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끄트머리에 잠시 짬을 내어 캄보디아를 다녀왔다. 매년 한두 차례씩은 오가거나 NGO 활동가로 머물기도 했던 지난 10여년의 행보에 비하면 꽤 오랜만의 걸음이었다. 그만큼 옛 친구들이나 두루 찾아다니던 곳들과의 재회에 대한 설렘은 당연히 컸다.

한편 실체를 알 수 없는 두려움도 자꾸 고개를 빼들었다. 출국 당일 아침 짐을 싸다 말고 갑자기 비행기 티켓을 취소할 생각까지 들기도 했으니 두려움의 원인이 무엇인지 조금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마음을 다잡아 겨우 도착한 프놈펜의 밤 공기는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아열대 기후 특유의 눅눅함과 건조한 바람이 뒤섞인 기운이 몸을 감싸는데 잠시 떠나있던 고향을 찾은 듯 아련한 기억들도 덩달아 가슴을 채워주었다. 잠자던 신경세포들이 기분 좋게 깨어난 기분이랄까.

내 집이나 다름 없는 지뢰피해장애인기술학교인 ‘반티에이 뿌리웁(Banteay Prieb)’에 여장을 푼 다음날 아침부터 옛 지인들의 ‘친구맞이’도 호들갑스럽게 이어졌다. 결혼하더니 더 젊어진 것 같다, 아이는 언제 태어나느냐, 얼마나 오래 있을 것이냐 등등. 그 순간 여전히 ‘나’를 기억해주고 있다는 생각에 고마운 감흥으로 상큼하게 달아오르기도 했다.

친구들이 내민 손길의 따사로움을 확인하면서, 동시에 실체 모를 두려움 중 하나를 확인할 수 있었다. 내 흔적이 남아있을까 하는 조바심. 꽤 오랜 시간 몸과 마음을 들였던 땅이니 만큼 그에 대해 오래도록 인정 받고 싶다는 일종의 보상심리 같은 얄팍한 속내가 내 안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가장 큰 두려움의 실체는 다른 곳에 있었다. 이 나라에 머물던 시절 나는 프놈펜‘만’을 중심으로 하는 지나친 경제개발 정책으로 인해 도심 외곽으로 쫓겨나는 도시 빈민촌 몇 군데를 내 집 마냥 들락거렸다. 가족사진을 찍어주는 이동식무료사진관인 ‘달팽이사진관’ 활동의 일환이었는데 그 중 한 마을이자 예전에 이 지면을 통해 전한 바 있는 벙깍(Boung Kak) 호수 빈민촌 4구역 마을과의 ‘조우’를 내심 버거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더 이상 아는 사람들이 살지 않는 그곳에 가서 나는 무엇과 마주할 수 있을까. 얼굴 익히고 인사를 나누며 사진을 주고 받던 그 살갑던 풍경이 완전히 사라진 그곳에 나는 왜 가려는 것일까. 마음 한구석이 퀭해졌지만 나는 결국 그곳을 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예전에 섰던 자리를 가늠하면서 한 곳에 잠시 머물러 주변을 둘러보았다.

호숫물은 모두 땅으로 메워졌고 둘레에 있던 허름한 수상가옥들도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바둑판 형태로 사방으로 뚫린 길 위에는 공사 인부들과 자재를 잔뜩 실은 트럭들만 분주하게 모래먼지를 일으켰다. 아마도 몇 달 지나지 않아 바로 이 자리에도 수많은 빌딩들이 하늘을 향해 치솟을 기세였다. 도리 없이 먹먹해진 가슴을 부여잡고 나는 곧 자리를 떠야만 했다. 이런 상황일 것임을 미리 알고는 있었지만 더 이상 아는 얼굴 하나 없는 그곳에 머무를 수는 없었다.

그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다시 그들을 만날 수는 있는 걸까. 가쁜 호흡을 내쉬며 나는 기억을 더듬었다.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살던 자리에서 쫓겨난 이들, 정처 없이 떠돌게 된 아는 얼굴들을 하나하나 떠올렸다. 비록 찢기고 훼손된 삶이지만 그들에 대한 안녕을 빌기 위해서였다. 다시 제 자리에 돌아온 지금, 그 푸르고 높던 캄보디아의 하늘이 다시 그립다. 여기와 다를 바 없이 아름다운 하늘 아래에 여전히 꽃과도 같은 삶이 있기에.

임종진 달팽이사진골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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