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가 박은선, 내년 5월 개인전

거대한 조각품에 인위적 틈

"한국의 여백의 미로 평가받아"

조각가 박은선이 이탈리아 피사국제공항에 전시 중인 ‘공유 35’와 나란히 섰다. 대리석을 찾아 이탈리아로 간 그는 “야외에 오랫동안 놓여 있어도 변화가 적고 견고한 대리석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박은선 작가 제공

22년 전 무작정 이탈리아 유학길에 오른 한국인 조각가의 머릿속에는 미켈란젤로가 썼던 카라라대리석으로 작업을 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이탈리아 피에트라산타 카라라산에서 나는 이 대리석은 중세 때부터 귀한 재료로 꼽혀왔다. 그렇게 꿈을 좇은 그는 오늘날 유럽 각지에서 개인전을 여는 조각가가 됐다. 박은선(51)의 이야기다.

박은선은 6월부터 이탈리아 피사 국제공항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다. ‘무한기둥’ ‘제너레이션’ ‘복제의 연속’ 등 높이가 3m에서 7m 사이인 거대 대리석 조각품 7점을 2017년 6월까지 전시한다. 내년 5월에는 피렌체 피티궁 보볼리정원에서 조각전을 연다. 피렌체의 주요 관광지 중 하나인 보볼리정원은 메디치 가문의 정원으로 영국 조각가 헨리 무어(1898~1986)가 1972년 개인전을 열면서 세계적인 관심을 얻었다. 박은선은 “피사 전시 개막일에 피렌체 시장이 직접 전시를 제안해 왔다”며 “르네상스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장소에서 전시를 하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박은선은 경희대 미술교육과를 졸업하고 1993년 토스카나 지방의 피에트라산타에 정착해 카라라국립예술원에서 조각을 배웠다. 피에트라산타는 읍 정도 규모에 불과하지만 카라라산이 있어 뛰어난 조각가와 석공들이 모여 사는 ‘조각 도시’다. 카라라대리석은 로마 시대부터 널리 사용됐고 미켈란젤로의 유명한 ‘다비드 상’의 재료이기도 하다. 박은선은 “대리석은 세월이 흘러도 모습이 변하지 않는 점이 매력”이라고 했다.

원하는 재료를 마음껏 만질 수 있다는 점 말고 그의 유학생활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흔히 국내에서 활동하는 작가라면 소속 화랑의 지원을 받아 해외 개인전을 열지만 그는 처음부터 이탈리아에서 전시를 해온 탓이다. “외롭고 힘들었습니다. 벼랑 끝에 몰렸다고 생각했을 때 제 작품에 관심을 가진 수집가가 나타나더군요. 그렇게 몇 번 반복하고 나니 어쨌든 하면 되는구나 싶었습니다.”

반전의 계기는 1997년 피에트라산타시의 초청으로 열었던 개인전이었다. 그는 “갑자기 3개월 뒤에 개인전을 할 수 있냐고 묻기에 작업해 둔 조각으로 전시를 했다”며 “지금 생각하면 계획했던 전시가 어그러져 대타로 들어간 것이겠지만, 그 덕분에 이탈리아 미술계에서 주목을 받았다”고 말했다.

박은선은 흰색과 회색의 대리석, 또는 녹색과 붉은색의 화강석을 기계로 얇게 잘라 서로 다른 색 석판을 번갈아 붙여 줄무늬 기둥을 만든다. 조각에 보이는 균열은 “거대하고 답답한 조각에 숨통을 틔우는 효과”를 노린 것이다. 조각평론가 루치아노 카라멜은 “외형상 이탈리아 예술의 영향이 있지만 동양적, 명확하게는 한국적인 측면이 보인다”고 평가했다. 박은선은 “딱히 한국적인 작품을 만들려고 노력했던 것은 아닌데 유럽에서는 내 조각에서 ‘여백의 미’를 읽더라”고 했다. “20년 전 한국 작가들은 일부러 ‘한국 전통의 미’를 찾으려 노력했지만 구태여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내 자신이 생각하는 아름다움대로 만들었기에 오히려 외국인들에게 인상적으로 다가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탈리아와 한국이 가까운 것 같지만 의외로 교류가 없다”는 박은선은 2010년 알바에서 연 개인전 일부를 한국관광공사의 한국문화 소개 전시로 꾸며 한국문화 전도사가 되기도 했다. 그는 “피에트라산타가 한국에는 관광지 친퀘테레로 가는 경유지로만 유명한데, 예술의 산실로서 이 곳에 대한 관심도 많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현우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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