말씀은 아마 누군가와 지나가는 말로 나눈 우스개 말씀이실 겁니다. 하지만 그 말씀 전해 들었을 때 ‘까불지 말고 연극 더욱 사랑하고 열심히 하라’는 가르침으로 새기니 어깨가 무거워지지 않겠습니까.

오 선생님과 함께 작업을 한 적이 없습니다. 단지 학교에서 학생들과 함께 수업하시고 연습하는 모습 옆에서 보면서 느낀 점 몇 가지 있습니다.

학생들을 너무너무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연습도 대충이 없고, 정말 꼼꼼하게 하십니다. 될 때까지 연습을 하고 또 합니다. 공연이 끝나도 또 합니다. 연극에 관한 한 목화 단원과 학생들, 차별 없이 모두 같습니다.

또 하나, 시간을 아껴서 쓰십니다. 단 일분도 허투루 보내는 시간이 없습니다. 당신이 계시는 그 장소의 그 시간을 정말로 소중하게 쓰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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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형(오른쪽) 연출과 오태석 연출이 3일 서울 남대문로 한국일보에서 대담을 나누고 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_이번 밀양 연극제에서 ‘심청이는 왜 두 번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와 ‘만주전선’으로 두 분이 나란히 참여했는데?

“작년에 이어 올해도 선생님과 비슷한 기간에 밀양에서 공연을 했습니다. 작년에 선생님께선 ‘템페스트’를 공연하셨습니다. 공교롭게 폭우가 몰아치는 기간에 비바람 맞으면서 연습하고 공연하는 목화 단원들을 보았고, 올해는 지독한 더위 속에서 연습하는 목화 배우들을 지켜 보았습니다. 자유분방하고 느슨한 골목길 단원들에게는 연극 정신을 되새겨보는 소중한 자극의 시간이었습니다.“

_공교롭게도 두 분 다 일본의 소극장 축제 ‘타이니 알리스 페스티벌’과 관계 있습니다. 그 행사와 관련된 이야기를 자세히 듣고 싶은데요. 또 일본 문제는 당신의 작품에서 간간이 등장하기도 했는데, 향후 그 테마를 어떤 식으로 작품화할 생각인지?

* 오선생님은 타이니 엘리스 페스티벌에서 공연한 최초의 대한민국 연극인입니다. 저는 반대로 타이니 엘리스 소극장이 곧 없어질 터이니 폐관 기념 공연으로 꼭 참석해 달라고 해서 공연한 대한민국 막차 연극인입니다. 타이니 엘리스극장은 일본의 연극인 부부가 발품을 팔고 사재를 털어 운영하는 100석 남짓의 작은 극장인데 운영난으로 결국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많은 연극인들을 식구처럼 대하여준 이 작은 공간이 사라지는 것은 한일 연극인들 모두에게 참으로 애석한 일이죠.

이번에 골목길은 '만주전선'을 공연하였습니다. 공연 내내 일본 관객들에게 제국주의 만주의 이야기가 어떤 식으로 다가갈지 몹시 궁금하였지만 기우였습니다. 내가 만주의 조선사람들을 통해 지금의 우리 대한민국의 모습을 풍자하려는 의도를 그들은 충분히 이해했고, 나아가 몇몇 연극인들은 미국에게 굴종적인 일본 사람들의 현재 모습과 일맥 상통 하다며 일본 순회 공연을 제안해 오셨습니다. 대략 70-80명의 관객과 연극인들이 함께 했던 쫑파티도 기억에 남습니다.

우리 현대사를 이해하기 위해서 일본과 일본인의 모습은 내게 끓임 없는 화두입니다. 아직까지도 이 땅에 제국주의의 잔재와 유산이 널려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생각하면 울분이 터지지 않을 사람이 이 땅에 어디 있을까요. 내가 작품을 쓰고 공연을 준비할 때마다 나는 그 문제를 어떻게든 다뤄보려고 합니다. 단, 무대 위에서 그 표현형태는 직설이 아닌 풍자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내공이 부족한 탓에 그 풍자가 여의치 않게 표현될 때도 많다고 생각됩니다.”.

-탈(脫)중심이란 연극이 끝까지 지향해야 할 가치일 텐데, 특히 두 사람의 경우 방언에 대한 애착은 두드러집니다. 오태석의 충남 해안 사투리에 대한 애착이 이 출생지의 영향이라면, 서울 출신임에도 경상도 말을 편애하는 이유는? 그 역시 탈중심의 미학인지?

* 내가 경상도말로 연극을 만드는 것은 오히려 탈중심의 미학이 아닌, 이시대 '중심중의 중심의 미학'을 하려는 것은 아닐런지. 반론을 제기할 사람도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 대한민국의 경제, 정치, 사법, 언론, 모든 분야의 중심은 경상도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주축입니다. 나는 그 현실을 풍자하고 싶어 경상도말투로 연극을 만들곤 하죠. 그러나 단지 그런 현실적인 문제만이 아닌 경상도언어가 지닌 구수한 말 맛을 표현하고 싶어서 사용한 경우도 있습니다.(경숙이, 경숙아버지)

-시대의 화두가 '통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 간 작품에서 상대적으로 희박한 소재였는데, 그 문제를 독특한 시각으로 다뤄보실 생각은?

“ 맞는 말입니다. 통일은 우리시대 모두에게 대소명이죠. 그러기 위해선 통일을 가로막는 요소들과 통일을 반대하는 세력에 대해 공부해야 합니다. 나는 아직 통일에 대한 이야기 보다는 통일에 맞서는 그 어떤 거들에 대해 말하는 연극에 관심이 더 크다고 해야겠죠.”

-전통은 어떻게 계승돼야 한다고 보시는지(형식적-양식적인 면, 주제적인 면으로 나눠서)? 전통적 소재나 주제 중 주목하는 게 있다면? 오 선생의 경우, 산대놀이가 어떻게 프로시니엄에서 살아날 것인지에 대해 일련의 결과물을 내 놓으셨다고 생각되는데?

“전통에 대해 나는 거의 문외한이에요. 그리고 특별한 관심있는 분야도 없구요. 단지 판소리는 자주 들어보려 한다. 개인적으로 퓨전 국악그룹 '앙상블 시나위'와는 일년에 한 두편씩 작업을 하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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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권은 아마도 뮤지컬에 대한 답일 것이다.

-무대의 대세로 자리잡은 뮤지컬에 대한 관심은 어떤 식으로, 언제 구체화될 것인지?

우선 박근형씨의 답이다.“별로 관심없다. 단지 어르신들도 관람할 수 있는 브레히트의 '서푼짜리 오페라' 같은 우리식 엉터리 뮤지컬은 가금 생각해 보곤한다."

노장은 짐짓 의뭉스럽기까지 하다. “해 볼만한 일이라고 생각할 때도 있읍니다만 제작 여건이 연극 맨들기 보다 훨씬 어려우니---. 연극 맹그는 일만도 심에 부쳐 허득허득 ㅋㅋ"

장병욱 편집위원 aj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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