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한 기자로부터 최근 사람을 벌레로 부르는 각종 ‘~충(蟲)’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공공시설에서 아이를 방치하는 어머니를 뜻하는 ‘맘(mom)충’이나 다른 세대에게 피해를 입히는 고령세대를 의미하는 ‘노인충’이 그 대표적 사례다. 이 말들에는 타자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것에 대한 힐난이 담겨 있다. ‘~충’이라는 표현에는 ‘진지충’, ‘설명충’과 같이 상대적으로 부드러운 것도 있다. 진지충이 모든 일에 진지한 이들을 비꼰다면, 설명충은 사소한 사안에도 자세히 설명하는 이들을 야유한다.

어느 시대나 대중에게 친숙한 은어는 있기 마련이다. 특히 청년세대는 젊은 감각에 어울리는 은어를 즐겨 사용한다. 하지만 각종 ‘~충’이라는 호명의 범람은 우리 사회가 갖는 문화적 그늘을 드러낸다. 다른 이들을 사람이 아니라 벌레로 부르는 것은 ‘혐오’라는 감정이 우리 문화와 정서의 한 흐름을 이루고 있음을 보여준다. ‘~충’이라는 표현을 쓰는 많은 이들이 ‘극혐’(극단적으로 혐오함)이란 말을 함께 사용하는 게 그 증거다.

뭉크의 '절규'.

다양한 ‘~충’이라는 말들이 갖는 공통점은 이른바 ‘민폐’를 비난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맘충이나 설명충의 경우 타자에 대한 배려의 결핍을 담고 있다. 이점에서 자기 생각이나 이익만을 배타적으로 강조하는 ‘이기적 시민문화’가 ‘~충’이라는 말이 범람하게 된 사회적 배경을 이룬다. 다른 사람이나 집단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민주적 시민문화’는 단시간 안에 형성되는 게 아니다. 민주적 시민문화가 뿌리내리기 위해선 공공질서 의식, 타자에의 관용과 소수자의 자유를 포함한 학교교육 및 시민교육 프로그램이 요구된다. 또, 장애·인종·성별에 따른 차별의 표현을 엄격히 금지시킬 수 있는 법적 규제도 필요하다.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혐오의 표층 아래 놓인 심층인 ‘불안’의 사회심리학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불안은 모든 세대들을 관통하는 키워드다. 10대의 대학입시 불안, 20대의 취업 불안, 30대의 구조조정 불안, 40대의 자녀 교육 불안, 그리고 50대 이상의 노후 불안에서 볼 수 있듯, 불안은 우리사회를 재생산하는 핵심 코드다. 인터넷 공간에서 적지 않게 쓰이는 ‘헬조선’, ‘지옥불반도’, ‘개한민국’ 등은 바로 이 불안의 심리를 극단적으로 반영하는 표현들이다.

어느 사회이든 불안이 증가하면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제도적·개인적 시도를 모색한다. 문제는 정치·경제개혁 등 제도적 대응이 무력하게 느껴질 경우 개인적 차원에서 기성 질서에 대한 문화적 반발 내지 공격성이 강화된다는 점이다. 이런 공격성은 가벼운 야유에서 거친 비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들로 표출되는데, 나와 다른 이들에 대한 공격적 혐오는 그 가운데 하나다. 불안한 사회에 대한 불만이 특정 집단을 향한 크고 작은 혐오로 전화된 게 각종 ‘~충’이라는 말이 등장하게 된 또 하나의 사회적 배경인 셈이다.

내가 우려하는 것은 타자에 대한 공격인 혐오의 감정이 자신에 대한 부정인 모멸의 감정과 밀접히 연관돼 있다는 점이다. 불안의 사회에서 다수의 사회적 약자들은 자신의 존재 가치를 부정 당하는 모멸감을 빈번히 느끼게 된다. 정당하게 대우받지 못하고 업신여겨지고 있다는 모멸감과 수치심은 자기 삶을 방어하기 위해서라도 결국 타자에 대한 혐오와 공격이라는 심리적 반작용으로 나타나게 된다. 다시 말해, 타자를 벌레라고 부르는 것에는 나 자신도 벌레일지 모른다는 무의식적 자괴감이 똬리를 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람을 벌레라고 비하해선 안 된다는 도덕적 교훈을 일방적으로 강조하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우리 안에 존재하는, 동전의 양면을 이루는 혐오감과 모멸감의 정체성이야말로 우리 공동체의 위기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회는 사람들이 모여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다. 자신을 모멸하지 않고 타자를 혐오하지 않는 그런 공동체로 가기 위한 시민교육과 제도개혁의 중요성을 ‘~충’의 범람은 역설적으로 계몽한다. 벌레 이야기가 던지는 메시지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일상으로 파고든 차별… 너도나도 벌레가 되었다일상으로 파고든 차별… 너도나도 벌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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