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으로 세상 읽기] 9월 9일

중국 방문을 마치고 귀국길에 오른 박근혜 대통령은 기내에서 자청해 연 동행기자 간담회 모두 발언의 거의 절반을 “한반도 평화통일” “동북아 평화” “북한 도발 억제”로 이어갔다. 발언 뒤 두 가지 기자 질문에 대한 답까지 포함하면 전체 발언의 거의 3분의 2 가까이가 이 주제였다. 이번 방중의 무게중심이 어디에 있었는지 한 눈에 드러난다. 주요 발언을 그대로 옮겨 보면 이렇다.

“이번에 시 주석하고는 여러 다양한 이슈에 대해서 심도 있는 협의를 했지만 역시 가장 중점을 둔 것은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지켜나가는데 있어서 중국하고 어떻게 협조를, 협력을 해 나갈 건가, 그것이 가장 중점적으로 얘기되고 다뤄졌던 문제였습니다.”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어떻나 도발이나 이런 데 대해서도 절대로 인정하지 않고 반대한다, 그걸 분명히 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북한 도발과 관련해서 소통하면서 협력했듯이 앞으로도 그런 긴장 상황을 조성하는데 대해서는 협력해 나가자는 정부의 의지로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핵문제나 이런 것을 다 해결하는 궁극적이고 확실한 가장 빠른 방법도 평화통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위해서 중국과 같이 협력해 나가기로 그렇게 이야기가 된 것이고, 그래서 가능한 조속한 시일 내에 한반도 평화통일을 어떻게 이루어 나갈 건가에 대해서 다양한 논의가 시작될 것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주변국, 더 나아가서 세계도 암묵적으로 이건 좋은 일이다라고 해서 (통일에)동의를 해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좋은 방향으로 진전이 되는 것이고 앞으로 외교력을 발휘해서 평화통일이 어떤 의미가 있고 세계의 평화와 안정에도 어떤 좋은 점이 있는지 그런 것을 자꾸 설명해나가면서 동의, 앞으로 잘 해나가면 좋겠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중국 국가주석과 한·중 정상회담을 마친후 인민대회당 서대청에서 열린 1대1 특별오찬을 위해 입장하고 있다. 홍인기기자 hongik@hankookilbo.com

대통령의 이런 발언을 두고 언론에서는, 남북통일 논의에서 중국의 좀더 적극적인 태도를 끌어내는 것 아니냐는 기대 섞인 전망이 나왔고, 정작 통일의 주체인 북한은 놔두고 중국과 무슨 논의를 한다는 거냐는 비판도 있었다. 통일 논의는 조심스럽게 되도록 감추어서 해야 하는데 설사 기대할만한 조짐이 있다고 하더라도 대통령이 나서서 그것을 공개라도 하듯이 이렇게 말하는 건 좋지 않다는 지적도 나왔다.

도대체 남북통일과 관련해서 중국이라는 변수가 들어간 어떤 방정식이 만들어지고 있는지 지금으로서는 알기 어렵다. 정작 중국 쪽에서는 대통령의 이런 말에 장단 맞추는 시늉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통령이 자청해서 이런 말들을 쏟아냈으니 이번 방중에서 뭔가 약간 흥분하게 만들 결실을 봤는지도 모른다. 대통령 발언의 진의가 무엇이었는지는 좀더 두고 봐야 알 것 같다.

그런데, 두고 볼 것도 없이 통일의 두 주체인 남북의 협상이 지금 진행 중이다. 무박2일의 이산가족 상봉 협상 결과는 부족한 점이 많다. 하지만 이번 결과를 더 크고 좋은 성과를 낳기 위한 출발이라고 생각한다면 아쉬운 마음도 달랠 수 있고 힘도 난다. 물론 이산상봉조차 이 정부 들어서는 지난해 2월 이후 처음일 정도이니, 과연 다방면의 남북대화 기회로 확대해갈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그래서 더욱 가슴에 와 닿는 것이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의 구차한 안일을 추구하지 않겠노라”는 기개로 “동족끼리…국경 아닌 국경으로 서로 나뉘어져 외국인의 턱만 쳐다보며 말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라던 김구 선생의 말이다. 북한을 남 보듯 하며 중국을 이용한 통일 논의에 골몰하는 지경이 되지 않으려면, 모처럼 조성된 이 기회를 살려서 불을 지펴야 한다.

남북이 8일 오전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열린 추석 계기 이산가족 상봉을 논의하기 위한 적십자 실무접촉에서 무박 2일의 마라톤 협상 끝에 합의점을 찾았다. 이날 이덕행 대한적십자사 실행위원(오른쪽)과 박용일 조선적십자회 중앙위원이 종결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통일부제공

“박 대통령의 자신감이 좀 지나쳐 보여 걱정스럽다. 중국방문을 마치고 귀국길 기내 기자간담회 발언이 특히 그렇다.…발언들 행간에는 북한의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안중에 없다고나 할까. 중국의 극진한 예우를 받고, 톈안먼 성루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해 열병식을 지켜보면서 중국과 힘을 합치면 북한 문제쯤은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도 있겠거니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보자. 지난번 지뢰도발 위기가 남북간 극적인 합의를 도출하지 못해 대규모 군사충돌로 번졌다면? 박 대통령의 중국 방문은 당연 취소다. 신외교니 동북아 신질서에서의 주도적 역할이니 하는 외교성과도 없다. 국정 지지도가 단박에 20%포인트나 뛰는 일도 물론 없었을 것이다.

