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도적처럼 다녀가는 아침입니다. 오늘은 우리가 배 안에 그 많은 아이들을 버려두고 나온 지 500일이 되는 날이니까요. 지난 토요일 안산 단원고에서 있었던 304낭독회에서 시인은 이 시를 읽은 뒤 브레히트를 인용했습니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살아남은 자의 슬픔’)

구성원의 생명과 안전이 운에 맡겨져 있는 사회는 노예상태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노예는 운이 좋아 선한 주인을 만나면 좋은 식사와 안락한 삶을 누리지요. 반대로 운이 안 좋아 나쁜 주인을 만나면 매질과 폭력에 시달립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삶이 타인과 운에 예속되어 있는 사람을 노예라 불렀어요. 물론 자유로운 사람도 슬픔이 도적처럼 다녀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어요. 그렇지만 그는 슬픔이 가서 울음의 이유를 밝히게 하고 그것이 반복되지 않도록 애쓰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자유로워지기 위해 500일 전 그 날을 기억하고 끊임없이 이야기를 이어나갑니다. 희생자들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해서요.

배 안의 아이들과 어른들 304명을 기억하기 위한 낭독회는 9월 19일 토요일 4시16분 대학로 이음책방에서 또다시 열립니다. 함께 모여 귀머거리 하느님께 슬픔의 이유를 낱낱이 들려드리기로 해요.

진은영 시인ㆍ한국상담대학원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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