중국, 나아가 미국 등 국제사회와 함께 압박한다고 북한 김정은 체제가 순순히 굽히고 나올 것이라고 기대한다면 오산이다. 이번 중국 전승절 행사에서 북한의 소외감은 상당했을 것이다.…내달 시진핑 주석의 방미와 박 대통령의 방미에 이어 10월 말~11월 초 우리 정부 주도로 한중일 정상회담이 성사되면 북한의 소외감과 고립감은 한층 더해질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8ㆍ25 합의가 잘 이행될 리 없다. 당장 내달 10일 노동당창건 70주년에 장거리 미사일 발사나 4차 핵실험 같은 특대형 도발을 하고 나설 개연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지 않아도 북한은 8ㆍ25합의 이후 우리군의‘참수작전’ ‘작전계획 5015’ 등의 언급을 문제 삼아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물론 북한이 재도발을 할 경우 보다 가혹한 제재와 압박이 가해질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도 예전과 달리 이런 국제사회 움직임을 외면하기 어렵다. 그런데 뭐가 걱정이냐고?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북한은 우리만이 갖고 있는 자산이다. 북한을 잘 활용하면 뭐가 좋은지 8ㆍ25합의에 이은 박 대통령의 방중 성과가 잘 말해준다. 남북관계의 진전 없이 미ㆍ중 패권 경쟁 속에서 우리가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는 공간은 크지 않다. 통일대박론과 연해주, 유라시아로 뻗어나가는 구상도 한갓 공상에 그치고 만다. 조속한 평화통일 논의를 말하기에 앞서 남북관계를 안정적으로 발전시켜나갈 방안이 급하다. 북한을 소외와 고립으로만 내모는 것은 백해무익하다.”(한국일보 9월 8일자 이계성 칼럼 ‘조속한 통일 논의보다 급한 것’▶전문 보기)

“앞으로도 남한이 북한을 쥐어짜서 사과나 ‘깊은 유감’을 받아내는 일은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남한 당국이 그런 기대에 맞춰 정책을 만드는 것은 별로 의미있지 않다. 많은 경우에서 보여줬듯이, 북한의 유감 표명이 그런 행동의 재발을 방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남북관계는 ‘말의 교환’이 아니라 아주 구체적인 교류를 통해서만 발전할 것이다. 최근 비무장지대의 사건들을 둘러싸고 남북간 긴장이 고조됐지만, 실질적인 교류는 계속됐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북한의 준전시상태 선포에도, 개성공단 기업들은 계속 물건을 생산해냈다. 남한의 선수들이 평양에서 열린 국제 유소년 축구대회에도 참가했다. 서구의 평판과 달리, 북한 사람들은 아주 실용적이다. 북한의 협상가들은 이데올로기적인 제한 속에서 움직이기는 하지만, 구체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종종 비즈니스적인 접근법을 취한다. 이런 이유로, 이산가족 상봉과 같은 합의문의 구체적인 조항에 대해 남북이 후속조처를 취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사과의 중요성을 나도 잘 알고 있다. 희생자들은 그들의 고통이 인정받기를 원한다. 정부 관료들은 자신들이 국민들을 대신해 적극 나서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원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으로부터 사과를 받아야 한다고 계속 고집하는 것은, 내륙국가로부터 질 좋은 스시를 수입하려고 시도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제 북한의 유감을 받아들이고 남북간 협력 사업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자. 아마도 남북간에 좀더 사랑이 싹튼다면 지금처럼 사과할 필요도 많지 않을 것이다.”(한겨레신문 9월 7일자 세계의 창 ‘북한의 ‘사과’ 정치학’▶전문 보기)

““북핵 문제 등을 다 해결하는…평화통일”이라고 말할 때 박 대통령은 남한 주도로 북한을 그것도 조속하게 통일하면 북한이 개발해 놓은 핵무기를 자동으로 해소하게 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참으로 단순하고 비현실적인 생각이다. 이렇게 간단하다면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관련국들이 협의할 필요가 뭐가 있나? 바로 엊그제 중국의 시진핑 주석을 만나 북핵 관련 6자회담의 조속한 재개를 요청한 것은 빈말이었단 말인가? 언제 될지 모르는 통일의 그날까지 북핵 문제 해결을 미루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지, 미국 등 관련국들이 박 대통령의 진의를 궁금해할 상황을 만들었다.

통일의 당사자인 북한을 빼놓고 주변국들과 ‘통일외교’를 한다는 생각도 기이하기 짝이 없다. 당장 중국이 통일외교에 응할 생각이 없음을 비쳤다. 박 대통령이 조속한 통일을 주장하자 시진핑 주석은 “남북 간 장래 자주적 평화통일을 지지한다”고 맞받았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7·4 남북공동성명에서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을 천명한 이래 남북기본합의서, 6·15 공동선언, 10·4 정상선언에 이르기까지 남과 북이 거듭 확인해온 당사자 간 자주적 대화의 원칙을, 시 주석이 박 대통령한테 일깨우는 모양새가 된 것이다.

평화통일은 당연히 남과 북이 함께 준비해야 한다. 이를 위해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교류협력을 강화하며 국제사회에서도 남과 북이 협력해야 한다. 과거 우리 사회에는 평화통일론과 무력통일론이 충돌하다가 전두환 정부가 민족화합 민주통일 방안을 발표한 1982년 이후 무력통일론은 공론의 장에서 사라졌다. 통일을 입에 올린다고 모두 통일론이 아니다. 이제 통일론도 남과 북이 ‘함께하는 통일’인지, 아니면 혼자 하겠다는 ‘무늬만 통일’인지를 구분할 때가 됐다.”(한겨레신문 9월 9일자 아침 햇발 ‘혼자 하겠다는 ‘무늬만 통일론’’▶전문 보기)

김범수기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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